“어떤 왕이 새로운 법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그 범법자는 누구든지 벌로 두 눈을 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던 어느날 부하들이 범법자를 체포해왔다.
그는 다름이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왕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죄를 묵인하자니 국민들 앞에 명분이 서질 않을 것이요
아들의 두 눈을 뽑자니 아버지로서 차마 못할 짓이었다.
고민을 하던 왕은 결국 아들의 눈 한쪽과 자신의 눈 한쪽을 뽑았다고 한다.
”이의용 저(著) 《고독이라는 교만》 (대림기획, 1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렇게 해서 왕은 스스로 법도 지켰고,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공의와 사랑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징벌의 절반은 나에게 집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죄인에게 집행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두 눈을 다 빼주셨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자신이 달리셔서 우리 대신에 죄를 치루셨습니다.
“나의 두 눈을 뽑아내라.
나를 십자가에 달아서 못을 박아 죽이라.내가 그 모든 죄를 감당하겠다.
그리고 죄인에게는 자유를 주노라.”이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하는 두 기둥입니다.
불완전한 우리 인간에게 그 사랑과 공의의 조화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공의를 생각하다보면 사랑을 놓치고,사랑을 생각하면 공의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을 결여한 공의는 무자비한 폭력이 될 수 있고,
공의를 상실한 사랑은 무책임한 방치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하나님의 기막힌 지혜와 은혜였습니다.
죄인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