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누가복음 18장 9-17절)

鶴山 徐 仁 2019. 8. 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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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누가복음 18장 9-17절)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본문 해석

우리는 우리가 하는 기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올바른 기도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데, 예수님은 너무나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바리새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기관들은 아니었지만, 평신도 중에 가장 신앙이 좋다고 평가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고 하며 삶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신앙생활, 그들의 기도는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인지 산해드린에서 보고를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주어가 “나는”입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께 “내가 한 것”을 보고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의롭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당시의 세리는 죄인과 같이 취급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세리의 기도를 예수님은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도 아니고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의 기도를 “의롭다”고 하셨을까?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필요 없는 기도였지만,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들어주실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기도였지만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기도였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모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는 기도였지만 세리의 기도는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이제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바꾸실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되어주실 수 있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이제 좀 더 사랑하자. 좀 더 포용하자.” 그것이 십자가에 죽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중심은 “나”이며 그래서 더 힘들 뿐입니다. 마치 콤파스처럼 여전히 중심은 “나”인데 원을 조금씩 넓혀 가면 “십자가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에 죽은 것”은 우리의 중심을 “예수”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할 수 없다는 것 잘 아시잖아요. 내 중심에 오셔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내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 되심”으로 그 은혜와 감동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 하루 “내가” 하는 신앙생활이 아닌 “예수님”이 주시는 감동과 말씀의 인도를 주실 때,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내가”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언니와의 대화
인문학 나눔

“언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옥같은 대사들을 뱉어내는

우리를 발견한다.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지만, 

도대체 언니는 세월과 얼마나 싸웠길래 이런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궁금해 물어보니 언니는 살면서 고난과 풍파를 피해가는 법을 몰라 

온 몸으로 부딪히고 온 마음으로 아팠다고 한다.  

온 마음으로 아팠다는 말에 나는 밑줄을 긋는다.

덕분에 나는 살아있는 책을 매일 읽고 있는 기분이다.” 

정다이 저(著) 《진심을 말해 버렸다》 (달꽃, 9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대흠의 시 「동그라미」 에 보면 어머니의 발음법이 나옵니다.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중략)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 어머니들 언니 누나 형님들은 온몸으로 매일 시를 써왔습니다.  

국어 사전을 옆에 두고 쓰는 시와는 다릅니다.  

말과 삶과 사랑이 하나 되어 둥글어진 시가 아름답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이야기입니다.  

어느 봄날에 제나라 환공이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섰습니다. 

 전쟁에 대승(大勝)하였지만 계절은 어느덧 겨울이 되어 많은 눈이 쌓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전쟁에 이겼지만 

고향 가는 길에서 얼어 죽게 될 처지였습니다. 

이때 현명한 신하 관중이 조언을 합니다.“왕이시여,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늙은 말을 풀어 놓으십시오. 

노마(老馬)는 고향 길을  알 것입니다.”관중의 조언대로 환공은 

나이 든 말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말을 따라가자 얼마 안 돼 

큰 길을 찾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비자 설림편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여기서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노마(老馬)는 길을 압니다.  

젊고 패기찬 활력도 필요하지만,  경륜 깊은 노인들의 예지가 깊은 길을 보여 줍니다. 

기독 메시지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잠20:29)

그림 큐티더 보기
사무엘상 2장 1절
고린도전서 15:10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Then Hannah prayed and said: "My heart rejoices in the LORD; in the LORD my horn is lifted high. 

My mouth boasts over my enemies, for I delight in your deliverance.  

도서 큐티더 보기
제자를 세우는 삶

다행히 제자 삼는 일은 지극히 쉽다. 

당신의 영적 여정에 사람들을 동행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제자를 삼는 건 기술보다 삶의 문제다. 

제자화는 남들에게 당신처럼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에 관해 알리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 다른 이가 따라할 만한 신앙 습관이 있다면 

당신도 제자 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수년간의 훈련은 필요하지 않다. 

단지 당신처럼 다른 이들도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

-J.D.그리어의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 중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이 제자 삼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평생의 훈련을 통해 제자가 되어 가겠지만, 

시작은 적어도 내 삶이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어, 

내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처럼 살게 한다면 주님께 칭찬받는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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