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범사에 순종하리라 (수 1:14-18) 외 3

鶴山 徐 仁 2019. 5. 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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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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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범사에 순종하리라 (수 1:14-18)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본문 해석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음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17-18절).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반기를 들었고, 작당하여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오죽하면 모세가 므리바에서 그들에게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민 20:10)며 불같은 화를 냈겠습니까? 그동안 꾹꾹 참고 자제했던 울화가 한꺼번에 터져나와 격렬한 욕설이 된 것입니다. <반역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든 나쁜 놈, 죽어도 누구하나 슬퍼할 자가 없는 고약한 놈들>이라는 극도의 악담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백성들의 불순종과 대적보다 모세의 그런 대응 자세를 더 문제 삼으셔서 <너는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고 하시며 가혹한 징계를 내리셨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늘 불만과 불순종만 일삼던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그랬던 그들이 모세의 후계인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외모가 참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왕이 되고 난 뒤에는  암몬, 모압, 에돔 등과 전쟁하며 지도력과 결단력까지도 보여줬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당시 이스라엘에는 사울만큼 우월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에 대해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대로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바로 저 유명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삼상 15:22)는 말씀 아닙니까? 또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실 것이라>(삼상 15:23)고도 했습니다. 순종과 관련한 사울 왕의 이 뼈아픈 사적이 우리의 인생살이에도 두고두고 귀한 일깨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건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십시오.

-본문 18절과 신명기 17:12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로마서 5:19 말씀을 찾아 옮겨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단은 순종을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18절)고까지 했습니다. 오늘 저희도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 앞에서 늘 바르게 결단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도 낫고, 말씀 듣는 것이 제물보다 낫다고 했사오니 범사에 순종하며 살므로 저희의 삶이 주 안에서 더욱  복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
인문학 나눔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므로, 

이 상호작용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상호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을 하기로 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에릭 카 저(著) 권오석 역(譯) 「역사란 무엇인가」 (홍신문화사, 3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조선왕조 말기 혼란기 때 1894년 전라남도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해 농민봉기가 발생했습니다.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반란이므로 ‘동학난’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후 근대화의 관점에서 보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항해 구질서를 

극복하고 새 질서의 수립을 요구하였다 하여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운동’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지칭되었습니다.  

‘동학’ 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그대로이지만 이를 해석하는 관점은 

계속 변하고 재해석된 것입니다.  ‘과거의 사실’은 과거 그 자체로 굳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닙니다.  현재에 계속 다시 부활하고 재해석되는 유기체입니다.  

러므로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독일 신학자 판넨베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다.”하나님은 역사의 신(God of hitory)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태초부터 역사를 주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방향과 종결을 계획하고 관여하십니다.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독 메시지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6,17)

그림 큐티더 보기
베드로전서 4장 7절
고린도전서 15:10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The end of all things is near. Therefore be clear minded and self-controlled so that you can pray

도서 큐티더 보기
단순한 믿음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할 때, 압도적인 불평등에서 맞서 

싸우고 있을 때, 숨이 막힐 듯한 외로움 때문에 괴로울 때, 

비극적인 상실로 인해 울고 있을 때, 이런 때에도 주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단순한 믿음이 요구된다. 

주님은 때로는 성도를 죽음으로 인도하심으로써 그를 구원하신다. 

그 경우, 주님의 구원을 가장 완전하게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주님의 구원의 행동을 인식하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에서도 말이다.

-마르바 던의 [위로] 중에서-

 

때로는 주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것은 무턱대고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맡기는 것이 단순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방법으로 헤아리고 계산하고 답이 없어서 답답함을 가지고 

그물에 걸린 인생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단순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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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8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입니까(마태복음 18장 1-6절)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본문 해석

 우리는 경쟁과 비교의식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가장 큰 질문은 “누가 큰가?”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비교의식이 얼마나 큰 영혼의 피폐함을 가져오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다가와서 묻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새번역) 여기에서는 중요한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너희가 돌이켜”라는 말씀입니다. 이 단어는 “돌아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돌아서는 일”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교만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바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이라는 인데 예수님은 오해하지 않도록 4절에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은 바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잘난 척, 낮은 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를 “낮추는 척”하는 것은 “낮추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는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내 자신의 삶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는 몸부림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헛수고입니다. 다음 단어는 “절대로”라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충격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이 말씀 이후에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이후에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예수님은 연결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낮아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하여 낮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큰 맷돌을 목에 메고 물이 빠지는 것보다 심각한 죄입니다. 

 우리 모두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낮아지는 하루를 삽시다. 아니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 때 기쁨으로 순종하며 그 길을 걸어갑시다. 

결단과 적용

 - 겸손한 “척”한 것을 “나는 나름대로 겸손하게 행동했다.”고 착각했던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 우리 주변에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다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때로 나를 고난을 통해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낮추시는 이유를 이제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주신 고난 때문에 내가 낮은 사람을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어갈 때, 성령님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여자들은 이런 남자를 원한다
인문학 나눔

우리나라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성 상은 이렇다.아침 6시에 기상해서 

밤 10시면 꼭 잠자리에 든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일절 마시지 않는다. 유흥주점은 물론 노래방도 가지 않는다.

모르든 알든 여자 옆에는 일체 앉지 않는다. 사생활에 어떤 비밀도 없으며,

트위터나 밴드, 수상한 카페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항상 침착하게 앉아있고 

어느 누구와도 협조적이다. 조용히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한다. 

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실천에 옮긴다. 주일예배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 

항상 옷을 청결하게 입는다.이런 남자들,내 직장에 수백, 수천이나 있다. 

- 의정부 교도소 교정본부 김막동웃음을 찾는 연구소 편저(編著) 「베스트 유머」 

(밀리언셀러, 81-8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남자들도 할 말이 많습니다. 

‘산이 마누라보다 좋은 이유’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1. 산은 언제나 나를 반겨 주고 안아 준다.그러나 마누라는 안아 주고 싶을 때만 안아 준다 .

2. 산은 내가 바빠서 찾아주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 준다.

그러나 마누라는 내가 야근만 해도 전화통이 불난다.

3. 산은 사계절 새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누라는 사계절 몸빼 입고 나를 기다린다.

4. 산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마누라는 내가 만능 맥가이버가 되길 바란다.

5. 산은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노래가 있다.

그러나 마누라는 마냥 잔소리와 바가지만 늘어놓는다.

6. 산과는 말없이 조용히 대화한다.

그러나 마누라와의 대화는 입씨름의 전조다.

그러나 내가 산하고 안 살고 마누라하고 사는 이유가 있다.산은 내게 밥을 해 주지 않는다...

기독 메시지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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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8장 14절
고린도전서 15:10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I cried like a swift or thrush, I moaned like a mourning dove. My eyes grew weak as I looked to the heavens. 

I am troubled; O Lord, come to my aid!" 

도서 큐티더 보기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
매일 아침 저와 여러분에게
86,400 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한데, 그 계좌는 그러나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는다. 

매일 저녁, 저와 여러분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냥 지워져 버린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그 날 모두 인출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다. 

매일 아침 86,400초를 우리는 부여받고, 

매일 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 버릴 뿐이다. 
잔액은 더 이상 없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다. 

매일 아침, 그 은행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돈을 넣어준다. 
매일 밤 그 날의 남은 돈은 남김없이 불살라진다
어떻게 하시겠는가?. 
황유석 목사의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그분을 위한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에서- 


그 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저와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내일로 연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는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합니다.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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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7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징계의 목적(히브리서 12:4~13)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본문 해석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른 소리보다는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고 병을 고친다는 말처럼, 권면과 징계가 유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징계는 나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증표이기에 이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5). 징계란 원어적으로  ‘파이데이아’로 벌하심이 아니라 훈련을 의미하는 뜻입니다. 즉 허물을 깨우치도록 나무라고 꾸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훈련을 받은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시편 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119:71).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처럼 자신의 기분과 감정따라 자녀들에게 무리하게 행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선한 목적이며 우리의 올바른 신앙인격을 양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6). 친 아들이기 때문이며 관심과 기대가 크기 때문에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징계는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싸인입니다.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약점과 부패성이 내재해 있기에 수많은 죄의 유혹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4). 이 싸움에서 밀리고 패배하게 되면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도록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징계를 통하여 정신을 차리고 겸손해져서 기도함으로 구원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징계는 권위에 복종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6-10). 인격적으로 부족한 육신의 아버지가 징계해도 자녀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물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는 어떠하겠습니까?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어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구별된 신앙 인격자로 세우기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순복함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징계는 장래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11-13). 징계나 훈련은 당시에는 즐겁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달프고 아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통과한 후 다가오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제 피곤한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발로 곧은길을 만들어 말씀의 정로를 따라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저는 다리로 비틀거리면 아니 됩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축복을 싸고 있는 검은 보자기와 같습니다.

결단과 적용

- 지금 어떤 고난가운데 있는지 살펴보고, 이 고난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세요

-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앞에서 장래를 바라보며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 주변에 징계를 당함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다다가기 위해 실천해봅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붙들어 주시고 새롭게 하시옵소서. 나의 눈을 열어 주님의 뜻을 보게 하시고, 죄악의 길에 서지 않게 하시옵소서. 지금의 이 어려움과 난관을 말씀안에서 이겨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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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꿈을 접은 사람
인문학 나눔

“어느 날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었다.  이것이 문제였다(중략).   

아인슈타인은 내게 신과도 같았다.  

비교도 안 되는 별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 위인전을 읽으면서 꿈을 키운 것이 아니라 반대로 꿈을 접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되기엔 과학자가 너무도 위대해 보였다. 

 천재만이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망 아닌 절망으로 나의 꿈은 흔들렸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김유열 저(著) 「딜리트」 (쌤앤파커스, 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위인전은 우리들을 때때로 아니 자주 좌절하게 만듭니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 과 ‘영웅’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가 싸움 한 번 안 하고,  부모님 속 한 번 안 썩이고 자랐을까요?  

우리들이 어릴 적 읽은 위인전은 객관적 보편 타당성이 있는 사실에 근거한 

논문이 아니라 동화 작가들이 쓴 것이 대부분입니다.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것이지요.  

따라서 사실이 아닌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일화가 그 대표적입니다.  

그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아끼는 나무를 자르고서  정직하게도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자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다 결국 어린 조지 워싱턴을 용서했다는 일화 말입니다. 

미국의 위인전 작가인 퍼즌 윔스는 조지 워싱턴의 이 일화에 대해 위인전을 

쓰다가 쓸 말이 없어서 창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인들도 영웅들도 우리들과 똑같은 실수를 하고 연약하고 죄악이 많은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더욱 감동적입니다.가장 정직한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그 어떤 위인도 그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와 똑같이 죄 많은 존재!  그러나 그런 사람을 기어코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이야기.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나도 변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이 솟습니다.  

기독 메시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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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59절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And may these words of mine, which I have prayed before the LORD, be near to the LORD our God day and night, that he may uphold the cause of his servant and the cause of his people Israel according to each day's 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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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성장은 사선으로 서서히 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어느 순간 불쑥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란 대개 위기로 다가오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의 부족함을 알기 위해서는 가장 큰 사람

하나님 앞에 서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야곱이 하나님과 대면한 곳이 브니엘 이었듯이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시길 축원 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위기, 즉 건강 재정 교육 등의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감사하며 받으실 것이다.

-이규현 목사의  '자기발견'에서-

 

 우리 삶 속에서 문제에 부딪힐 때 

어느 정도는 할 줄 압니다. 

어느 정도 되어있다 등으로 그냥 안주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이런 식의 삶은 날지 못하고 마냥 달리기만 하는

비행기처럼 힘만 들고 성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극심한 고통을 한 번 더 이겨낼 때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나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기회로 감사하며

지장물을 디딤돌로 승화시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소나기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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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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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내 생애 최대의 선물(딤후 1:3~8)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본문 해석

 직업 중에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직업은 사진작가라고 합니다. 그럼 행복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사직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는 모델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작업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는 두 직업의 만족도가 최고와 최저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요소가 외적인 환경보다 내면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요, 세상적인 성공에 있음이 아닙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은 은혜를 깨닫고 은혜안에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소유와 지위와 능력이 많든 적든 감사하고 만족하고 은혜로 생각한다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만 구하라고 하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다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7).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담대합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사명을 위해 살아갑니다. 은혜가 메마르면 자기 신앙도 지키지 못합니다. 성도는 사명 감당해야 행복한 것입니다. 복음적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자는 은혜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6). 

  은혜가 있어야 열정을 가지고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기에 이 열정은 심령에 불이 붙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조립된 자동차라도 엔진에 불이 붙어야 움직이고 기능을 감당하는 것처럼 성도에게도 성령의 불이 가슴속에 타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셨습니다(눅12:49). 이 불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타올랐던 성령의 불입니다.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근신하여 깨어 계속 기도하고 말씀 안에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내 생애 최대의 선물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단과 적용

- 내가 행복한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불행하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과 나의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며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록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주 하나님, 행복한 마음을 주시고 은혜 안에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장 귀한 선물인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사명 감당하기 원합니다. 식어진 가슴에 성령의 불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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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감동스러운 이유
인문학 나눔

“그는 사형수였음에도 늘 의연하고 떳떳하여 

일제 관료들마저도 머리를 조아렸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사형 집행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매우 침착한 태도로 안색이나 말도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끝까지 떳떳하게 죽음에 이르렸다.’ (뤼순 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관동도독부의 기록)  일제가 다른 사형수들과 달리 

시신을 눕힐 수 있는  ‘침관’ 을 허락한 것은 아마도 안중근 의사의

 이러한 인품을 존중하여 보인 최대한의 예우였을 것입니다.”

 설민석 저(著)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휴먼큐브, 1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침략의 원흉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 투옥됩니다.  형무소를 지키던 헌병 치바 도시치는 

안중근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치바는 처음에는 일본의 영웅을 죽인 안중근에게 적개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점차 안중근이 행한 거사의 대의명분과 동양평화 철학을 듣고,  

옥중 생활과 사형을 판결하는 재판정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연한 지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 품위를 접하면서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치바 도시치는 사형 직전 안중근에게 받은 

‘爲國獻身軍人本分’(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유묵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습니다.   

안 의사 사형 이후 치바는 제대를 자청하고 고향 미야기현 센다이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철도원과 경찰로 일하며 4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안에 

단을 만들어 안 의사의 초상과 위패와 필묵을 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렸습니다.  

아내 치바 기츠요와 그의 자식까지도 치바의 유언을 받들어 그러했습니다.  

안중근은 옳고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 님의 

묵상집 중에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제목이 참 좋습니다.  옳으면서도 아름다운 당신,

옳으면서도 좋은 당신 말입니다.  

옳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사람은 논외(論外)이고,  

옳지만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옳은 듯하지만 그의 마음에 사랑과 긍휼이 없을 때 그러합니다.

옳고도 좋은 사람이 좋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기독 메시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그림 큐티더 보기
야고보서 5장 15절
고린도전서 15:10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make the sick person well; the Lord will raise him up. If he has sinned, he will be forgiven.

도서 큐티더 보기
새 언약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거기서 나의 구원을 위해 

어떤 사랑과 희생이 있었는지를 알게 될 때에

 우리는 드디어 새 언약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 드디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당신의 율법을 기록하실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요구대로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판이 두려워서도 아니고 하늘에 들어가고 싶어서만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어 

다시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새 마음을 받았으므로

 순종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작자미상의 글 ‘새 언약의 경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거할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게 됩니다. 

구세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불길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독소들을 제거하여 

믿는 자들의 뜻과 동기를 순결하고 고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 언약관계에 들어와 있습니까? 

십자가로 나아갑시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새 언약의 관계를 통해서 죄를 이기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