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말렉에 대한 기억(신 25:17-19)

鶴山 徐 仁 2019. 2. 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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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14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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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아말렉에 대한 기억(신 25:17-19)

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찌니라 너는 잊지 말찌니라

본문 해석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17절).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창 36:12). 

이들은 팔레스틴 남쪽 광야에서 시내반도 사이를 배회하며 약탈을 일삼았는데 특히 이스라엘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출 17:8-12, 민 14:45, 삿 3:13, 삼상 30:1). 

본문이 지적하는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이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던 때 행군 맨 후미에 처진 <노약자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무참하게 살육한 사건(출 17:8-16)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였다>(18절)고 한 것은 아말렉 족속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이 이스라엘을 야비한 방식으로 기습 공격했다는 사실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범했다는 게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애굽의 바로를 제압하시고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이미 다 듣고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19절)는 말씀은 <아말렉 족속을 모조리 멸절 시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실제 아말렉 족속은 후에 사울 왕에 의해(삼상 15장), 그리고 시므온 자손에 의해(대상 4:39-41), 그리고 마침내는 에스더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에 3:1, 7:9-10, 8:11-13) 완전히 멸절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개인이나 족속은 마치 아말렉처럼 결국은 망합니다. 

아말렉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지워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과 아말렉의 멸망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19절)

결단과 적용

-본문이 지적한 <아말렉이 한 일>(17절)을 출애굽기 17:8-16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당시 이스라엘의 여호수아 군대가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이 <너는 잊지 말지니라>(19절)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의 당부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과거 아말렉은 참 악했고, 비열한 족속이었습니다. 

전쟁을 해도 뒤에서, 그것도 노약자들을 공격하며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며 그들을 응징하사 완전히 멸절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범하는 족속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리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를 향해서는 

<너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소중한 교훈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부디 이 말씀, 이런 이스라엘의 과거사가 오늘 저희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의도 밖의 돌멩이
인문학 나눔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렸다는 흥미로운 구절에서 

추해 보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어느 철모르는

(그러나 /그래서, 죄가 적은) 소년의 존재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인근을 배회하다가 그 현장에 입회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단호하고 현명한 개입이 아니었더라면 

그 역시 그 죽음의 현장에 별 의도 없이 붙어 있다가 

어른들을 따라 돌멩이 몇 개쯤은 던졌을 것이다

(중략) 우리의 철없는 소년도 돌멩이 몇 개쯤은 쉽게 던지게 되었을 

것이다.  ‘의도 밖의 돌멩이’, 몇 개쯤은!...”

 

김영민 저(著)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

(글항아리, 6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 위하여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이 여인을 돌로 칠까요?”  이때 예수님은 그 유명한 선언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통해 모두를 살리셨습니다.  

간음한 여인도, 돌을 들고 있던 민중들도, 무엇보다도 의도 밖의 돌멩이를 

던질 수 있는 어린 아이들도 말입니다. 

악한 의도를 담은 첫 돌이 던져진 후에는, 의도 밖의 돌을 던지는 사

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가책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집단 속에 함몰되어 얼마나 의도 밖의 돌을 뎐져 왔는지 모릅니 다.  

예수님은 악한 의도를 담은 첫 돌멩이를 막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의도 밖의 돌멩이를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으셨습니다.  

진정 ‘살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기독 메시지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9)

그림 큐티더 보기
고린도전서 14장 15절
고린도전서 15:10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So what shall I do? I will pray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pray with my mind; I will sing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sing with my mind

도서 큐티더 보기
안식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안식일은 궁극적으로 ‘일의 중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하게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안식일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해야만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마저 누르려고 

율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미에서 율법을 주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오지영의 [간절함의 자리] 중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안식의 참된 의미는 생명을 얻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날을 우리는 주일이라 부르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생명이 생명되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사랑이요. 안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