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목마르거든(2) (요 4:15-19)

鶴山 徐 仁 2018. 4. 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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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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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목마르거든(2) (요 4:15-19)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본문 해석

예수님께서 수가성을 찾으심은 물 길으러 온 무명의 여인에게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사람들의 속에 들어가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14). 

이 물은 영원히 갈증이 없는 항구적인 물입니다. 이 물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할 물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공급 받기 위해서도 선결 조건이 마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깨끗한 물이 집까지 공급되었다 하더라도 물탱크를 청소하지 않아서 더러우면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은 더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마음의 탱크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15-19).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에 대한 얘기를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 여인은 그물을 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15). 

그 때 주님께서 대뜸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비도덕적인 삶을 스스로 포기 하도록 하기 위한 요구였습니다. 

자기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는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생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불결한 삶을 인식하고 청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버립니다. 주님은 그 죄를 치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인은 주님께서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 때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그녀의 대답에 전에 남편이 다섯 있었지만, 지금 함께 동거하고 있는 사람은 너의 남편이 아닌 것이 진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없다고 대답하면 모르는 척하시지, 왜 과거의 편력에 대해서 지적하셨을까요.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하면 자기의 아픈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좀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인데 꼬집는 주님이 얄밉기도 합 니다. 

주님은 과거의 여인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어 정죄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를 알고 마음에 쌓여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죄를 고백함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범치 말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면 가십(gossip) 거리로 삼지만, 주님은 그의 사죄의 은총을 통해서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마음상태와 부끄러운 과거의 삶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여인은 주님의 지적 앞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변명과 구실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포장제입니다. 

포장하면 겉은 화려할 수 있지만 내면은 고쳐지거나 변화될 수 없고 계속 곪아 터지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계속 그것을 은폐하고,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통로를 깨끗하게 함으로 생수를 주시기 위함임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그 배에서 생수가 되어 흘러넘치게 하실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마음으로 주님께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으십니까? 조용히 그 분 앞에 자백하십시다.

- 성령님의 지적에 죄의 문제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거나 무감각하지는 않았는지요. 

- 이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내 삶을 맡기며 주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위대하신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아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릇된 생각과 삶으로 어긋난 길로 갔던 잘못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젠 성령안에서 맡겨진 사역에 충실하게 하시고 생수가 넘치는 풍성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인문학 나눔

“꿀벌들은 춤으로 말을 한다. 이른 아침 꿀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 돌아온 

정찰벌이 추는 춤을 읽으면 꿀 있는 곳을 알게 된다.  

그런데 종종 엄청나게 좋은 꿀의 출처를 발견한 정찰벌은 몇 시간 

또는 심하면 하루 종일 계속해서 춤을 춘다.”

 

최재천 저(著)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사, 23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고수(高手)에 이를수록 자연스럽습니다.  

어느 분야이건 고수를 보면 춤을 추는 듯이 일하고, 노는 것같이 유려합니다. 

자바(java)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고, 마림바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킴 폴리제(Kim Polese)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당찬 얼굴 빛과 자신감으로 많은 여성들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춤을 좋아한다고 하는 그녀에게 어느 기자가 성공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일하는 동안 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똑같은 질문을 춤의 여제 이사도라 덩컨에게 던졌다면 

“나는 춤추는 동안 일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고 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존의 일 벌레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을 놀이처럼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축제의 인간,  놀이와 일을 하나로 생각하는 인간, 종일토록 춤을 추듯 일하는 인간.

자신이 태어난 소명을 발견하고 그 일에 집중하면 춤추는 인생이 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그림 큐티더 보기
빌립보서 2:5
고린도전서 15:10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도서 큐티더 보기
죄인의 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믿습니다. 

죄를 짓는 이유, 악해지는 이유는 환경과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죄를 지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한 일도 없고 남을 해코지한 일도 없고 

법을 어긴 일도 없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본질적인 죄가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용조의 [예수님과의 사귐] 중에서-

 

신앙은 나의 죄 됨을 보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처음에 지으신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 회개 없이, 

주님을 닮아가지 않고는 안 됨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보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도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숨어 안에 감춰진 죄를 

드러내지 않고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악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귐이, 누림이 가능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