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쓰고 모든 이방 사람들과의 절교를>(1-2절) 선언하며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는 기도가 길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회개의 자리에서 고백한 하나님은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30절),
또<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31절)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당신의 백성에 대해 여러 해 동안 참으시며 마치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자비를 베푸는 분이십니다.
<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주님은 우리의 한계와 모순과 악한 심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죄를 짓고 불순종하며 반역을 일삼아도 여러 해 참으시며,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십니다.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내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책망하고 징계를 해도 불쌍히 여기며 다시 끌어안습니다.
죄는 미워하사 벌하셔도 반드시 용서하시고 회복케하사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과거의 유다 백성이든 오늘 우리 믿는 자든 하나님의 이 불쌍히 여기시는 은총이 아니면 누구도 제대로 설 수 없고 무사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늘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자, 세리와 창기 등을 다 불쌍히 여기사 가까이 하셨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29)하는 맹인들을 구원해 주셨고,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다>(마 9:35-36)고도 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란 사랑의 마음이며 연민의 마음,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며 긍휼의 마음입니다.
늘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긍휼로 새로워지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