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 부터인가 우리는 국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약해지거나 거의 없어진 세대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절을 통해 광야에서 장막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요단강을 건너고 열두 돌을 세우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한 것처럼 6월에는 나라의 소중함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민족에게 받은 것은 상처와 미움뿐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자신의 민족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 와서 죽이려고 하고 법정에 넘긴 일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자기 민족을 위해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사도 바울뿐 아니라 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자신의 민족을 향하여 그렇게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도 에스더도 자신의 목숨을 내 걸고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결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 밖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역사 안에 존재하여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와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말할 때, “아 우리 교회, 우리나라는 이상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교회이며, 당신이 우리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은 ‘조국은 사랑하고 기도해야 할 대상이지 숭배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링컨은 남북전쟁 때 모든 관료들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편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였지만, 그 사랑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민족들이 할례에 대해 강요하고 강조할 때, 그들의 위협에 절대로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되, 그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의 토대 위에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