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긍정의 신앙 (민수기 13:25~33) 외 1

鶴山 徐 仁 2017. 7. 3. 11:04
7월 3일 (월)
긍정의 신앙 (민수기 13:25~33)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사람들 중에는 긍정적인 사고의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부정적인 사고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같은 컵에 물을 보면서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사고하는 사람이 있고, 반밖에 안 남았다고 사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능히 그 문제를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좌우도 앞뒤도 멀리도 보이지 않아 그 문제 속에 갇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이야기도 동일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낸 열두 명은 각 지파의 대표되는 지도자들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곳곳을 상세히 살펴보고 증거물로 두 사람이 실과들을 매고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10명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악평하고 있습니다(32). 이들은 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맞았습니다. 실과를 보이면서 이게 증거입니다. 그들은 성읍은 견고하고 장대하지만 우리의 적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올라가서 취하십시다.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다수의 말을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더 빨리 확산되는 것입니다. 백성은 10명의 말을 듣고 돌로 치려하며 낙심하며 울고 불며 탄식하였습니다. 누가 그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으로 주저하게 만들었습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감당해 나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긍정을 신앙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긍정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나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수긍이 가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말씀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내용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성경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과 긍정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만 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빌4:13).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그분 안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나는 어떤 사고의 사람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 긍정의 신앙으로 살기 위해 고쳐야 할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긍정의 신앙인이 되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도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이제부터 모든 것을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게 하시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늘과 달과..

다윗은 양을 데리고 산과 들과 사막을 헤매다가
저녁이 되면 대지 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볼 때마다
.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감사 감격했고,
이런 아름다운 세상에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시편 8:3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안두익 목사의 ‘진정 감탄사가 있는 삶’에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이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다윗은 가슴 가득히 감동으로 느낀 것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많은 시들이 바로
그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쓴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채 바쁘게 살다보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느껴보십시오
주의 손가락으로 이것들을 하나하나 만드신
주의 위대하심에 감사감격하시면서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지혜의 삶48_이사야 53장 십자가의 지혜
  
  



7월 1일 (토)
앗수르 왕이여 (나 3:8-19)
  
 

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9.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10.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11.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12.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13.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14.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16.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니느웨는 결국 망합니다.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8절). <노아몬>이란 애굽의 18대왕 이후 140년이 넘도록 애굽의 수도 데베에 있었던 태양신과 아몬의 신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신전이 주전 664년 경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나훔은 그 노아몬을 예로 니느웨의 최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단한 도시의 신전도 망했거든 하물며 니느웨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니느웨가 자신의 담대함과 용맹스러움에 의지한다 해도 곧 그들의 마음이 무너져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 때문에 숨고 곤경과 위험이 두려워 숨고 적군의 기세와 무시무시한 모습 때문에 숨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주기적으로 쌓고 또 관리해 온 성벽과 수비대를 의지한다면 그 모든 게 곧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조금만 흔들어도 다 떨어지는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와도 같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튼튼한 산성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하는 재앙은 결코 막아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여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14절). 이것은 일종의 반어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너는 물과 식량을 준비하라. 그러나 그렇게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 흙을 밟아 요새를 튼튼히 하라.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이라.> 왜냐하면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할 것>(15절)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고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손뼉을 칠 것>(19절)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을 괴롭히고 능욕해 온 자는 그 능욕이 장차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실로 엄숙한 대목입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비유하여 들었던 <노아몬>(8절)은 얼마나 견고한 성이었습니까?
-니느웨가 멸망하는 날 앗수르 왕의 방백들과 장수들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니느웨의 멸망 소식을 듣고 주변의 이웃들이 손뼉을 친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 나훔 선지자의 예언대로 니느웨는 멸망했습니다. 그토록 견고했던 성이 무너지고 빗장들이 다 불타고 그 많던 상인들, 부자들, 방백들, 장수들이 다 메뚜기 떼가 흩어지듯 숨어 버리고 칼에 베이고 그래서 이웃들이 박수를 치며 통쾌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앗수르와 니느웨의 최후를 보며 오늘 저희들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으며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사람은 말 한대로 산다

사람은 말 한대로 삽니다.
평소의 입버릇대로 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이 그 사람의 미래입니다.
믿음과 칭찬과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하세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지고
그러면 나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아집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습관은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최용우 목사의 ‘말대로 됩니다.’에서-

 
   
 
  
 


말은 에너지입니다.
좋은 말은 좋은 에너지이고 나쁜 말은 나쁜 에너지입니다.
좋은 에너지가 흘러넘치면 나도 좋고 남도 좋습니다.
서로 서로 좋아하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재산이 불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 한대로 산다고 합니다.
평소의 입버릇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을 달고 살면 나와 남 모두가 행복해지고
미운 말 헐뜯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어떻게 창의적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