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2절). 또 3절에서는 <어찌하여 패역, 겁탈, 강포, 변론, 분쟁을 보게 하시냐>고 합니다. 4절은 더욱 절망적입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고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정의가 굽게 행해진다>고 호소합니다. 여기에는 유다의 모순된 현실과 죄악을 방관하시는 듯한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서려있습니다. <대답 없는 물음과 응답 없는 기도>가 그를 힘들게 하고, 막장으로 막장으로만 치닫는 당시 유다 사회가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박국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고난이 그를 회의스럽게 하지만 그 회의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에 의혹이 생기지만 그것 또한 하나님의 공의를 믿기에 묻고 또 물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라와 사회 현실에 절망하지만 그 또한 내 민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 때문에 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지자의 항의와 항변에 대해 바벨론을 통한 심판의 계획을 알리십니다. <너희는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5-6절). 이 메시지는 심판 전에 주시는 유다에 대한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묵인하시는 분도, 부당하게 심판하시는 공의롭지 못한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는 예고 없는 심판도, 이유 없는 심판도 없으십니다. 따라서 범죄한 나라나 개인이 이에 대비하는 일은 심판에 맞서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통렬하게 자복하며 깊이 회개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결국 그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표범보다 빠르고 이리보다 사나우며 독수리의 날음과 같은>(8절)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를 심판하시기로 하신 겁니다. 은혜를 패역으로 갚고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민족은 없다는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