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희망의 철학>은 <기다림>이 그 주제입니다. 사람의 삶은 기다림에서 결정되고, 무엇을 어떻게 기다리는가가 현재의 내 삶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기다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기다림으로 만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다림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합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살았지만 죽은 사람이나 진배 없습니다.
기독교도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기다림이란 구체적인 대상과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의 담보까지도 가지고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입니다. 이미 만났던 분을 기다리고, 내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렇습니다. 만나지 않았다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언제 만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라면 우리는 분명 그분을 이미 만났습니다. 그분이 속히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고, 그분이 다시 오시는 순간이 바로 이 세상 종말입니다. 성경 66권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은 주님의 이런 약속으로 끝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2:20).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또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자 성경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 마지막 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게 기독교의 메시지요,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오늘의 이 슬픈 현실 속에서도 그 날에 대한 기다림을 잃지 말고 삶에 지쳐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던져버린 이웃들에게도 꼭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게 우리의 고유한 미션입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13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