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은 모든 신들의 신이시다! 외 2

鶴山 徐 仁 2016. 8. 19. 11:09
8월 19일 (금)
하나님은 모든 신들의 신이시다! - 단 2:46-49
   
 

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47절).

이것은 자기가 꾼 꿈을 알아 맞추고 또 탁월하게 해몽한 다니엘에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한 말입니다. 심지어 느부갓네살은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까지 했다고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46절).

어디 그 뿐입니까? 다니엘을 지극히 높여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고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다고 했습니다.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49절).
이렇듯 자신의 영혼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희생하고 불이익을 당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대제국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까지 자기 앞에 무릎 꿇리고 그 입으로 <하나님이야 말로 모든 신들의 신이라>고 고백하게 한 다니엘의 통쾌한 승리를 보십시오. 그로 인해 친구들까지도 다 관료가 되어 지방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한계가 분명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우리 인생을 초조하게 만들 뿐인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주께서 우리의 영혼에 속삭이시는 미세한 음성을 들읍시다. 다니엘처럼 미명의 새벽에 이슬처럼 맺히는 그분의 말씀에서 인생사 온갖 비밀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계시를 깨달읍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그 영혼이 투명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볼 것이라>(마 5:8)고 한 말씀처럼 늘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관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런 신령한 지혜를 계시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 청년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도리어 바벨론을 다스리는 관료가 된 반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모든 신들의 신이시고 모든 왕들의 왕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십니까?

 
   
   
 

주님, 다니엘의 이야기는 저희가 세상을 어떻게 살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잘 말씀해 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과 믿음을 제대로 지키며 관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지도 잘 답해 줍니다. 또한 믿음의 진정한 승리가 어떤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놀라운 반전이 얼마나 감격스런 것인지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다니엘을 모범으로 신앙생활, 사회생활에서 진정으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주일 신앙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의미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7일에 안식하신 이것으로 원래 하나님의 창조는 끝이 났다. 만일 인류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안식이 깨어졌고 하나님께서 깨어진 안식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원래 안식일이 천지창조를 기리는 날이라면 이제 주일은 하나님께서 다시금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셨음을 기리는 날이다. 그래서 주님의 날이고 그래서 주일에 주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이다.
-김남국의 [넌 내가 책임진다] 중에서-

 
     
 
   
 


기독교의 신앙은 주일신앙입니다. 물론 일주일의 시작으로서 주일입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날이기에, 우리의 신앙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법을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이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기에,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킵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가 작은 부활주일입니다. 주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 감사,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겠다는 재현의 시간입니다.

 
     
       
 

인도하시는 자는 하나님

 

삶이라는 것이 항상 제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기에..
가끔은 모두가 달리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만 멈춰져 있는 것 같고
가끔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울음섞인 불만이 가슴 속에 가득 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 지 않는 그 순간조차도
반드시 하나님의 크신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믿고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숨차게 달려왔습니까?
   
   



8월 18일 (목)
금 신상에게 절하라! - 단 3:1-7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금방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너희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라>고 고백했던 느부갓네살 왕이 이제는 다시 금으로 거대하고도 찬란한 신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는 이방 왕 느부갓네살의 한계며 또한 그의 이교적 신관의 결과물입니다.

신상의 낙성식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신상을 세운 두라 평지에 나라의 모든 관료들이 다 모여 신상 앞에 절했으며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니라>(6절)는 경고까지 선포되었습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7절).

지금까지 자신들을 잘 지켜 온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게는 치명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무모하고 어리석은 듯해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사람은 없으며 세상이 보기에는 이미 결론이 다 나 버린 듯해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역사의 드라마에는 언제나 세상의 교만과 금 신상을 일거에 깨뜨려 부수는 역전의 클라이막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십자가는 그냥 저주로 그치지만 그걸 믿으면 십자가는 <사로잡힌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자의 큰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때로 감사할 수만은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 앞에서 남들처럼 금 신상 앞에 절하며 바람부는 대로 처신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게 명하여 동이 트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땅의 옷깃을 잡아 당겨 악한 자들을 털어내시고 끝까지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 자를 찾아 마침내 높이 세우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다니엘을 보면서도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 인생은 결국 표류할 것이며 때가 되어도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참 되심을 알면서도 돌아서서 다시 금 신상을 만들고 경배를 강요하는 느부갓네살을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이 세상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 아니면 우상을 섬김니다. 누구든 그 둘 중 하나며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이란 없음을 깨달읍시다.

-만약 당신이라면 느부갓네살 왕의 금 신상 경배 강요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 느부갓네살은 이방 왕의 전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모든 신 중의 신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다시 금 신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경배를 강요하며 만약 절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풀무불에 던져 넣었다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처신과 결단을 배우게 하사 어떻게 해야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결국은 사는 길을 택할 것인가를 본받게 해 주시옵소서. 무엇이 하나님의 기적과 반전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인가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

지상에서 가장 진실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습니다. 사랑보다 더 능력 있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보다 영원한 진리도 없으며, 사랑보다 더 순결하고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헨리 드러먼드가 말한 대로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선이요, 모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앞서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목적입니다.
-하용조의 [사귐] 중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처음 들은 소식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이며, 우리를 찾아오신 목적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의 증거가 사랑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랑의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사랑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지길 날마다 간구해야 합니다.

 
     
       
 

그 나무 아래로

 

“너, 내려오너라, 인생의 나무에서 너를 지으신 이 앞으로...
오래 외로웠던 지난 날에서 나와 너 내려오라,
너 내려오라, 내게로 오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삭개오를 예수님은 부르셨습니다. 저도 삭개오처럼 주께서 부르실 때, 제게 기회를 주실 때에 의심없이 기꺼이주님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큰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참 말을 하고 있습니까?
   
   




8월 17일 (수)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됩니다 - 로마서 3:11~22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니, 심지아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숨기기 시작하면, 회복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암에서 치료되기 원한다면, 내가 암이 걸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체의 여러 증상이 분명히 암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암에서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마치 의사의 진단과도 같아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짓말을 종종 하지만, 입으로 남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를 저주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상, 우리에게는 가망성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내 입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나를 온전하게 치유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회개해야 할 것들을 ‘개인 기도카드’에 적어보면 어떨까요? 내가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잘못 행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연속선

구하고 받는 것이 기쁨과 사랑의 생활양식이 된 관계를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사랑하는 이들이 저마다 심각하게 혹은 재미있게 서로에게 많이 주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이 관계의 본연의 모습이다. 물론 우리는 관계에 있어서 구하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는 것은 강요와는 다르기 때문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지도 않은 것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무턱대고 주시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도란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본연의 방식이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지만, 아니 우주만물이 다 주님의 손아래에 있지만 하나님은 찾고 구하는 이에게 주십니다. 겸손과 낮아짐이 없이는 구할 수 없으며, 경외함이 없이는 엎드릴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내 손 잡아주리라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무엇을 읽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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