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외 2

鶴山 徐 仁 2016. 8. 23. 09:38
8월 23일 (화)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 야고보서 5:1-6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설교를 들어도 말씀을 듣는 귀가 닫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이 머리에만 쌓는 지식이 아니라, 그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와 행동화 되어 손발이 움직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은 부한 자들을 향하여 주어지는 말씀으로 경제적인 부요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부분을 소유함으로 자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1). 세상적인 것으로 부하다고 생각된다면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감사하고 겸손함으로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신8:18). 특히 물질적으로 부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과소비를 통한 낭비생활을 절제해야 하며, 매점매석을 멀리하고, 대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함으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넉넉하고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은 보장되지만, 그 날에 가서 임할 고생으로 울고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2-3).
재물은 쌓아두고 고여 있으면 썩게 되고 좀도 먹습니다. 마치 돈이라는 것은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심한 악취가 나지만, 쌓아두지 않고 땅에 흩어버리면 밑거름이 되어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 곡식과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3절에서의 말세는 주님이 심판 주로 임하시는 결산의 때로 하나님은 꼭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역사적인 종말을 의미 하며, 누구나 마지막은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종말까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세에 재물을 쌓는 일이 주님 앞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되어 울고 통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축적하기 위해 임금을 착취하고, 그릇된 소득분배를 통해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함으로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착각 속에 살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압제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며, 심판의 때를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4-5).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면 돌아서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찔려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며, 끝까지 회개치 않고 교만하게 살아감으로 울고 통곡할 날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6).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와 등지고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이웃 간에 싸움이 납니다(딤전6:10).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받은 것만큼 올바르게 사용하고 다스림으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 재물로 사람을 살리는 아름답고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베푸는 일에 사용될 때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도가 있다면 아굴의 기도입니다(잠30:7-9).

 
   
   
 

- 나는 타인에 비해 넉넉하게 소유한 것들이 무엇인지 정리해 봅시다.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으로 관리하고 있는지요.
- 감사하며 주인되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것을 결단하고 기도하십시다.

 
   
   
 

풍성함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바른 물질관을 갖지 못하여 어리석은 청지기로 살아왔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옵소서. 새 마음을 주시고 영적 가치관의 정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시옵소서. 낭비하는 이기적인 생활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신앙의 중심을 잡아라

남편은 영적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의 영적 성장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남편은 기도를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해서 아내와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의 신앙이 성장하면 그 남편은 신앙적인 남편으로서 제대로 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남성도들은 아내의 신앙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신앙은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나가서 돈만 벌어 오면 된다는 식입니다.
-김상복의 [결혼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 중에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불러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버지와 남편으로, 어머니와 아내로 만드셨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자리나 위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자기의 자리를 지킬 때 가정은 화목합니다. 특별히 아버지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늘 기억하며 살아갈 때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마음을 받아주소서

 
       
 
   
  주는교회 강성현 목사
  트레이너
   
   



8월 22일 (월)
이웃을 향한 배려 -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2015년도에 OECD 36개국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줄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없다’고 말한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가 우리나라였다고 합니다(36위).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우리나라이며,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중 6분이라는 통계 조사입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함께 살아가지만 혼자라고 느끼는 ‘군중속의 고독’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경쟁사회로 돌입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인간관계의 단절인데, 이로 인하여 현대인들이 고독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이 시대는 인성과 관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없고, 오직 성공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교육받기에 이웃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로 태어나게 됩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며, 죄로 인해 모든 관계가 깨어지다보니 배려가 없어지고 신뢰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달라야합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떠나도 예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심을 믿고, 고난이 다가와도 성령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에 슬픔과 우울함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복음이 임하면 세 가지 변화와 충만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기쁨이 충만함으로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평안이 충만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니 두려울 것이 없어집니다. 셋째는 소망이 충만함으로 절망은 사라지고 비전과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은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그 이웃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본문에서 제사장은 지금의 목회자그룹을 말합니다(31). 그들은 직무를 수행하려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율법과 직무를 중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호6:6). 레위인은 제사를 돕는 사람들로서 지금의 교회 중직자그룹이라 할 수 있습니다(32). 그들은 예배와 봉사, 교회생활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우선시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과는 달리 유대인들이 철저히 무시하던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33). 그는 강도만난 사람을 보니 마음이 뜨거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상처를 싸매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손발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배려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웃을 향한 사랑과 배려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는 말씀을 따라 외로움과 싸우며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주는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삶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왜냐면 행복은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교회생활을 핑계로 이웃의 도움을 외면한 적이 있다면 고백하십시다.
-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간구하십시다.
- 오늘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이웃 섬김의 구체적인 실천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불신의 시대에 불러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웃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실천함으로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숙함이 있게 하시옵소서.

 
   
     
 

가르치라

리더가 된다는 것은 안내자가 된다는 것이요, 선생이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3년 동안, 24시간 함께 데리고 다니시면서 끊임없이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서 가르치셨다. 그들이 바라보는 자연 만물을 통해서, 그들의 생활에 익숙한 쉬운 이야기들을 통해서 심오한 영원한 진리를 전달했다.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서 사람을 치유하고 힘을 주는 사역을 보여 주셨고, 그들을 짝을 지어 곳곳에 보내어 똑같은 일을 실습해 보게 하셨다. 다른 바쁜 일이 많았지만, 예수님의 3년 공적 인생의 엑기스는 바로 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홍의 [거인들의 발자국] 중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가르침과 말씀으로 선포하고 전도함으로 영혼을 품게 하셨습니다. 아픈 자들을 향하여 물러섬 없이 주의 은혜로 치유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좋은 제자는 본 만큼 자라고 세워집니다. 오늘 품고 가르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일을 대신 하는 영광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어릴 때, 비오는 날 교문 앞의 엄마를 보면 참 안심이 되고 반가웠죠.
항상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것 같은 나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은
마치 비오는 날 만난 엄마의 우산처럼 따뜻하고도 편안했습니다.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8월 20일 (토)
금 신상에게 절하라! - 단 3:1-7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금방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너희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라>고 고백했던 느부갓네살 왕이 이제는 다시 금으로 거대하고도 찬란한 신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는 이방 왕 느부갓네살의 한계며 또한 그의 이교적 신관의 결과물입니다.

신상의 낙성식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신상을 세운 두라 평지에 나라의 모든 관료들이 다 모여 신상 앞에 절했으며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니라>(6절)는 경고까지 선포되었습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7절).

지금까지 자신들을 잘 지켜 온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게는 치명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무모하고 어리석은 듯해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사람은 없으며 세상이 보기에는 이미 결론이 다 나 버린 듯해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역사의 드라마에는 언제나 세상의 교만과 금 신상을 일거에 깨뜨려 부수는 역전의 클라이막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십자가는 그냥 저주로 그치지만 그걸 믿으면 십자가는 <사로잡힌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자의 큰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때로 감사할 수만은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 앞에서 남들처럼 금 신상 앞에 절하며 바람부는 대로 처신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게 명하여 동이 트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땅의 옷깃을 잡아 당겨 악한 자들을 털어내시고 끝까지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 자를 찾아 마침내 높이 세우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심을 잊지 맙시다. 다니엘을 보면서도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 인생은 결국 표류할 것이며 때가 되어도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참 되심을 알면서도 돌아서서 다시 금 신상을 만들고 경배를 강요하는 느부갓네살을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이 세상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 아니면 우상을 섬김니다. 누구든 그 둘 중 하나며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이란 없음을 깨달읍시다.

-만약 당신이라면 느부갓네살 왕의 금 신상 경배 강요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 느부갓네살은 이방 왕의 전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모든 신 중의 신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다시 금 신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경배를 강요하며 만약 절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풀무불에 던져 넣었다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처신과 결단을 배우게 하사 어떻게 해야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결국은 사는 길을 택할 것인가를 본받게 해 주시옵소서. 무엇이 하나님의 기적과 반전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인가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인내의 열매

실패를 견디며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인생의 좋은 열매는 각고의 노력과 실패를 이겨 낸 인내의 산물이다. 대개 인생은 빛나는 성공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들로 점철되어 있다. 빛나는 성공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험으로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다가 문득 새롭고 획기적인 것을 발견하거나 실패한 실험결과에서 성공의 열매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지도한 학생들도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구에 매진하다가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얻곤 했다. 한 뼘의 굴을 더 파는 수고와 인내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결과였다. 물론 어디가지 인내해야 하는지 그 한계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필요한 시점가지 인내하고 멈출 줄 아는 지혜는 오직 주님으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안종혁의 [인생, 거룩한 모험에 던져라] 중에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이 없다면 인내할 수 있을까요? 억지로 참음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으로 인내하는 것은 성령가운데 붙들려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오래 참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편리하고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 인내할 이유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힘을 잃어버렸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