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당신은 범사에 형통하고 있습니까?

鶴山 徐 仁 2016. 8. 31. 10:35

8월 31일 (수)
당신은 범사에 형통하고 있습니까? - 창세기 39장 10-23절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어서 다른 형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부모님과 형들 앞에서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꺼냅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밭에서 곡신 단을 묶어놨는데, 요셉의 단이 일어서고 다른 모든 단들이 그 단을 향해서 절을 했다는 겁니다. 형들은 그 말을 듣고서,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말하면서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또 한 번 요셉이 꿈을 꿉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했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서 형들은 시기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가정에서 동생이 나보다 잘 될 때, 진정으로 축복하는 마음보다 시기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습니까?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서거나 내가 그 사람을 높이는 자리에 있을 때,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까?

또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나보다 한 참 뒤에 교회 나온 사람이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시기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가 비단 과거에 있었던 요셉의 이야기뿐 일까요?

오늘날 가정과 교회에서, 아니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상처를 주고, 깨지고, 원수 맺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요셉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보고 느낀 그대로 말한 것을 꾸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그렇게 말하는 동생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안아줄 수 있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할수록 마음의 창이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초보적인 신앙, 아직 미숙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용납해 주고, 기다려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동생 요셉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신앙인이 된 사람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내 주변에 이렇게 나를 뛰어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고 돕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려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임종의 순간은 하나님을 뵙는 날이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 살 동안에도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나 육안으로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12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뵙는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야 된다.
마치 시집 갈 날을 잡아 놓은 신부처럼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즉시 천국 갈 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 성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마치 안경알을 닦듯이 우리의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갈고 닦으며 수련을 해야 된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야 한다.
-안두익 목사의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서-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느냐일 것입니다.
인생을 화려하게 살았어도 마지막 부분이 비참하면 잘 산 인생이 아니라 불행한 삶입니다.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됩니다.
지금 힘들어도 아직 끝을 아름답게 장식할 시간이 있습니다.
결혼생활, 신앙생활, 직장생활을 끝까지 잘 하십시오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과 교회, 그리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성화의 길을 걸으십시오 .
그러면 끝이 아름다워집니다.

 
     
       
 

주님의 마음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For he does not willingly bring affliction
or grief to the children of men.

예레미야애가 3:33

 
       
 
   
  김옥엽 시인
  기도의 성공을 위하여
   
   

 

 

8월 30일 (화)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 - 요한복음 8:31-36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8월 15일은 민족적으로 가장 기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민족 전체가 자유와 해방을 얻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독교 신앙에 이르기까지 큰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풀어야할 문제가 많습니다. 특별히 남북문제는 신앙인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기보다는 기도의 자리에 서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방을 판단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며 무기를 농기구로 변화시킬 수 있으신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사2:4).
인간은 원래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생에 들어옴으로 인해 우리는 부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자유인으로 죄의 사슬에 매여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는 현상이 바로 ‘중독’입니다. 도박, 음란, 스마트폰, 게임에 이르기까지 중독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자유를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전1:2). 수가성의 한 여인은 6명의 남자와 살아봤지만, 그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예배에 대해 물어본 것을 봤을 때, 신앙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허무했습니다. 우리도 많은 헌신이 있고 예배와 기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공허하고 허무하다면 신앙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뿌리가 아무런 영양분도 빨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런 사람의 삶은 고독과 외로움이 가득할 것입니다. 인생의 허무와 공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만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뿌리가 강변에 뻗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렘17:6-8). 세상적인 것이 다 있어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이 없는 인생과 가정은 참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습니까? 본문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32).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삶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식과 예술, 윤리와 철학, 종교적인 고행과 경험으로 각자 진리를 찾습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생활은 뛰어 났지만, 진리에 대해 무지했기에 엉뚱한 이야기만 합니다(33). 진리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즉 복음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붙잡고 복음적인 삶을 사는 자는 말씀 따라 살아갑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알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요, 말씀대로 살아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31). 결국 진리 되신 예수님과 함께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참된 자유함이 있습니다(36). 지금 물질, 명예, 사람, 시간에 묶여 부자유하다면 문제입니다. 다시 예수님 모시고 진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로소 자신이 서야할 곳과 삶의 방향을 찾게 됨으로 자유인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분을 스승으로 삼아 진리의 복음 안에 뿌리내린 참 자유함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 복음의 진리에 뿌리내린 자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결단하십시다.
- 나의 삶에 ‘중독’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고,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다.
- 오늘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어떤 실천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이 나라 민족을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분단된 조국에 새 시대가 열려지게 하시고, 복음의 진리안에서 통일한국, 복음한국, 예수한국, 선교한국, 이루게 하시옵소서. 나를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참 자유를 얻고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다지 유익할 것이 없는 재물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재물이 불의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영적인 것은 거룩한 것이고
육신적인 것들이나 재물 같은 것들은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씀하는 불의한 재물은 ‘부질없는 재물’ ‘덧없는 재물’
‘그다지 유익할 것이 없는 재물’그렇게 보면 된다.
사실 재물 때문에 얼마나 추악한 일이 많이 생기는가?
물질이 더러운 건 아닌데 그 때문에 더러운 일들이 참 많이 생긴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니 그럴 바에야, ‘그런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리하면 그것들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조한우 목사의 ‘지혜로운 청지기’에서-

 
     
 
   
 


영원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또 우리의 친구는 누구인가요?
위에 계신 나의 친구,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그 분,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불의의 재물, 부질없고 그다지 유익할 것 없는 그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귀십시오.
그리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질 때에 -
그 알량한 돈 몇 푼, 땅 몇 마지기,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릴 때에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는 용기

 

빠삐용이 몸을 던졌다는 그 벼랑에 섰다
벼랑 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옥엽 시인
  가장 친한 친구
   
   

 

 

8월 29일 (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 마태복음 14:22-3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에도 이 행복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고, 건강하더라도 질병이 찾아올까봐 두려워합니다. 왜 인간은 두려움에 붙들려 살아갈까요? 그것은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결국 원죄(原罪)가 두려움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은 첫째는 죄 때문에 받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채찍질입니다(히12:6). 부모가 잘못된 길을 가는 자녀를 징계하듯이, 그 목적은 회개함을 통해 회복함에 있습니다. 둘째는 연단하심입니다. 잘못이 없더라도 훈련의 과정을 통과함으로 더 성숙케 하심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발전하고 인류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수록 더 큰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제자들의 경우는 풍랑을 만나게 되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24).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는 언제 어떤 풍랑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어부들도 있었습니다만, 노련한 기술과 경험의 부족함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밤 4경(새벽3-6시)까지 노력했지만,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에 있었던 엄청난 기적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입니다(14:13-21). 제자들은 그 현장에 있었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기억했다면, 지금 만난 풍랑도 별거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기억하라는 말씀을 반복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라 하시면서 구원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셨습니다. 본문만 보면 예수님은 마치 풍랑 속에서 제자들을 내버려 두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시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막6:47-48).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형편, 고난과 문제들을 모두 아시며 보고 계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시면 모든 풍랑이 잔잔해질 줄로 믿습니다 또한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두려움이 마음에 생길 때, 지금 당하고 있는 형편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웠던 것은 풍랑만 바라볼 뿐, 그 풍랑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 하십니다.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죽음의 위협 앞에 선 바울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행23:11). 결국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습니다(31). 내 앞에 나타난 풍랑만 보지 말고, 풍랑위로 걸어서 내게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딤후1:7).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하면 그 분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결과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 어떤 두려움에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십시다.
- 혹 고난과 시련 중에 있다면 회개함과 인내함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고,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기를 결단하십시다.

 
   
   
 

신실하신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리석게 살아가는 저를 그래도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역경에서도 담대함으로 주와 함께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아무나 하나님께 나와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올 자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모든 결과가 자기가 노력해서
되어 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발전하고
은혜는 더하여 진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장 15절)
-이동연 목사의 ‘감사는 만사를 형통하게 한다.’에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변화가 일어나 크게 성장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설교를 들어도
설교를 자로 재듯 이렇고 저렇고 따집니다.
그러다보니 성장이 없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고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주는교회 강성현 목사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