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모음

鶴山 徐 仁 2015. 3. 3. 11:19



사랑은 아교풀이다


그러면, 이 부분적인 것들이 완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아교풀이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큐티를 할 때도,
거기에 주님과 이웃을 생각하며 눈물 어린 사랑이 있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랑의 겸손이 있고,
사랑의 기다림(오래 참고)이 있고,
사랑의 작은 친절(친절하며)이 있고,
사랑의 예의(무례히 행치 아니하고)가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큐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13:2 >
-하용조 목사의 ‘부분적인 것, 완전한 것’에서-

오늘 우리가 중대하게 수행하고 있는 일들을
한 번 정직하게 들여다본다면.
그 일에 ‘옳은 것’은 있지만,
‘사랑’이 묻어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사랑’을 아교풀로 사용하십시오.
모든 것을 이어주며 완전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꿈꾸는 사람 요셉 - 창 41:37-43
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큰 실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단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거듭 꿈 이야기를 하여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창37). 결국 이런 일들로 인해 17세의 청소년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고, 30세가 될 때까지 갖은 고생을 합니다. 결국 요셉은 자신이 품었던 꿈이 그의 전 생애를 이끌고 갑니다. 어떤 꿈을 가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를 위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꿈꾸는 사람은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성실하고 정직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 중에도 명을 따라 길을 물어 끝까지 해냅니다(창37:13-17).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다가 가정 총무로 일할 때에도,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가서도 성실함에 인정함을 받습니다. 총리의 자리에서도 애굽 전역을 발로 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기도만하고 일하지 않는 기복주의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만 하려는 인본주의 신앙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기도하며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신본주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한 삶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창39:21,23). 바로의 꿈 해석도 하나님이 하셨음을 인정합니다(창41:16).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그가 길을 지도하십니다(잠3:6). 중요한 것은 사람을 믿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름다운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꿈을 꾼 시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잊고 싶은 세월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열심히 충성하고 최선을 다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셉이 지혜롭고 명철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38). 다니엘도 하나님의 힘으로 그 당시 모든 박수와 술객보다 지혜와 총명이 십 배나 더했습니다(단1:20). 사탄은 환경의 위기를 당하면 우리에게 포기를 강요합니다. 그때 성령님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을 재기의 발판으로 만드신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적용]
- 나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 꿈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꿈인지 점검해 봅시다.
- 나에게 환경을 초월하는 성실함과 정직성이 있는지 부족한 점을 보완하십시다.
- 나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지, 신본주의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 기도하십시다.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이렇게 저의 삶을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꿈을 꾸게 하옵소서. 저의 신앙과 인격을 다스려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이제 좀 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며,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의 어려움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을 기다리며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사랑은 위협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사랑의 작은 터치를 통하여 일하셨다.
작은 터치가 딱딱한 껍질을 깨는 능력이 있다.
터치가 크면 사람들은 위협감을 느끼게 된다.
기독교는 강한 터치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종교가 아니다.
사자나 곰의 혀는, 예리한 칼과 같은 비늘로 되어 있어
'이쁘다' 하고 혀로 핥으면, 피부가 벗겨지며 피가 난다고 한다.
어떤 순간에 성도가 곰의 혓바닥처럼 일하려 할 때가 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위협을 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도록 다가갈 때가,
자기도 모르게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해 보았는가? 사랑은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
-하용조 목사의 ‘사랑은 친절하며’에서-

예수님이 압도적인 물량으로 위협적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일하셨고,
인격으로 직접 자기 삶을 보여주심으로 일하셨고,
작은 터치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으로 일하셨습니다.
12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해서 쉽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런 (강압적)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변화되지 않기에,
주님은 바보처럼 ‘친절'로 일관하셨습니다.
인격은 인격이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갈라디아서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한 나그네의 행복일지 - 전도서 3:11-14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도서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에 있어서 지혜를 비롯한 모든 부귀영화를 경험했지만, 이상하게도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였으며 헛된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합니다(전2:4-11). 내가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하여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세상적으로 성공을 했어도 지금에 와서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면 불행이며 아픔입니다. 하나는 얻었는데 다른 하나를 잃어 버렸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의 균형이 깨어졌거나 가정의 불화가 닥쳐왔다면 이미 이룬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주님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참된 행복의 비결은 인생은 나그네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11). 신앙인은 천국에서 누리는 그 영원한 날을 사모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사랑하며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나그네로 사는 동안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 알았다고 말씀합니다(12). 얼마 안남은 삶을 사는 동안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일만 하십시다. 우리의 남은 날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사업에 목숨을 걸면 안됩니다. 가정과 교회생활과 직장생활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또한 행복한 삶은 거창한데 있음이 아니라 단순한데서 얻을 수 있다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13). 지혜는 분별력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줄 알고 헛된 것을 쫒지 않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가장 행복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즐겁고 감사함으로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날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자고 깨고 서로 이야기하고 한 지붕 안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은 나그네 인생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지혜자로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적용]
- 내 인생 여정의 길을 계수해보고 지혜로운 남은 길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 현재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점검해 봅시다.
- 내 삶을 주님께 맡기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하십시다.

[기도]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나그네 인생길 가는 동안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남은 세월 허송하지 않고 사명 제대로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시옵소서.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오직 빛만이 어둠을 쫓아낸다


아주 음란한 영상을 계속 들여다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안과 밖이 비슷하니까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이다.
무당의 자기모순은 ‘귀신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는데’ 있다
처음에는 잘 쫓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나빠진다.
예수님은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한다’고 하셨다.
어둠이 어둠을 쫓아내지 못 한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쫓아낼 수 있다.
-하용조 목사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에서-

귀신을 쫓아내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평소 인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님과 늘 가까이 사는 사람만이, 귀신을 쫓아냅니다.
평소에 인격이 절제되지 못하면 귀신들린 자를 두려워합니다.
귀신이 나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야 되는데,
내가 귀신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빛이 되고, 내 속에 빛 되신 예수께서 충만히 임하실 때,
나도 귀신에게서 놓여나고 다른 귀신들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빛 앞에 어두움이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이사야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will eat the best from the land;
기근과 전염병에게 자유를 - 렘 34:17-22
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17절).
하나님과의 엄중한 계약을 파기하고 같은 동족을 종으로, 노예로 부린 일은 그 어떤 허물보다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사 마땅한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의 편중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모순을 경계하시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부조리가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두셨는데 현실 속에서는 그게 거의 작동되지 않아 하나님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송아지를 둘로 쪼개다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서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18절).
이 말씀은 네가 나와 맺은 계약을 어긴 자들을 둘로 쪼갠 송아지 같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엄숙한 선서와 계약에 의해 하나님과 합의한 약속들을 무참하게 깼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잠시 포위망을 풀고 그들에게서 떠나자(21절) 더 이상은 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과 함께 노비들을 풀어준 자신들의 경솔함을 후회하며 지체하지 않고 그들을 다시 잡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하나님 우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이름을 더럽혔다>(16절)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짓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마치 축제 때 송아지를 둘로 쪼개듯 그렇게 그들을 징계하고 심판하시겠다며 벼르고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처참한 황무지가 되리라
<... 내가 그들을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22절).
갈대아 군대가 작전상 잠시 물러가자 대담하게도 유다가 즉각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이전의 최악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갈대아 군대를 즉각 되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지금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회군하게 할 것이고 그들은 다시 이 성을 쳐 불사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구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전조이듯 죄 가운데서 안일하게 사는 것은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흉조나 다름없습니다. 심판이 미처 그 종말을 고하기도 전에 어느 교만한 민족에게서 떠났다면 이는 곧 다시 올 의도를 지닌 하나님의 뜻임을 잊지 말 일입니다. 그것은 훨씬 더 강력한 심판으로 임하기 위해 잠시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사 모든 유다 성읍들을 쳐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라>(시 18:26).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그 풍성함으로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교회 내엔 나쁜 사람도 있고, 뾰족한 사람도 있고,
상처와 원망 투성이도 있다.
때론 목회자로서 수많은 아픔과 눈물을 경험할 때도 있고
심지어 버림을 받을 때도 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주님이 내게 하신 대로 나도 따라 한다.
묶어서는 안 된다. 풀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풍성하고 부요함 가운데 모든 것을 풀어 주어야 한다.
만 가지 죄에도 불구하고 보혈의 공로로
나 같은 죄인을 죄 없는 자로 여기시는 하나님,
그 풍성한 지혜와 지식과 은혜로서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
-화종부 목사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에서-

우리는 상대가 용서 받을 만한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용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하신 그 은혜의 부요함을
죄인과 병자와 아무 공로 없는 자들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행한 것이 없는 자, 죄 많은 자, 자격 없는 자,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일꾼,
그들 모두에게 너무도 많은 복을 주시는 것,
그것도 그냥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감격의 은혜 앞에서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묶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전서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For he who was a slave when he was called by the Lord is the Lord's freedman; similarly, he who was a free man when he was called is Christ's slav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하고 - 렘 34:8-16
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하나님은 참 무서우시고 철저하신 분이십니다. 무엇이든 결코 그냥 넘어가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반드시 그걸 짚고 넘어가십니다. 이번에는 다시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계약을 파기했다고 지적하십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8절).

동족을 종으로 삼지 말라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종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9절).
하나님은 원래 동족을 종이나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 사람들은 주로 채무관계로 같은 민족을 종이나 노예로 삼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바로 안식년 제도입니다. 즉 동족을 종 혹은 노예로 삼더라도 6년까지만 부리고 안식년이 되는 7년 째는 자유인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지의 경우도 7년 째는 경작을 쉬고 50년 째가 되는 희년에는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왕으로부터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걸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 계약을 그들 스스로 파기한 것입니다. <...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14절). 과거 유다의 선조들도 그랬는데 그들 후손들 마저도 역시 불순종하여 계약을 이행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 죗값을 물어 바벨론을 통한 심판을 감행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끌어다 노비로 삼았더라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를 삼았더라>(11절).
<그들의 뜻이 변하여>라고 한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애굽의 측면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잠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퇴각하자 시드기야를 비롯한 여러 고관들이 당장 <뜻이 변하여> 자유케 했던 노비들을 다시 끌어다 부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쉽게 변하면 못씁니다. 믿는 자들은 심지가 굳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므로 한결 같아야 합니다. 사람과 맺은 계약도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과 맺은 계약은 더욱 더 엄격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하나님의 말씀과 계약을 이행하는 척하다 사정이 좀 나아지면 즉각 그 뜻이 변하여 다시 풀어줬던 노비를 끌어다 부리는 악한 짓을 삼가십시오. 하나님이 벌하십니다. 과거 유다는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하나님과의 계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짐으로써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영을 살리는 설교를 하려면


예수를 알려면 스스로 밤을 새우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하거늘,
스스로 생명을 찾고자 생명을 구하고자 하여
두드리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하거늘,
그리고 알았다면 진실로 사랑한다면
자기가 아는 것을 수도 없이 밤낮없이 전해야 하거늘,
죽은 영들에게 생명을 심어주는 일을 가장 부지런히 해야 하거늘,
코미디같이 하는 설교, 기적이나 신비를 추켜세우는 설교,
신학이나 철학적 요소로 유식한 것처럼 하는 설교,
그저 사람의 비위나 맞춰주는 설교, 이런 것들이 영을 살리나요?
-작자 미상의 글 -‘아! 설교’에서-

진실로 예수를 알고 진실로 예수를 사랑한다면
언제어디서나 열정적으로 자기가 아는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한테 배우지 마시고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이신 예수로부터 직접 배워야 합니다.
배우면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직접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올바로 전하고 계십니까?
아니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로 부르고 있습니까?
말씀 속의 성령, 곧 하나님이신 예수로부터 직접 배우십시오.
보혜사란 깨닫게 해주시는 스승을 말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He will not let your foot slip-- he who watches over you will not slumbe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 렘 34:1-7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3.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6.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
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들을 칠 때입니다. 매우 긴박한 상황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2절).
유다 왕 시드기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로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시드기야>란 이름의 뜻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 그러나 그의 행적, 치적은 결코 정의롭지 못했습니다.

너는 바벨론으로 잡혀 가리라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3절).
시드기야 왕의 가장 큰 과오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지속적인 반대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바벨론을 배반하고 대신 애굽을 섬겼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애굽에 사신을 보내 바벨론의 범접을 막고 유다를 보호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애굽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바벨론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도록 충고하셨지만 시드기야는 오로지 애굽 만을 고집함으로써 결국은 하나님과 바벨론의 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드기야 왕은 왜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기로 한 약조까지 깨가며 애굽과의 외교에만 매달렸을까요?
애굽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문명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애굽 정책을 도모하며 차라리 문명국을 섬기겠다는 심사였는데 그게 마침내는 바벨론의 불 같은 노여움을 사면서 느브갓네살 왕의 침공을 피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애굽은 말로만 그럴 듯하게 유다를 안심시켰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버린 것입니다.

평안히 죽을 것이라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절).
하나님은 너희가 아무리 저항해 봐야 이미 내가 이 성을 바벨론에 넘겼으므로 더 이상 사태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잡혀 가더라도 칼에 비참하게 살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평안히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잘 보낸 하루가 평안한 잠을 보장하듯 잘 살아온 그 사람의 인생이 평안한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경우는 불순종하고 어리석었을 뿐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구석이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에 대해 사로잡혀 가기는 하되 살해되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고 또 사람들이 그를 위해 장례까지 치를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바벨론에 순순히 당해 그간의 죗값을 치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의 유다 침공은 표면적으로는 유다의 바벨론 배반과 친 애굽 정책이 부른 화지만 실질적으로는 바벨론을 택하사 유다의 죗값을 물으신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었음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시드기야 왕의 최후를 배려하사 최악은 면케 하셨습니다. 평안한 죽음과 장례까지도 보장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보다도 죽을 때 잘 죽고 평안히 죽어야 복된 인생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예수님,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윗은 기술이나 힘으로 이긴 게 절대로 아니다.
다윗의 무기는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에는 예수님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예수님은 왕 중의 왕이시다.
예수님의 본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막대기와 돌이 아니다.
예수님,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한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정관철 목사의 ‘다윗의 승리 비결’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전능자의 이름, 창조주의 이름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위기와 고난 가운데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 창세기 12 : 5~10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가나안땅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의 아들, 조카 롯과 함께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의 세겜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이 아브라함의 삶에 동행하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의 예배입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축복을 누리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9-10절을 보면,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제사를 드린 이후에 그 땅에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결국 애굽땅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해서 인생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첫발을 내닫고 가나안땅으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풍성한 열매가 아니라, 기근과 배고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넘어지거나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주시는 복에 집중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루 하루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뱀의 혀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성경 말씀은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의
일관성 없고 모호한 설교 덕분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설혹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성경을 조화 있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하늘의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뱀의 혀가 둘로 갈라져있는 것처럼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
그래서 말씀의 지식과 영 분별이 중요하다.
-로이드 존스의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의 특징’에서-

어떤 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설교하다가
어떤 때는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의 특징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기에 완전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아도 역사하십니다.
심지어 교리와 잘못된 가르침과 신학을 갖고 있는 어린 신자라도
그 동기와 중심만 바르다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이것을 악용하지는 않는지 말씀으로 살피십시오.
저들의 혀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로마서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성령 충만한 삶 - 사도행전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강림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날부터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령하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는데 열흘째 되던 날에 그 모인 곳에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영적인 사건은 갑자기 되어진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요엘2:28-29). 베드로 사도도 이 사실을 설교하였습니다(행2:16-21).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17)라고 말씀하신 바 있으며, 또한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 성령 강림의 사건입니다.
오순절이 되어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있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꽃의 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 사람위에 임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열다섯 나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었는데 놀라서 신기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7-8). 크리스천은‘성령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성령충만의 사건이 초대교회에만 주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성령충만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음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을 받음은 일평생의 신앙생활하면서 단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험한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임하실 때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성령 받음과 성령세례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성령을 처음 받을 때 경험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시로 반복해서 할 수 있으며 계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령을 받고 성령충만의 경험을 했어도 얼마든지 성령충만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와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은 죽음의 두려움 없이 능력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유무상통한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며, 그 결과 백성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행2:45-47). 성령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성령 충만 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매일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

[적용]
- 나는 거듭남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고 있으시나요?
- 성령의 임재와 성령 충만함을 잘 이해하고 있으십니까? 다시 정리해 보십시다.
- 성령 충만한 성도는 변화된 모습이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나의 삶을 살펴보십시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사모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임하옵소서. 더욱 충만케 하시옵소서. 그래서 담대하게 주의 일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초대교회의 강력한 복음의 역사가 내 안에 있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면


주님은 내게 와서 나를 배우라고 하신다.
주님을 배워 주님의 냄새가 나야 한다.
첫째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 낮아짐과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시는 섬김을 배우라한다.
또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저들의 용서를 간구하셨으니 용서를 배워야 한다.
주님은 네 이웃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바울 사도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있는데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 없다면 다 허사요 허공을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결국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는 말은
주님을 배우고 천국을 소망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김진덕 목사의 ‘대림절을 지키는 마음‘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영생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 땅의 정욕, 탐심, 교만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땅에서의 삶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수의 모습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영생도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이 땅에서의 삶은
결국 천국의 삶을 훈련하는 훈련장인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A man who has riches without understanding is like the beasts that perish.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축복의 사람 야곱 - 창세기 47:7-12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창세기에서 아브라함부터 족장들의 구원의 드라마를 보면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바로로부터 ‘네 나이가 얼마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8).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속이기도 속기도하면서 4명의 아내와 살며 12명의 자녀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고향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으며, 고향에 돌아와 안정을 찾게 되지만 막내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팔자가 참 사나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조금씩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험악한 세월은 보내는 동안 그의 신앙과 인격을 다듬어가는 과정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일대기를 정리해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족장 야곱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오늘의 나는 누구입니까? 아직도 나의 갈 길과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한 방랑하는 인생인지, 아니면 순례자로서 본향을 그리워하며 따라가는 신앙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나의 인생의 남은 기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순례자의 삶은 먼저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합니다(벧전2:11). 다음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가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을 다하여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벧전1:17).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웃을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야곱은 인생 말년에 와서 바로가 제국의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축복합니다(7, 10). 모든 자기 아들을 축복하며 인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야곱은 지난날의 야곱이 아니라, 누구보다 감사하고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노년을 복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에도 간섭하시고 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기 원하십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행복한 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적용]
- 나의 지난날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후회 없는 삶, 정신없이 살아온 삶, 부끄러운 삶)
- 나는 방랑자인지, 순례자인지 점검하고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 남은 생애 이웃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저의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세월을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 이웃을 축복하는 자로 살게 하시옵소서. 야곱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 여전히 저와 더불어 행하기 원합니다. 야곱의 노년을 복 주신 것처럼 저의 생애에도 간섭하시고 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통일의 날까지 야성의 기도를


주체사상에 세뇌된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령으로 거듭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사람들은 인식한 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리면서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탈이념시대라고 해서 다들 무장해제를 하고 있지만
한 군데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있다
주체사상에 세뇌된 좌파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성령으로 무장된 우리가 기드온처럼 일어서서
통일을 향한 기도의 들불을 일으켜야 한다.”
-손인식 목사의 ‘그날까지 운동’에서-

야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물질이 많아지고 지식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그것을 지키려다 야성을 잃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의를 향한 야성을 놓고 말았습니다.
북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남한도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남한을 위해서도 싸워야 합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이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사명을 갖고 기도하면 성령님이 우리나라를 움직여 주십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잠언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Gold there is, and rubies in abundance, but lips that speak knowledge are a rare jewel.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지혜의 근본


제가 아이에게 어디가든지 이 말을 잘 기억하라. 라고 했다
첫째, 엄마 아빠의 말은 옳고
부모님은 무조건 선하다고 생각하라.
아니면 맞든지 굶던지 해야 할 것이다.
둘째, 회사나 군대 상관의 말은 다 옳고 그들은 선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직장에서 나오고 가난해질 것이다.
셋째, 부모나 상관은 절대 권력은 아니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무조건 100% 옳고 선하고 의로우시다.
아니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것이 지혜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애드민의 ‘새로운 의의 개념’에서-

이 땅의 권세를 부정하는 학생들을 보세요.
선생님, 부모님 말씀 안 듣는 학생들은
이상하게 교회를 안갑니다.
이 땅에서 대드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대들기 때문에
못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절대 권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두 선합니다.
이것을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것은
엄마에게 말대꾸하다가 맞는 것과 똑같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신명기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If you ever forget the LORD your God and follow other gods and worship and bow down to them, I testify against you today that you will surely be destroye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하나님의 소원은 영혼구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히 살인죄입니다.
그런데 영혼을 죽이는 것은 영혼살인죄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 그리고 부모나 이웃이나 친척,
친구나 옆 집 영혼이 지옥가게 두는 것은 영혼 살인죄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급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오늘 전도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영혼들입니다.
또 전도하면 자기 신앙이 자랍니다.
자기에게 축복이 됩니다.
-박종태 목사의 ‘전도하지 않으면’에서-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 그리고 부모나 이웃이나 친척,
친구나 옆 집 영혼이 지옥가게 하는 것은 영혼 살인죄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은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에게 명령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우리의 의무이자 축복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The LORD will open the heavens, the storehouse of his bounty, to send rain on your land in season and to bless all the work of your hands. You will lend to many nations but will borrow from non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현재의 삶과 미래가 더 소중하다


어떤 성격에 대해 과거의 원인을 찾는 것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사단의 양심'을 자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항상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과거의 잘못과 상처를 떠올리고, 그렇게 지나치게 떠올리면
오히려 해결은 더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의 삶과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의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내 속에 없는 사람은 과거가 현재를 붙잡고
압박할 수 있지만 성령이 내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상처는 흩어지는 미망에 불과하다.
-박종태 목사의 ‘과거의 상처에 집중하지 마십시오’에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라는 발목에 붙잡혀서 찬란한 미래,
보증된 미래의 영상을 희미하게 만듭니까?
그러므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급선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나의 삶에 살리는 영이신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과거의 상처가 나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ions may grow weak and hungry, but those who seek the LORD lack no good thing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세상에도 빛이 없는 건 아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빛이 없다는 말인데.
이 세상도 참과 거짓,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있다.
무지를 밝히는 빛이 있다.
그러나 그 빛은 궁극적이며 완전한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귀함, 인간의 미천함을 드러내는데
어느 정도의 힘은 있지만.. 그러나 세상의 빛은
어느 것에도 절대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들은 불의를 물리치는 빛,
생명을 살리는 따사로운 빛 모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진정한 빛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빛만이 모든 것을 밝히고 죽은 것을 살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빛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한다.
-한솔 아빠의 ‘세상의 빛’에서-

하나님이 참된 빛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빛 된 백성, 빛 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빛이 드러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
이 빛을 비추기 위해 성도는 오해와 탄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들이 드러내는 빛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 빛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단 이 빛이 드러날 때,
우리가 하나님이 된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단지 반사광에 불과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면류관을 향하여 - 고전 9: 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현대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분야는 스포츠입니다. 이제 스포츠는 운동선수 한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들의 관심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는 제국을 통치하는 방안으로 이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라는 도시에서는 운동경기가 자주 열렸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기장을 찾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의 서신에서는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수는 경기 후 경기 결과에 따라 시상대에 서게 됩니다(24). 신앙인들도 언젠가 그분 앞에 설 때에 신앙생활에 따라 우승자가 될 수도 있고, 꼴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야 다음에 잘 준비하여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경주에는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인생에게는 연습경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기장에서 운동선수들이 오직 우승을 바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처럼 면류관의 상을 받도록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24절). 운동선수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수는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25). 운동선수들을 우승을 위하여 힘든 절제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선수촌으로 들어가고 합숙훈련을 통하여 통제된 가운데 엄격한 훈련을 받습니다.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도 다 절제해야 우승의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의 규정은 성경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신앙생활이 좁은 길인지 아십니까? 내 생각과 방법을 다 정리하고 주님의 말씀따라 자기를 절제하며 가는 길이기에 좁은 길입니다. 서울은 못가더라도 바른 길로 가야합니다. 부자가 못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26). 아무리 명사수라도 과녁을 바로 보지 않고는 맞출 수가 없습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도 골인지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도 목표를 바로하지 않고 달려간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마7:21). 신앙인의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임을 기억하시고 목표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은 썩지 않을 면류관, 영원히 시들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던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절제하면서 훈련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믿음으로 달려야 합니다. 운동선수에게는 힘이 있어야 하듯 성도에게 있어서 그 힘은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요일5:4-5). 믿음으로 힘껏 달리어 승리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적용]
-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선수라는 정체성과 목표가 분명한지 확인해 보십시다.
- 지금 상 얻기 위하여 얼마나 절제하며 훈련되고 있는지, 장애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영적 지도가 필요합니다. 신실한 교역자의 도움을 받고 있나요?

[기도]
능력의 주 하나님,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영적 경기자로 불러주심 감사합니다. 이제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절제하며 말씀따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승리의 그날을 바라보며 신앙의 경주를 계속함으로 주님 앞에서 상 받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때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때에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했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때에는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하노라고..
-박명희의 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때..’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때가 있습니까?
자기가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힘주시기를
기도하는 자이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하고 싶으십니까?
내가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온전하심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며.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111;4>
돌이켜보건데 내게 주어진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기적이며 은혜입니다. 그 기적같은 오늘을 무뎌진 감사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내 생애 최대의 선물 - 디모데후서 1:3–8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조사에 의하면 직업 중에 가장 행복도가 높은 직업은 “사진작가”라고 합니다. 그럼 행복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는 “모델” 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작업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는 두 직업의 만족도가 최고와 최저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요소가 외적인 환경보다 내면의 마음 아닐까요?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요, 세상적인 성공에 있음이 아닙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은 은혜를 깨닫고 은혜안에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소유와 지위와 능력이 많든 적든 감사하고 만족하고 은혜로 생각한다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가지만 구하라고 하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다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7).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담대함으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사명을 위해 살아갑니다. 은혜가 메마르면 자기 자신의 신앙도 지키지 못합니다. 성도는 주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명 중에 최우선은 복음적 사명으로 이를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자가 은혜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6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은혜가 있어야 열정을 가지고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기에 이 열정은 심령에 불이 붙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조립된 자동차라도 엔진에 불이 붙어야 움직이고 제 기능을 감당하는 것처럼, 성도에게도 성령의 불이 가슴속에 타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 하셨습니다(눅12:49). 이 불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타올랐던 성령의 불입니다.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근신하여 깨어 계속 기도하고 말씀안에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 최대의 선물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적용)
- 당신이 행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불행하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 하나님을 믿는 것과 나의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나누어 봅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행복의 마음 주시고 은혜안에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장 귀한 선물인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시고,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사명 감당하기 원합니다. 식어진 가슴에 성령의 불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열정을 가지고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사역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믿음은 나의 마음과 생명을


사람들이 구원을 그처럼 간단한 일로 간주하는 이유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참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구원을 그처럼 간단한 일로 여기는 이유는
무슨 구원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이기에
복음이 '인기 있는 상품'(?)으로 아주 잘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믿음 그 이상의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나의 마음과 생명을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아더 핑크의 ‘그들은 최고로 약화시켜 이해하고 있다.’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지옥에서 만이 아니라
죄와 인간의 뜻, 그리고 자기만족으로부터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토록 어려운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은
더 극소수일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간단한 것이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영원한 언약 - 렘 32:36-44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43.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저지대의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노여움 중에도 은혜를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질투의 하나님이시면서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40절). 그렇습니다. 설령 징계하시고 심판을 하실지언정 결코 그들을 떠나지는 않겠다는 게 당신의 택하신 백성과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십니다. <... 너와 함게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수 1:5).

돌아오게 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리라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고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37절).
이것은 노여움과 분노로 그들을 흩으시고 모든 이방으로 내쫓으셨지만 이제 그 모든 땅에서 다시 찾아내어 모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당신의 백성들을 가차없이 추방하셨지만 여전히 꿈에도 잊지 못하시고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사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심하게 징계한 엄마가 다시 그 자식을 끌어 안고 가슴 아파하며 맞은 상처를 싸매주듯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자녀들을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시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노여워하시는 분이시지만 분노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징계하시는 분이시지만 저주의 신이 아니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집 나간 자식을 문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고 돌아온 자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이며 <내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었노라>(눅 15:24)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아버지십니다.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41절).
기꺼운 마음으로 복을 주실뿐 아니라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는 말씀은 실로 대단히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당대뿐 아니라 이 땅에 오래 그리고 깊이 뿌리를 박고 해마다 아름답고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담보로 예레미야로 하여금 사촌의 밭을 사고 증서를 작성하여 봉인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훗날 반드시 돌아와 그 밭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다짐의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혹 하나님의 노여움과 징계를 사 많은 것들을 잃고 멀리 쫓겨 났을지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본래의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하시며 이게 곧 너에 대한 나의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아픔 중에도 시련 중에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실제적 무신론자 아닙니까?


실천적 무신론자는 하나님 소리도 잘 해요,
찬양도 부를 수 있습니다.
기도도 몇 마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니까,
가정 생활할 때 보니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요.
교회당에서는 하나님 믿는 것 같은데 가정에 가 보니까
하나님 없는 것처럼 남편 대하고, 아내 대하고, 자식 대 하고…
또 직장생활 할 때, 중요한 결정할 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결정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업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속이고… 이것이 실제적 무신론자예요.
-이동원 목사의 ‘무신론자의 죄’에서-

어떻게 무신론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무신론의 죄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신다.’
자신이 실제적 무신론자라고 판단되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셔서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바알과 몰렉 - 렘 32:26-35
2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2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29.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30.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 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32.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34.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바알은 원래 가나안 지방의 농경신이며 폭풍의 신입니다. <바알>이란 주인, 남편이라는 뜻으로 어느 지방의 신화든 으레히 그 지역의 오랜 정신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듯 바알도 역시 당시의 농경문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알이 풍요를 보장하는 신이라면 아세라는 다산의 신으로 자손의 번성을 책임진 신입니다. 따라서 이 두 신이야말로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신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가하면 <몰렉>은 암몬 족속의 고유 신인데 <그모스>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기를 강요했던 매우 잔인한 신이었습니다. 몰렉의 제사의식 가운데는 어린아이를 불 위로 걷게 하거나 불에 달군 기둥 위를 걷게 하는 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35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집들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29절).
유다는 죄를 짓는 데 거침이 없었고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바알에게 분향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두려워 은밀한 곳에서 몰래 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집 지붕 위에서 보란 듯이, 도발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지붕 위는 예루살렘 성전 쪽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처소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바알에게 분향하고 또 다른 신, 즉 아세라나 몰렉에게 제사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겠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질투의 신이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분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그럼에도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너희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켜>(31절) 왔다고 하십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그분만을 바라보셔서 유다처럼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을 사는 일이 없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백성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33절).
하나님에게로 얼굴을 향하지 않고 등을 돌린 유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훈했지만 그들은 결국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히기까지>(34절)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이란 곧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며 이는 곧 사람들이 성전 안에다 우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자기 자녀들을 몰렉에게 바치면서까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은총을 박차고 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멸망,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는 불가피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우상, 이 시대의 바알과 몰렉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성전 안에 세운 가증한 물건이 없는지도 꼼꼼히 짚어 볼 일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오늘 물어야 하는 바로 그 것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자존감’을 회복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고 있음을 알기에,
자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음을 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크거나 작은 것,
성장에 좋은 환경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김병삼 목사의 ‘우리가 꿈꾸는 교회’에서-

우리 주변에는 늘 “누구 때문에”, 혹은 “환경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당히 피동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살아 있는 사람,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호흡하지 않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많은 일이 주님을 떠난다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물어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슬프도소이다 - 렘 32:16-25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하나님의 지시로 사촌 하나멜에게서 아나돗의 밭을 사긴했지만 예레미야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라가 지금 다 망해가는데 뜬금없이 밭을 사게 하신 것도 그렇고, 나라를 완전히 허물었다가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말씀도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당혹감 속에서도 기도하며 자신의 심경을 하나님께 토로하므로써 겨우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16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기도하기에 앞서 밭 매매증서를 먼저 바룩에게 넘기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 역시도 먼저 이 세상 온갖 염려와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기도해야 옳다는 뜻일 것입니다.

인류를 주목하사 그 행위대로
<주는 책략이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19절).
하나님은 친히 천지를 지으신 큰 능력의 신이시므로 이 세상에서 그분이 하실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시면 천만인에게 은혜도 베푸시고, 또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들에게 갚기도 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무사하신데 반해 인간은 너무도 불의하고 가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인류는 누구든 다 이 하나님의 면전에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그랬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그게 어떤 것이든 정당하고 공의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린대로 거둘뿐 누구도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며 항의할 수 없음은 그게 다 우리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보응이기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21절).
하나님은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표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또한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그들을 붙드사 광야를 걷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그 삶을 간섭하시며 도우시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우리는 다 기적과도 같이 세상으로부터 구출됐고, 지금도 주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표적과 기사로 구원해 주시고 순간순간 강한 손으로 붙드시며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툭하면 반역하고 우상을 좇고 작당하고 선동하다 결국 실패하고 객사하고 말았으며 출애굽 1세대 가운데서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겨우 가나안 입성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다시 예레미야가 <슬프도소이다!>하며 탄원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최강 바벨론이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에워 싼 것입니다. 부디 올해는 행위의 열매를 보다 아름답게 가져갑시다. 우리의 길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결코 과거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맙시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옛 사람과 옛 자아를 못 박지 않으면


우리의 옛 사람과 옛 자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는가?
그것은 드라큘라보다 무섭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자꾸 불평하게하고 원망하게 한다.
음란하게 하며 시기와 질투를 하게 한다.
쓸데없는 공명심을 갖게 하여 종교적 영웅심을 갖게 만든다.
이것이 폭발하면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고 난리를 피우게 된다.
-소강석 목사의 ‘하나님의 원하심’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지은 죄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면 다 용서해 주시지만
옛 사람과 옛 자아가 죄를 짓게 하고 넘어지게 하기에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옛 자아가 살아나와
자신과 몸 된 교회를 더럽히는 일에 앞장서게 되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잠언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Whoever trusts in his riches will fall, but the righteous will thrive like a green leaf.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겠습니까 - 창세기 26장 1~10절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오늘 이삭이 겪은 일을 보면서, 떠오르는 일이 없으십니까? 오늘 이삭과 리브가에게 일어난 사건은 바로 창세기 20장에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일과 매우 흡사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블레셋 지역의 그랄 땅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 땅에 거합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 때문에 자신을 해할 것이 두려워서 이삭은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멜렉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매 사이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서 아비멜렉은 이삭을 데려다가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라고 훈계합니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한 것을 믿고, 사라를 데려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던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벌을 받을 뻔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말합니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느니라”

아직 그랄 지역의 어떤 사람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로 인해서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아비멜렉은 누구든지 이삭의 아내를 통해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왜 이삭은 이렇게 거짓말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삭이 성장하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필요에 따라서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창세기 20장은 이삭이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삭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아브라함이 했던 일들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똑같은 죄를 범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이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자녀가 보고 자란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필요에 의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따라 할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내가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 당신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아주 작은 것에 민감하게 자녀를 교육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성령충만을 받으면


성령은 인격으로 임하신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세상으로 향했던 모든 욕심이 사라지고
싸우기를 좋아하고 투기하는 마음, 분쟁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주가 주시는 하늘의 평화가 지배하고
찬송하면 마음의 기쁨이 넘치고
헌금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웃을 도우면서 기쁘고
예배드릴 때 마다 감격의 눈물이 나오고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의 생활이 새로와지는 것이다.
-김의환 목사의 ‘닥터 바울 구원클리닉’에서-

이상한 체험을 해야만 성령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으로 주신 말씀을 받아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주님과 멀어졌던 사람이
주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주님으로 꽉 찬 사람,
성령충만을 받으면 말씀으로 꽉 차고
주의 거룩한 영으로 꽉 차게 되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후서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For just as the sufferings of Christ flow over into our lives, so also through Christ our comfort overflow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말씀에 의지하여 - 누가복음 5:1-7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사람들은 뭔가를 의지하고 믿고 살아갑니다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사람이나 세상의 어떤 나라와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명하십니다(시146:3). 우리의 경험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경험은 일종의 실험을 거쳐 쌓여진 것이기에 실패율이 적어 그것을 확신하고 살아가려 합니다만 그것도 믿기에는 그렇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일행들은 밤샘조업을 했지만, 텅 빈 배로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력이나 경험이 적어서 그럴까요?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살았던 경험이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는 결과 밖에 소득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가 주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순조로우면 하나님을 찾을 것 같지만, 죄의 본성 때문에 그렇지 못합니다. 실패와 위기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로 찾아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3) 내 인생의 배가 텅 비어 있는 배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선택하시는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개인적으로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십니다.(4) 이 말씀은 다시 신앙생활에 도전하여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말씀 앞에 더 순수한 자세로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올해는 말씀의 깊은 경지로 나아감으로 삶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베드로는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음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5) 경험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말씀에 비추어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히4:12). 나의 삶이 텅 비어있는 삶이라면 인생의 초점을 주님께로 돌려야 할 시점입니다. 이것이 실패가 가져다주는 유익입니다(시편34:9).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며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선배나 훌륭한 멘토의 말보다도 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결과는 고기를 심히 많이 잡았고(6), 사람을 취하는 제자가 되었고(10),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11) 올해도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감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적용]
- 오늘까지 나는 하나님과 세상, 그 중에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왔는지 점검해 봅시다.
- 나의 신앙의 삶은 깊이 있는 영적인 삶이었는지, 아니면 경험에 치우친 삶이었는지요.
-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결단하고 기도합시다.

[기도]
살아계신 주 하나님, 오늘부터 말씀중심으로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주의 음성을 듣기 원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삶에서 주님을 경험하며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이제 더 나아가 영혼을 구원하는 어부로 살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건설적 비판


건설적 비판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향한 우정과 헌신 사이에 지혜롭게 균형을 이룰 줄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솔직하고 분명한 말로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그것은 복이다. 그들의 말을 친구로 삼으면, 우리 성품이나 성격이나 직업이나 소명의 모든 부족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건설적 비판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배우고, 그 약효를 누려야 한다. 건설적 비판을 부정적으로 받으면 우리만 손해다.
-마르코스 윗의 [두려움을 이기는 영혼] 중에서-

우리의 자람은 충고나 비판을 듣는 훈련부터입니다. 물론 남을 비판할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거나 필요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비판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건설적인 비판을 함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로 보고 주님 향해 걸어갈 수 있게 한다면, 비판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비판하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들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성장과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향한 조언과 중보로 이루어집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야고보서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낮의 빛 밤의 빛 - 렘 31:31-40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지으시고 자연의 변함없는 주기와 질서로 당신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35절). 천체를 움직이시고 지휘하시는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해를 낮의 빛으로 주시고 달과 별을 밤의 빛으로 주시며 그것들의 법도와 규정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기브온 위에 멈추게 하시고 달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게 하셨다는 여호수아(수 10:31)의 얘기는 곧 하나님이 해와 달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새 언약을 맺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31절).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맺은 옛 언약과는 다른 은혜의 언약을 뜻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체결하신 옛 언약은 새 언약의 모형이요 새 언약에로 안내하는 몽학선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새 언약은 변함없는 천체의 주기와 법칙처럼, 낮의 빛인 해와 밤의 빛인 달과 별처럼 우리에게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빛을 비추며 영원히 구원의 따뜻한 온기를 증거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미 다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 복된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언약이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유업을 얻게 된다는 계약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4절).
주님의 보혈을 담보로 하나님과 새 언약을 체결하게 되면 가장 먼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이 사해집니다. 주님이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써 속죄와 대속의 효험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그동안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하시되 두 번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너는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4-25). 우리가 만약 환상 중에 주님을 뵙고 <제가 전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는다면 주님이 과연 뭐라 말씀하실까요? 아마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실 것입니다. 혹 주님은 이미 다 잊으신 과거의 죄 때문에 지금도 힘들어 하시지는 않습니까. <내가 악행을 다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으시고 자유하십시오. 감사하시며 평안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교회라는 가족


당신이 어떤 교회에 다니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가족으로 부르신다. 당신이 전에 어디에 있었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그분의 가족 안에 두신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고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을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도 치유하셨다. 완벽한 공동체는 없다. 집이 항상 깨끗한 건 아니다. 저녁 식사는 시끄럽고 정신없다. 가족에 속하는 일은 분명 번거롭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신은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만드셨다.
-로스 파슬리의 [좌충우돌 행복한 우리교회] 중에서-

교회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모순과 갈등이 있어도, 가족이기에 하나 되어 사랑하고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자체가 가족이길 바라며, 그 가족인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 섬기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가족 되지 않으면 세상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교회는 가족 같은 교회입니다. 상처와 아픔도 고스란히 서로 지고 갈 수 있는 가족이 그립습니다. 교회를 떠올릴 때 사랑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족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어느 때까지 방황하려느냐? - 렘 31:21-30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이스라엘 남북 왕국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반역할 때마다 큰 낭패와 시련을 당하며 방황해야 했습니다. 본문도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22절)며 안타까워 합니다. 누구나 길을 잘못 들거나 목표를 상실하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곁을 떠나 먼 나라에 가 재산을 다 허비한 후 돼지를 치며 방황했던 탕자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라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21절).
반역한 자식, 멀리 타국으로 가 방황하고 있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음성은 언제나 <돌아오라!>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창녀들과 함께 다 허비한 어리석고 못난 자식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20절)며 돌아오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계십니다. <처녀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정혼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정표를 세우고 푯말을 만들고 큰 길>을 기억하며 반드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다리고 탕자 이스라엘이 속히 돌아오기를 고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절절한지를 보십시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아버지가 종들에게 이르되 ...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0, 22-24).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23절).
돌아오라며 방황하는 자식을 받아 주실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위해 또 복을 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복을 빌어 주실 뿐 아니라 복을 베푸시는 참 아버지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빌어 주시면 아무리 방황하던 자식도 다 복됩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 했을 때 아버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2절)며 온전한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므로 그 삶을 복되게 했습니다. 유다도 그동안 포로생활에서 지치고 슬픔과 좌절에 빠져 살았던 과거를 깨끗이 잊고 앞으로는 보다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이십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 아버지 품으로 다시 복귀하는 자식들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며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 기뻐>(눅 15:7)하십니다. 부디 이제 긴 방황을 접고 아버지 집으로 귀환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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