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4. 8. 14. 07:14


우리를 다듬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는 목적은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려 함이 아니라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때에 따라 가지도 치시고, 약도 뿌리시며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훈계에는 목적이 있다. 문제는 우리의 반응이다. 훈계가 우리를 부드럽게도 하고 절제케도 하며 강건하게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완악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게도 만든다. 이것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한다면 이것은 조금 높은 경지에 속한다.
-오스왈드 샌더스의 [평신도 사역자의 성장을 위한 20가지 영적원리]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로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많은 방법은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특별히 시험을 통해서 인내를 이루게 하시고, 조금의 부족함이 없도록 구비하고 온전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는 신뢰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십니다. 더욱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면 드디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우리도 눈으로 보게 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모든 민족에게>
모든 민족에게 주 영광 부어주소서
모든 나라, 모든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지게 하소서
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아! - 렘 7:1-7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나님이 북방의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겠다고 하시며 특히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징계를 벼르신 것은 그곳이 곧 그들의 죄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외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끝까지 인간적인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얼굴도 붉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선한 길로 가지 않겠다(6:16), 파수꾼들의 나팔소리를 듣지 않겠다(6:17)며 어깃장에다 반항만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빌어 유다 백성들의 잘못된 예배행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말을 믿지 말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4절).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며 유난을 떨수록 실은 가짜요 사이비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겉만 그럴듯하고 화려한 종교의식만 있었지 진심 어린 예배정신이나 예배자의 바른 삶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문제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드나들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늘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오늘날의 교회가 교회답고, 예배가 예배다운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눅 19:46)이 된 것은 아닌지를 부단히 물어야 합니다. 일찍이 <이 성전을 헐라!>(요 2:19) 하셨던 주님이 이 시대의 교회와 예배당을 드나드는 성도들을 향해서는 뭐라 고 하실지가 자못 궁금합니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5절).
그렇습니다. 예배와 삶을 서로 각각일 수 없습니다. 삶의 연장이 예배요 예배의 연장이 곧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으로 예배하고 예배로 일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된 통전적 신앙 일원론적 삶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언제나 예배와 삶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온갖 분열과 모순과 괴리와 소외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고 다른 신들의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6절) 말라고 하신 겁니다. 믿는 자의 삶은 당연히 바르고 경건하고 공의로워야 합니다. 내 길과 행위가 곧 하나님께 바쳐지는 신령하고도 진정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온몸과 전 존재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믿음과 순종


믿음이란 용어도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면서 혼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이론적 교리 신봉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 맺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메시아이신 그의 아들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할 수 있는 확신을 포함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예수의 말씀을 따르며 온전히 헌신하는 것도 포함한다. 순종은 구원을 체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는 믿음을 강조한 사도 바울도 동일하게 언급한 개념이다.
-이민규의 [신앙, 그 오해와 진실] 중에서-

믿음은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을 믿음과 혼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적입니다. 그 사랑을 직접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주로 고백합니다. 여기서 ‘주’는 나의 주권자요. 나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권자, 통치자가 주님이 되기까지 순종하는 삶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함으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갑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 이후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은 베드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내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삶되기 원합니다
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가증한 일 - 렘 7:8-15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이 유다가 <무익한 거짓말>(8절)을 일삼는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바알에게 분향하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신>(9절)을 따르면서도 신자인 체 한다며 유다의 허위와 위선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모순과 분열 속에서 살아갑니다. 믿는 자 다운 바르고 정직한 삶보다는 거짓되고 부정한 삶을 통해 자신의 신자됨을 욕되게 하기 일쑨데 그런 삶의 모습이 바로<가증한 일>(10절)이라는 게 오늘 본문의 지적입니다. <가증>이란 몹시 괘씸하고 얄밉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가장 괘씸해하시고 얄미워하시는게 바로 이런 표리부동한 삶이란 사실을 결코 잊지 맙시다.

너희 눈에는 성전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절).
분노하신 하나님의 거의 막말 수준의 책망이십니다. 성스러운 하나님의 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마치 도둑떼가 우글거리는 소굴과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도둑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점거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어찌 성전을 이렇듯 분탕질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도 똑같은 말씀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고발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막 11:17). <성전>과 <도둑의 소굴>, 얼마나 처절하고도 극단한 대조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처소요 성소인 <성전>을 가장 악하고 어두운 <도둑의 소굴>로 전락시킨 사람들! 과연 우리는 그런 <가증한 죄악>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한번 깊이 자성해 볼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도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10절).
어처구니 없게도 가증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일수록 번제를 드리고 희생제물을 드리고 유향과 향품을 바치는 일에는 또 열심을 부립니다(6:20). 그뿐 아닙니다. 하루 종일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는 다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하며 그 가증한 입술을 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징계하셨는지를 <실로>에 가서(12절)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실로>는 이스라엘의 성지 중의 성지였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서부터 엘리 제사장 시대까지 하나님의 성막과 법괘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범죄로 하나님의 법괘도 블레셋 군대에 빼앗기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도 전사하고, 엘리 제사장 마저도 뒤로 나자빠져 죽으면서 성지 실로가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예루살렘도 그렇게 망하여 성전마저 옛 실로의 성막처럼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라 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쓸모없는 흉가가 되고 맙니다. 성지 실로와 예루살렘 성전의 패망을 생각하시며 가증한 일을 멀리하십시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일에 가담하지 마시고, 삶으로 온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교회


하나님이 교회를 대안적인 사회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경쟁하거나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이 점을 잊어버리면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세상과 다른 것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튤리안 차비진의 [더 크리스천] 중에서-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교회라는 공동체는 아름답습니다. 한 없이 부족하기에 기도가 있습니다. 한 없이 혼란스럽기에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의 기둥위에서 온전한 공동체로서 천국을 이루어갑니다. 부족함을 서로 사랑으로 채워가고, 넉넉함은 흘려보냄으로 나누면 됩니다. 교회가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영향력이 됩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도 세상 너머에서 살아가는 교회는 사랑으로 세상을 섬겨야 하는 구별된 공동체입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지켜내지 못하면 교회는 스스로 썩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머리를 밟으신=뭡測�
사단의 머리를 밟고 승리하신 예수님.
주님이 승리하셨으니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그 승리는 고스란히 우리의 것입니다
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 렘 7:16-28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옛 성전인 실로처럼 폐허가 되게 하시겠다고 예언하신 하나님이 또 다시 유다를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니라>(15절)고 하십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 된 것 같이 남왕국 유다 역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실로처럼, 예루살렘의 베냐민 자손들은 북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자손처럼 모두 적국에 사로잡혀가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해 비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16절). 이 백성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18절).
선지자가 망해가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야지 어떻게 기도하기를 그만둘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간구하지 말라!>며 세 번씩이나 기도를 만류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뜻합니다. 유다를 완전히 포기하시고 단념하셨음을 가리킵니다. 보십시오!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는 불을 피우고 어미는 과자를 만들어 <하늘 여왕>에게 바치며 다른 신을 섬기므로 이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고 하십니다. <하늘 여왕>은 수입된 외래 우상입니다. 당시 유다는 바알과 아세라 같은 가나안 토속신 뿐 아니라 므낫세 왕이 수입하여 전파한 <하늘 여왕> 같은 외래신도 섬겼습니다. 온 가족이 신종 외래 우상에 매달려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십시오. 각종 이단 사이비 집단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악한 꾀와 완악함으로 행하여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24절).
그 시대 유다 백성들의 실상을 가장 잘 묘사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우선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들의 악한 마음과 교활한 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며 부단히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유다는 말씀이 아닌 오직 악한 생각, 교활한 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에 대해 등을 돌리고 그 얼굴을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마치 해바라기처럼 늘 그 얼굴을 하나님 쪽으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표정이 보장되고 내 심령의 모든 어두움과 그늘이 사라지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끝까지 고개를 돌리고 하나님을 등졌을 뿐 아니라 <목을 굳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 보다도 더 악을 많이 행하였다>(26잘)고 합니다. <목을 굳게>했다는 것은 코브라처럼 목을 빳빳하게 치켜들고 독을 뿜으며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당시 유다의 패망과 예루살렘의 훼파는 거의 필연이었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진노요 심판이었습니다. 악한 꾀나 완악한 마음이 아니라 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사십시오. 거기에 바로 행복과 축복의 삶이 있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성결


내 자신이 높아지고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마음은 함께 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누군가가 내게 어쩌다 칭찬을 주실 때도, 그저 두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받게 된다. 내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항상 더 빨리 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더러워진 손을 씻듯이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씻으며 끊임없이 마음이 성결케 되기를 기도 드린다.
-백은실의 [성경발견학습] 중에서-

우리는 내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나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 나입니다. 나의 걸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거울 앞에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내 모습의 겉모습만 알며, 내가 보는 나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바뀝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약한 나, 내 스스로의 의를 드러내고 싶은 나가 내 안에 더 많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더욱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며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감옥을 두려워하지=苛�
우리는 감옥을, 그 단절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의 갇힘이 아니라 마음의 갇힘, 영의 갇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육신의 갇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합니다

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충성된 사람들 - 사무엘하 : 23: 13~17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다윗은 불레셋과의 전투중에 목은 마르다는 말한 것은 무엇일까요. 갈증의 의미가 아닌 것은 다윗의 고향은 베들레헴이고 이때엔 블레셋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가지 못하기에 ‘베들레헴의 물을 먹고 싶다’라는 표현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아마 다윗은 그 물을 꼭 안 먹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물을 먹어도 되었죠. 하지만 세 용사는 다윗이 그냥 한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즉 적진에 가서 물을 가져온 것입니다. 단 한 모금의 물을 위해 목숨을 건 것입니다.
이렇게 세 용사들이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 사람들은 나를 인정한 사람들을 위해 충성을 바칩니다.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 죽을지도 모를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윗의 부하였지만, 명령에 복종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들은 스스로, 즉 자발적으로 물을 가져온 것입니다. 작은 것에도 흘려듣지 않은 세 용사는 다윗을 위해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는 물 한 모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하들을 움직이게 하는 다윗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보통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뭔가가 있고, 그것은 주위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됩니다. 또한 나보다 더 뛰어난 업적, 나는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 하나로 골리앗을 해치울 정도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다윗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따랐습니다. 이유는 그와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면 의미있는 사람이 곁에 있게 됩니다.
충성을 다할 줄 아는 사람만이 또 다른 충성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마음의 중심을 지킨다면 우리의 곁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작은 나로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세 사람이 목숨을 다해 가져온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렸습니다. 즉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로 돌릴 정도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분은 부족한 것도, 필요한 것도 스스로 채우실 분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저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께 바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적용]
- 나는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 목숨을 걸 자신이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 나의 의지는 어떠한지, 우선 고쳐야 할 세 가지 내용은 무엇인지 정리해 봅시다.
- 내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나요,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기 위해 기도합시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저를 충성되이 여겨 일군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삶이 되게 하시어 죽도록 충성하게 하시옵소서. 저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고쳐주시어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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