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인의 베레로 부활하다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준공
이영선 기자 vs119@dema.mil.kr | 2014-04-23 19:27:44
23일 문을 연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은 한국과 영국을 이어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60여 년 전 이름도 알지 못했던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국의 전사들은 이제 이 작은 공원에서 보다 편안한 안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6ㆍ25전쟁 영연방 참전 노병들이 23일 준공식을 갖고 문을 연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의 곳곳을 둘러보며 옛 추억을 더듬고 있다. 파주=조용학 기자 |
영연방 참전 노병들이 육군25사단장의 영접을 받으며 추모공원 준공 행사장에 입장한 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경기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
영국군 상징 베레모 35m 추모의 벽 구성
약 1만331㎡(약 3000평) 규모로 조성된 추모공원은 국가보훈처가 6억 원을 부담하고 경기도와 파주시가 각각 3억5000만 원을 분담했다. 지난해 10월 착공해 약 6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이게 됐다.
추모공원에는 영국군을 상징하는 베레모 모양의 참전비, 일명 ‘700인의 베레’를 중심으로 영국군 모습을 재현한 7개의 동상과 참전용사 914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Image wall) 등이 설치돼 참전의 의미를 전한다.
특히 이날 추모공원 개막과 함께 제막식을 가진 영국군 참전비는 6·25전쟁 참전 영연방 4개국(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중 최초로 국내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더했다. 현재 6·25전쟁 참전 영연방 국가들의 경우 개별 국가 참전비 대신 영연방 참전비와 각국 대표 전투 기념비만이 그들의 자유를 위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35m 길이의 ‘추모의 벽’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중앙 기념석을 중심으로 가로 1.7m 세로 3.5m의 사진판을 좌우 각각 10개씩을 배치해 참전 전부터 전쟁, 귀국까지의 과정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특히 영국 글로스터 6·25 박물관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사람이 직접 음각으로 새기는 첨단 ‘타정기법’으로 완성해 현장감은 물론 일반 사진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군과 국내외 인사들의 관심·노력으로 재탄생
추모공원과 참전비가 들어서기까지는 군 내외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인사들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더해졌다. 그동안 한국과 영국을 이어주던 이 상징적 공간에는 작은 영국군 전적기념물만이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1957년 육군25사단이 당시 3500만 원으로 건립한 이 전적기념물은 세계적 산업디자이너이자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이던 아널드 슈워츠먼이 디자인했다. 그는 산 바위벽에 벽돌을 쌓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비를 부착했다. 위쪽 2개의 비 가운데 왼쪽에는 유엔기를 새기고 오른쪽에는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를 새겼다. 아래쪽의 왼쪽 비에는 한글로, 오른쪽 비에는 영문으로 각각 당시의 전투 상황을 기재했다.
국방부와 보훈처는 1975년부터 매년 4월 영국군 참전용사를 설마리 전적지로 초청해 추모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적기념물의 규모와 환경은 자유수호를 위해 희생한 전사들의 위상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영국의 주요 귀빈들이 방한시 반드시 찾는 주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에 비해 많이 미흡하다는 평이었다.
이에 2010년 신동만 당시 육군25사단장이 경기도에 참전비 건립을 제안했다. 신 장군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참전비 건립을 직접 요청했다. 이후 참전비 및 추모공원 추진에 영국은 각별한 관심을 쏟고 협조를 다했다. 지난해에는 영국 레슬리 그리피스 상원의원이 파주시에 1000만 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韓英 연결 상징적 공간안보 성지로 거듭 기대
파주시는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이 한국과 영국을 이어주는 교량이 되는 한편 영국인들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현장을 확인하는 안보성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그동안 설마리 전적지는 영국 귀빈들이 방한하면 항상 먼저 방문하는 장소였다”며 “더 많은 영국인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보이며파주 방문객들에게도 훌륭한 안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마리전투는? 중공군 맞서 결전, 서울 사수 결정적 기여
설마리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이 치른 가장 치열한 전투다.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영국 글로스터(Gloster)대대가 중공군의 파상공세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6·25전쟁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실시된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례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글로스터대대 장병들은 중공군 3만여 명의 인해전술에 맞서 외부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투항 하지 않고 결전을 치렀다. 마지막까지 전투를 치른 글로스터대대는 750명의 부대원 중 622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글로스터대대 장병들의 희생 때문에 중공군은 당초 계획보다 3일 이상 발이 묶였고 그 사이 한국군과 유엔군은 수도권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서울을 사수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부대는 ‘영광스러운 글로스터’로 칭송받았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 부대훈장과 영국 최고 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참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경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전투가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올해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설마리전투에 영국군 대위로 참전한 안소니 파라 호커리를 선정했다. 그는 설마리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적의 포로로 잡혀 1953년 8월 31일 판문점으로 귀환할 때까지 2년 4개월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명예를 지켰다. 이후 휴전 협정 이후 영국군에 복귀해 북유럽 연합군사령관(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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