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영향력

鶴山 徐 仁 2014. 2. 8. 10:19



영향력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전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최기 기독교가 처한 상황은 오늘날의 한국교회보다 훨씬 더 적대적이고 불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그 말씀과 부활의 능력으로 복음 전파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들은 변화된 삶으로 매력적인 문화의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변화된 공동체의 모습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공적인 노방전도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김선일의 [전도의 유산] 중에서-

본질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본질이 없는 신앙생활은 힘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프로그램일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본질을 추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본질은 삶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보다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세상은 조금씩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시작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진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글쓴이 : 이우정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 사 49:14-21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네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책에서 <하나님께 대해 전혀 실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신론자다. 하나님께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실망도 없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실망하여 좌절하거나 심각한 시험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실망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보고 찬송을 불러 봐도 왠지 막연함과 단절감만 느껴질 뿐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거나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고독해지고 가슴이 허전하여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에 빠지곤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나를 잊으셨다>(14절)고 서운해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응답하신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는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15절).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고 잊으셨다는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탄식에 대해 하나님이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버리겠느냐> 그러나 만의 하나 혹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잊거나 버리지 않으신다는 다짐이십니다. 다윗은 자기를 반역하여 가슴에 칼을 겨누었던 아들 압살롬이 죽자 슬피 울며 통곡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야 했을 것을, 내 아들 압살롬아!>하며 애석해 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비의 마음이며 주님의 심정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당신을 반역하고 대적해도 여전히 <내 아들아!>하시며 안타까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잊으셨다는 말은 언어도단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주님을 잊고, 주님을 버릴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은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 격려의 말씀을 기억하시며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노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16절).
그냥 손바닥에 썼다가 아니라 <새겼다>입니다. 이 <새김>이란 바울이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노라>(갈 6:17) 할 때의 <흔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흔적>(스티그마)이란 쇠인장을 불에 달구어 노예나 짐승의 몸에 찍는 화인을 뜻합니다. 따라서 스티그마는 한 번 새기면 문신처럼 두 번 다시 지워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불에 달군 쇠인장으로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손에 새기셨을까요? 나를 늘 꽉 붙잡고 계시기 위해섭니다. 나를 늘 움켜쥐고 계시기 위해섭니다. 어린아이 손에 쥐어있는 사탕을 빼앗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주님이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신 우리들이겠습니까? 세상 그 어떤 미혹도, 마귀의 그 어떤 위협이나 농간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43:1). 확신을 가지시고 더욱 담대하시고 안도하시길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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