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자료 모음

鶴山 徐 仁 2014. 1. 13. 15:24



한 사람의 소리 없는 일꾼


아무리 크고 화려한 배라도 물이 스며들면 결국 침몰하고 만다.
물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지 새어들어 가며.
선체가 크거나 하중이 무거울수록 물이 새어들 확률은 높다.
그러므로 배의 틈을 막는 한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선원의 숫자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배의 틈을 막는 자」라는 보직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역할은 누가 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감독자는 많고 일꾼이 없으면 틈 생긴 배처럼 기우뚱거리게 된다.
-손상률 목사의 ‘없어서는 안 될 사람’에서-

배안에 아무리 유능한 선원이 많이 있고
또 지명도 높은 승객이 타고 있어도 작은 틈새를 막는
한 사람이 없으면 그 배는 반드시 불행한 종말을 당합니다.
요란하게 떠드는 여러 명의 말꾼보다
한 사람의 소리 없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라야 보이지 않는 곳 까지 다니며 배의 틈을 막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힘을 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 4:30).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주권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글쓴이 : 이우정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믿음의 역사 - 마가복음 5:35-43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복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있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고 긍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좋은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일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닫힌 종교가 아니라 열린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동물과 사람들과 열려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열려 있어야 하늘 문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역사 일어나지만, 하나님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살아 갈수 없습니다. 만약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만약에 이 일이 안되면, 사이가 멀어지면, 병들어 아프면 어떻게 하나하고 잘못될 것만을 생각하면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힘들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은혜 받을까?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까? 넘치는 복을 받을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에서‘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8:6-9). 육신이 원하는 대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신령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회당장의 딸 이야기입니다. 딸이 죽어 버린 절망적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이제는 안된다, 이젠 어렵다, 끝났다, 이것이 현재 상황입니다(35). 그러나 주님께서는“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말씀하십니다 (36). 사람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보시는 것은 달랐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십니다(39절).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서 가족과 이웃들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내어 보내시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시며‘달리다굼’하셨습니다.
‘달리’는 작은 것 미천한 것을 의미하고, ‘다굼’은 일어날찌어다라는 뜻입니다. 미천하고 안될 것 같고 병들어 허우적거리는 문제도 주님이 역사하시면 기적이 일어남을 믿어야 합니다. 이‘달리다굼’의 주의 음성 듣게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주저 않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꿈도 비전도, 희망도, 사명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생각을 고쳐먹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슨 문제로 인하여 주저앉아 있습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달리다굼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적용]
- 나는 지금 나의 현재 상황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 사람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 중에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 힘들고 지쳐 있는 나의 모습을 진솔하게 주님께 내어놓고 주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달리다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신령한 귀를 열어주시어 주의 음성 듣고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기적을 체험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회복시키시사 일으켜 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오직 길 되신 분만 따라가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던 한 선교사님이
정글 속 오지 마을로 가기 위해 지리에 익숙한
한 원주민 그리스도인 청년을 길 인도자로 고용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마을은 보이지 않고
청년은 계속 정글 속 길 같지 않은 곳을 헤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청년에게
“형제여, 확실히 길을 알고 있나요?”
라고 묻자 청년은 이런 대답을 했다.
“선교사님, 여기서는 제가 길입니다.”라고.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곧 길이니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임대규 목사의 ‘길 되신 그리스도’에서-

내가 곧 길이라고 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앞길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를 인도할 테니까요.
우리의 인생길, 오직 길 되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우리 영혼의 고향인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오로지 길이신 예수님만 따라가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를 풍성하게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글쓴이 : 이우정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 사 45:20-25
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24.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
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당신 가까이로 부르십니다. <날 오라 하심은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함과 평안함 다 주려 함이라>(찬 254장)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셔서 은혜와 복을 허락하십니다. 주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특히 본문은 <함께 오라>, <모여 오라>고 하십니다. 옳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듯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는 것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함께 의논하고 진술하고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21절).
이 45장에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말씀이 무려 8번이나 반복됩니다. 왜일까요?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혹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과 타협하며 짝하며 살게 될까 우려하셔서 강조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 의논하여 보라>는 것은 충분히 상의하고 숙고한 다음 과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바른 것인지를 결정지으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고 진술하여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또 선택하게 하십니다. 여호수아도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 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수 24:15).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25절).
맞습니다. <의롭다 하심>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그게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을 교리적으로는 <의인> 혹은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는 인정을 얻다, 혹은 의롭다는 칭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의로워서가 아니라 의롭지 않음에도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또 그렇게 불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얼마나 자랑스런 은혜입니까? 누구든지 여호와 앞에 나아와 의논하고 진술하므로 이 여호와의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널리 여호와의 그 칭의의 은총을 선전하고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탐심의 기도에는 사탄이


우리가 탐욕으로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렇다. 오히려 마귀가 틈타게 된다.
욕심과 탐심이 있는 자리에는
사탄이 반드시 역사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사탄도 말씀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을 준다는 것 아는가?
하나님을 더 많이 대적하라고, 용기와 담력을 준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허운석 선교사의 ‘생명의 계보’에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기도하면,
즉 자기 욕심과 야망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면,
마귀도 거기에 ‘마귀의 기름’을 붓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못된 확신을 강하게 심어줍니다.
이 마귀가 주는 확신 속에 우리가 걸려들면,
우리는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간구하는지 돌아보십시오.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면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분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글쓴이 : 이우정
일러스트레이터
카투니스트
숨어계시는 하나님 - 사 45:14-19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19.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중세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deus absconditus>(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deus revelatus>(계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중세 때는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불렀고, 개혁가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계시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다고 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보이지만 정작 창조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빛 가운데 숨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15절).

부끄럽게 하시려고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16절).
하나님은 특히 우상을 제작하거나 숭배하는 자들에 대해 숨어 계십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하나님은 그들이 상실한 마음으로 살다 언젠가는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숨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듯 함부로 살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경거망동하면 숨어계신 자리에서 비웃으십니다. 시편 42편 3절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왜 눈물이 음식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안 계신 것처럼 멋대로 조롱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통해서 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숨어계심 때문에 안심하고 부끄러운 삶과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숨어계시나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수욕이나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더욱 신실하게 살아야 옳을 것입니다.

욕을 당케 하시려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17절).
우리는 다 눈에는 보이시지 않지만 숨어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시편 139편의 다윗의 시입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사실 이게 숨김없는 우리들의 고백이자 진술입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정작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고 계십니다(대하 16:9). 진실이 이러함에도 숨어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가 베푸시는 구원을 불신하는 자는 반드시 욕을 당하며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부정하는 자는 필히 수욕을 당케 하십니다. 부디 지금도 숨어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인생들의 생사를 관장하고 계신 하나님께 말씀의 계시를 통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자의 삶에 은혜와 축복을 베푸십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