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없었던 일' '아니면 말고'는 이제 그만
입력 : 2013.10.03 03:03
흠집 낸 뒤 각종 說 쏟아내고선 아무 일 없었던 듯하는 정치권, 인터넷선 악플에 자살까지 해
자기 말에 책임 못 느끼는 惡習… '쩨쩨하게 뭘 사과받아' 넘어가면 영원히 '아니면 말고' 못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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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
우리말이 너무 정교하여 '노리끼리하다' '푸르뎅뎅하다'처럼 옮기기 어려운 표현이 꽤 있지만 '없었던 일, 아니면 말고'와 같이 번역이 어려운 표현은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분명히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없었던 것으로 한다는 말인가. 서로 주먹을 날려 상대방이 코피가 터질 정도로 맞았는데 없었던 것으로 하자, 가슴에 못을 박는 날 선 말을 퍼붓고 난 후에 마치 그동안 선문답을 한 것처럼 그런 말을 나눈 적이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악수하며 헤어지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일면 '싸나이가…'라며 툴툴 터는 멋진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당한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상처가 남기 마련이다.
'아니면 말고'는 정치권에서 유독 많이 쓰는 것 같다. 일단 상대에 흠집을 내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의혹설, 부정설… 등의 각종 '설'을 쏟아낸다. 나중에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어도 '아니면 말고'라며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같이 행동을 하거나 억지로 '유감' 정도를 표명한다. 그 여파인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언행들이 퍼져 나가고 있다. 이른바 인터넷에서의 '악플'도 그중의 하나이며 그 고통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상대방은 이미 각종 '설'의 치유에 상당한 시간, 노력, 돈이 들어가는 상처를 받았는데도 '아니면 말고'라면서 자기가 퍼부은 말에 책임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도 우리 악습 중의 하나이다. 심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될 거 아니냐' '그만한 일로 뭐 그리 화를 내느냐'는 적반하장도 빈번하다. 이런 경우 변호사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법정에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좋은 말은 좀 부족해도 허물이 안 되지만 상대방이 불편해할 말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배려의 기본이다. 상대의 입장이 무엇이든지 일단 내가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우선 독하게 쏘아대며 행동하고 본다. 우리가 없애야 할 악습 중의 하나이다.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말, 행동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분노 조절에 실패한 경우를 많이 본다. 얼마 전 호남 사람과 영남 사람 간에 댓글로 시작된 다툼이 살인까지 불러일으켰던 뉴스가 있었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카톡으로 시작된 언쟁이 칼부림으로까지 번졌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카톡 사건은 초등학생 사이의 일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자기가 한 말,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 세상이 되고 SNS가 신문보다 빠른 수단이 되다 보니 부적절한 말과 행동에 대한 피해가 새로운 흉기로 진화되면서 책임의 무게가 더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폐해는 식자층에서 더 활개를 친다. 일방적인 통로로 우선 말로 퍼붓고 보니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화가 나는데도, '재수가 없으려니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지…' 하며 그러한 행동이나 말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를 꺼린다. 그러면서 참는 것이 미덕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물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이를 악물며 참으면 더 이상의 분란은 잠재우겠지만, 피해를 끼친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때문에 멀리 내다보면 참아서 얻는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의 BBS(전자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린 각종 글 또는 댓글 중 표현 수위가 심하다면 반드시 본인에게 해명하게 하고 거짓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는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서니 자기가 한 말, 행동이 빛의 속도로 퍼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쩨쩨하게 사과받아 뭐해'라며 넘어가는 것이 '없었던 것으로, 아니면 말고'를 없애는 데 가장 큰 장애임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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