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정신. 오뚜기 신앙2013-7-19 |
나는 결혼하는 부부에게 오뚜기 인형을 결혼선물로 주곤 한다. 그 선물을 받은 한 부부가 내게 물었다. "왜 장난감을 선물로 주셨습니까?" 내가 오뚜기 인형을 선물로 준 이유를 다음 같이 일러 주었다. "장난감으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두 분이 이제 부부로써 함께 살아가노라면 생각지 않은 실패가 올 경우도 있게 됩니다. 그럴 때에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정신을 지니라는 뜻에서 그 선물을 드린 것입니다." 어느 부부 어느 인생도 평생 순탄할 수만은 없다. 사노라면 어느 땐가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부딪혀 다툴 수도 있다. 그럴 때에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는 정신 곧 오뚜기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는 지혜와 용기를 지니라’는 뜻에서 오뚜기를 선물로 준다. 그리고 오뚜기를 결혼선물로 줄 때마다 뒷면에 다음의 성경구절을 적어 준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장 16절) 크리스천들 중에는 가끔 엉뚱한 말을 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자기는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한 경험을 받은 이후로 늘 기쁨이 충만하였다고 얘기한다. 은혜 충만하여 실족하지 않았노라고 말하는 분들이다. 그런 분을 만나면 나는 타이르듯이 말해 준다. "성도님이 그 말을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말하신다면 아마도 두 가지 중에 한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는 성도님의 지능수준이 정신박약의 수준으로 낮은 경우입니다. 둘째는 성도님이 스스로 속이고 거짓말 하는 경우입니다" 어느 사람이든 살아가는 동안에 순탄할 수만은 절대로 없다. 인생살이를 비유하자면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장애물넘기 경기와도 같다. 하나를 넘어서면 다시 새로운 하나가 나타난다. 이번만 넘으면 끝이겠거니 생각하고, 천신만고 수고를 하여 넘어서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난다. 크리스천들은 그럴 때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느니라’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신앙으로 다시 일어나게 된다. |
기초를 튼튼히2013-7-20 |
인생살이에는 기초를 튼튼히 하여야 나이 들어갈수록 평강을 누릴 수 있다. 평강이란 말은 마음의 평화와 몸의 건강을 합하여 쓰는 말이다. 기초가 약한 사람은 한 때는 잘 나가는 듯, 순풍에 돛을 다는듯 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서 흔들리어 균형을 잃게 된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의 분야마다 기초가 흔들리고 있음을 실감케 된다. 정치가 그러하고 경제가 그러하다. 교육이 그러하고 가정들이 그러하다. 이런 때에 종교계나마 탄탄한 기초 위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러하지를 못하다. 종교의 세계는 국민들의 정신세계의 기초를 세워 주는 바탕일진데 종교계가 기초가 흔들린다는 것은 나라 장래를 염려하게 하는 근본이 된다. 야구경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고교팀과 일본고교팀이 야구경기를 하면 대체로 한국팀이 이긴다. 그러나 고교팀 선수들이 그대로 자라 성인팀에 들어간 나이에서는 한국팀이 일본팀을 잘 이기지 못한다. 왜 그럴까? 교교시절에 이겼으면 성인팀에 가서도 이겨야 함이 마땅하거늘 왜 지게 될까? 해답은 간단하다. 한국팀은 기초훈련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일본팀은 고교시절에는 주로 기초훈련에 치중하고 성인팀에 가서 고난도 기술을 훈련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고교팀부터 고난도 기술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정작 기초훈련은 게을리 한다. 그래서 고교시절에는 일본팀을 이기지만 성인팀에 가서는 기초훈련의 부족 탓으로 일본팀에 뒤지게 된다. 기초가 부족한 실력은 곧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뜨겁게 신앙 생활하던 사람이 시험을 당하여 맥없이 허물어진다. 경우를 보게 된다. 믿음의 기초가 약하기 때문이다. 말씀의 기초 위에서 인격이 균형 있게 성숙되어지는 신앙이어야 하는데 그런 균형 있는 신앙과 인격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하면 시련을 당하여 극복하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흔들리게 된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이번 여름휴가는 신앙과 인격의 기초를 새롭게 다지는 데에 투자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나는 생각되어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2013-7-22 |
중세철학에서 근세철학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데칼트(1596~1650)란 철학자가 있다. 그가 젊은 날 군 병영에서 보초를 서다가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짧은 문장에서 근세철학이 시작 되었다. 라틴어로 Cogito는 일인칭 단수 주격이다. 중세철학에서는 신이 만사에 주체가 되어 인간이 주체적으로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데칼트 이후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합리주의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하였다. 그런 발전이 인간을 신에게서 해방시켜 주고, 장밋빛 미래를 열어 줄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1차 대전 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인류는 천국을 스스로 창조하기를 꿈꾸었으나 지옥을 창출케 되었다. 이에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1884~ 1976)이 등장하였다. 그는 세계대전에서 병사로 참전하여 전쟁터의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선언하기를 데칼트의 생각이 그릇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게 아니다. 데칼트가 잘못 생각하였다. 죄 많은 인간들끼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여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원재료가 형편없는데 인간들끼리 생각하고 행동하여 무엇이 나올 것인가? 죄 짓고 서로 죽이고 부패한 짓들만 할 뿐이다” 그래서 불트만이 말했다. "Cogito ergo sum이 아니다. Cogitur ergo sum이다." Cogito가 “나는 생각한다”이나 Cogitur는 수동태가 되어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여서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생각되어지기에 위대한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여 주신다. 그래서 나는 값어치를 지니게 되고 인간다워진다. 나는 사랑 받을만한 값어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주시고, 생각하여 주시고, 인정하여 주시기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2013-7-24 |
미국 학자 중에 책 한 권을 써서 단번에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은 학자가 있다. 일본인 3세로 프랜시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이다. 그의 출세작이라 할 책은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이란 제목의 책이다. 그 책에서 후구야마 박사는 공산주의가 미처 100년이 못되어 실패로 끝난 이유를 설명하였다.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지적한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인정받고자 하는 기본 욕구를 억눌렀기에 애초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체제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위의 책 서두에서 쓰기를 인류는 길고 긴 역사 속에서 두 가지 욕구를 실현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 두 가지가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되었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보다 더 잘 살고자 하는 욕구이다. 둘째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두 번째 욕구인 인정 받고자하는 욕구를 무시하고 억누르고 억압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적하기를 아직도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공산주의 국가들도 끝내는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인민들의 욕구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도 약점이 있고 공산주의에도 장점이 있다. 그런데 약점이 많은 자본주의가 장점이 많은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가 인정하는 사회이다. 여당은 야당을 인정하고 야당은 여당을 인정한다. 경영인은 노동자를 인정하고 노동자는 경영인을 인정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숱한 문제점을 지닌 제도이면서도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당 지도부가 인민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하여 인민들의 의사와 결정권, 인권과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하는 대중은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 체제는 활력을 잃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창의력이 쇠진되어 정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을 생각하면 어차피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다만 언제 무너지느냐는 시기문제만 남았을 따름이다. 우리 남한은 당연히 무너질 북한을 대비하여 통일한국시대를 열어 나갈 준비가 되어져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북한에 대하여 꼭 필요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