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섭지코지 '아쿠아플라넷'서 하루 4회 시연
요즘 제주도 섭지코지의 아쿠아리움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선 제주 해녀의 물질 시연이 한창이다. 방식은 단순하다. 해녀 한 쌍이 깊이 9m여 수조에서 오르락내리락 물질하는 모습을 10분 남짓 보여 주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관객은 몰입한다. 해녀가 물질하는 모습을 물 밖에서나 봤지, 물속에서 보는 건 처음이어서다. 산소통 없이 2~3분씩 너끈히 잠수하는 해녀들을 향해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온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해녀 16명이 매일 돌아가며 이런 시연을 한다. 벌써 9개월째다. 해녀 할머니들은 왜 수족관에 들어갔을까.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전통 물질 시연을 하는 제주도 서귀포시 신양리 해녀들이 수조에 들어간 고금전(65)·이복득 해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가 바로 온 터라 모두 해녀복 차림이다. 원래 열여섯 명이지만 강숙자(66)씨는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
참여 해녀들 평균 나이 70세
해녀 물질 시연을 주도한 건 제주해녀문화보존회(cafe.daum.net/jejudiver) 이한영(40) 대표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숨 참기 달인'으로 TV에 출연할 만큼 맨몸 잠수를 즐겼다. 그러다 맨몸 잠수의 원조 격인 물질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주 해녀문화에 푹 빠졌다. 2008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 길로 해녀문화보존회를 결성했다.
“해녀문화는 제주 여인의 억척스러운 삶 자체예요. 그 요체가 바로 물질이지요.”
제주 해녀는 기량에 따라 갓 물질을 시작한 애기군(똥군)부터 대상군까지로 나뉜다. 실력이 경지에 다다른 대상군 해녀는 2~3분간 숨을 참고 해저 15~20m까지 너끈히 드나든다. 미 해군 잠수연구소도 감탄한 잠수 능력이다. 그렇다고 제주 해녀가 우수한 신체나 체력을 타고난 건 아니다. 그들을 차디찬 겨울바다에 더 머무르게 한 건 바다로 나가 연락이 없는 아비와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강인한 모성애였다. 유네스코가 제주 해녀문화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검토 중인 이유다.
하지만 제주 해녀문화는 지금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제주도에 따르면 현재 현업 제주 해녀는 4600여 명에 불과하다. 그중 80%가 60세 이상의 고령이다. 이 대표가 해녀 물질 시연을 떠올린 까닭도 그런 위기의식이라고 했다.
“제주 해녀 하면 물질을 떠올리지만 제대로 볼 기회는 거의 없어요. 그것만 보여 줘도 충분히 반하리라고 믿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입는 것, 먹는 것도 모두 함께하는 게 제주 해녀의 문화다. 물질 갈 때 신는 신발까지도 똑같이 맞춰 신었다.미 해군도 놀란 제주 해녀 잠수 실력
물질 시연을 하는 해녀의 평균 나이는 70세다. 막내가 64세 오양옥·한명자씨, 73세 김옥자씨가 최고령이다. 신양리에서는 알아주는 대상군 해녀들이다. “경력이 다 50년은 넘는 거.” 해녀 이복득(69)씨가 귀띔했다. 아쿠아리움에서 시연할 때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첫 물질 시연을 앞두고 참가자를 선발하던 날 아쿠아리움에는 해녀 50여 명이 모였다. 손자 용돈이나마 쥐여 주려고 가욋돈 벌이에 나선 거였다. 그런데 수심이 7~9m나 되는 수조의 수압은 엄청났다. 전문 스쿠버다이버도 손사래를 쳤다. 어른 몸통만 한 가오리·상어 따위와도 헤엄쳐야 했다.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무서웠다. 제 발로 되돌아간 해녀가 부지기수였고, 그렇게 해녀 16명이 남았다.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제주 해녀는 원래 일제히 바다에 들어가 일제히 나온다. 갯것을 손질하고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모두 함께다. 그걸 '수눌음'이라 한다. 제주도 방언으로 상부상조(相扶相助)란 뜻이다. 하나 아쿠아리움 안에서 물질을 할 수 있는 인원은 한 번에 2명이 최대였다. 또 잡을 게 없으면 해녀는 숨까지 밭아졌다. 해녀는 잠수복 차림으로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수줍어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한 건 관객의 박수 갈채 덕이었다. 물질 시연에 참여하는 해녀의 태반이 초등학교 졸업도 어려웠던 세대다. “바닷가에 사니까, 학교에 갔다오믄 헤엄을 쳤어. 그것이 해녀가 된 거라…. '해녀다' 하는 자부심이 든 건 요즘이 처음이지.” 김옥자씨가 말했다.
아들은 장하다 하고 딸은 울고 불고
해녀들이 장광자(70)씨를 향해 입을 모았다. “아들들은 '어머니, 참 영광이우' 그러고, 딸은 펑펑 울고 갔지. 시연할 때 수압이 센 걸 봬 줄라고 농구공을 담그거든. 그게 찌그러지는 걸 보더니 '어머니 어떡해, 어떡해. 안 허면 안 되오' 막 울어.” 장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물질하는 모습
을 처음 본 건 다른 집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김옥자씨는 손녀가 “틈날 때마다 쫓아와 해녀를 배우겠다고 했다”며 넌지시 자랑했다. “
그 아이가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하니까 다들 할머니 따라서 댕기는 게 낫다 그랬다네.” 물질 시연 이후의 변화였다.
이 대표는 물질 시연에서 그치지 않고 해녀문화를 활용한 관광자원도 개발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해녀 어머니들 시연 일당이 바다에 나가는 것보다 못해요. 그런데도 자부심을 갖고 나와 주시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고 감사하지요. 그래서 더 지키고 싶어요. 그분들 자체가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고 문화유산이잖아요.”
글·사진=나원정 기자
해녀 물질 시연은 아쿠아플라넷 제주 (www.aquaplanet.co.kr)에서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4회 진행된다. 연중무휴. 아쿠아 플라넷 제주에 입장하면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 어른 3만7600원, 청소년 3만5100원, 어린이 3만2600원. 064-780-0900.
나원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