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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探訪

혼자라도 괜찮아… 여긴, 제주니까/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3. 24. 09:08

혼자라도 괜찮아… 여긴, 제주니까

 

 

 

입력 : 2013.03.21 04:00

하늘과 바람, 일렁이는 바닷물결을
눈에 다 담기에도 하루가 짧은 도보 여행
말없이 걷고 또 걷는 데 취한 여행자들

2010년부터 홀로族, 급격히 늘어나
어느덧 제주 여행객의 30% 넘게 차지

외로움? 그게 뭔가요…
먹고 쉬고 걷고, 이렇게나 좋은데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게스트하우스‘게으른 소나기’로 들어서는 길목은 여유롭고 한적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 끝에 보이는 아담한 제주의 민가. 우쿨렐레 하나 손에 쥐고 룰루랄라 걷는 길, 어둑해지는 하늘빛을 찬찬히 바라보면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 밀물처럼 천천히 들어찬다.

"여기, 소개하실 거예요?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지내면 안 될까요…."

지난 14일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봄볕이 흥건한 마당에서 게스트하우스 '게으른 소나기'를 찾아온 한 손님이 이렇게 말했다. "왜요?" "지금 이대로였으면 좋겠어요.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혼자 여행 오기에 이보다 안성맞춤인 곳도 없는 걸요. 여기마저 유명세 들썩이고 관광객이 잔뜩 들이치면, 조금 쓸쓸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친 그가 조용히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요즘 제주는 나 홀로 여행족의 은밀한 성지(聖地)다. 여행의 고수를 자처하는 싱글 남녀들은 더는 유럽이나 동남아에서 헤매지 않는다. 그저 배낭 하나 달랑 짊어 메고 발걸음도 가볍게 제주로 온다. 가족 여행객이 들끓고 커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제주의 모습만 기억하는 당신이라면, 최신 여행 트렌드에 어느덧 뒤처진 것일지도 모른다.

풍경이 달라진 건 불과 1~2년 사이다. 변화는 길에서 시작됐다. 작년 11월, 제주의 올레길은 21코스까지 완성됐다. 잎맥처럼 촘촘하게 얽힌 제주의 올레길. 이 눈부신 길은 제주 여행객을 어느덧 렌터카에서 내려 두 발로 천천히 걷게 만들었다.

하늘과 바람, 일렁이는 바닷물결을 눈에 다 담기에도 하루가 짧은 도보 여행. 말없이 걷고 또 걷는 데 취한 여행자들은 결국 '홀로' 다시 제주를 찾아오기에 이른다. 제주관광협회 측은 "나 홀로 여행객은 2010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나, 어느덧 제주 여행객의 30%를 넘게 차지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홀로 걷는 이들이 늘어나자 여행의 패턴도 달라졌다. 특급호텔과 펜션, 리조트 외엔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던 제주의 숙박시설. 그 사이를 비집고 유럽 여행자들이 애용하던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가 뿌리를 내렸다. 현재 제주엔 약 4000개의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하룻밤에 2만~3만원만 내면 2층 침대의 깨끗한 한 칸을 차지하고 몸을 누일 수 있다.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고, 거실과 카페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정도의 번거로움은 홀로 떠나기를 자처한 용감한 여행자에겐 금세 달콤한 낭만으로 치환된다.

나홀로족이 즐겨 찾는다는 제주 북동지역.
홀로 여행족의 취향도 제주 여행 지도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항상 인파가 북적대는 관광 명소는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편이다. 좀 더 조용한 곳, 좀 더 한적한 곳을 찾아 걷고 또 걷다 이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요즘은 제주 북동쪽이라고. 제주에 반해 혼자 이민을 온 사람도, 제주의 속살을 내밀하고 고즈넉하게 느끼고 싶어하는 여행객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 바로 제주 올레 21코스 길과 맞닿은 제주 북동쪽 시골 마을이다.

이곳엔 높다란 3층 펜션도, 기념 촬영하기 좋은 테마 파크도 없다. 낮고 둥글고 작은 제주의 민가가 옹기종기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을 뿐. 대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개성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곳곳에 숨어 있다. 제주의 민가를 그대로 살려, 내부만 고친 형태가 많다. 아담하고 소박하다. 이곳에서 홀로 여행족들은 서로 짧은 눈인사를 나눈다. 때론 뜻하지도 않게 와락 이야기보따리를 여는 바람에, 처음 만난 사람과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홀로 여행족의 하루는 그래서 예측 불가능하다. 제주의 바람처럼, 시시각각, 즐겁고도 외롭고, 두렵고도 설렌다. 혼자 걷는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이다.

제주 북동쪽 구좌읍은 게으름뱅이 도보 여행자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등을 찾다 보면, 보물찾기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2만~3만원의 행복, 게스트하우스

①게으른 소나기
이름처럼 게으르게 쉬고 놀 수 있는 곳. 방은 여럿이 함께 복층 침대를 나눠 쓰는 구조의 4인실과 8인실(도미토리 룸), 2인실 황토방이 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은 각각 두 개. 도미토리 룸은 1인 2만원, 2인실 황토방은 2인 5만원이다. 조식 포함.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는 만 12세 미만 어린이 입장 불가. 미리 입금을 해야 예약이 되는 것도 공통점이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1287-4. 문의 070-8823-2456, cafe.naver.com/jejusonagi

②미쓰홍당무
당근밭 바로 앞에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라서 ‘미쓰홍당무’다. 작년 5월에 문을 열었지만 깔끔하고 아늑한 시설 덕에 어느덧 인기 숙소로 자리 잡았다. 4인실(도미토리) 2개, 2인실이 하나 있다. 도미토리룸은 1인 2만5000원, 2인실은 6만원이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이 각각 두 개다. 조식 포함. 아침 식사는 8~9시, 토스트·수프·커피 등이 나온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1753-1. 문의 070-7715-7035, www.misshongdangmoo.co.kr

게스트하우스‘미쓰홍당무’의 외관.

③함피디네 돌집
함피디네는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 1인 2만원, 2인 온돌방 5만원. 조식 포함. 토스트와 잼, 커피와 주스가 제공된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8-1. 문의 010-8790-2010, www.hampdnedolzip.com

혼자라서 좋은 카페

①아일랜드 조르바
한때 월정리 바닷가에 자리 잡아 입소문이 났던 야외 카페. 최근 바닷가를 떠나 구좌읍 평대리 마을 안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전화번호가 없다.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 주인 마음. 하지만 여행객들은 바로 그 점에 매력을 느낀다고. 카페 안에선 종종 ‘꿈꾸는 카메라’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이 열린다. 손으로 직접 갈아주는 커피, 망고 라씨(요거트의 일종)가 인기 메뉴. 주차 가능. 신용카드 이용불가.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1958-7.

②고래가 될…
한때 ‘아일랜드 조르바’가 있던 곳. 지금은 다른 주인이 ‘고래가 될…’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운영한다. 월정리의 새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앞에 작은 나무 의자 몇 개를 놔둔 풍경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최근엔 너무 입소문이 나서 바닷가가 예전보다 북적이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주차 가능. 신용카드 받음.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4-1. 매주 수요일 쉰다.

카페‘고래가 될…’에서 바라본 월정리 바닷가 풍경. 옹기종기 붙여 놓은 작은 의자와 멀리 부서지는 파도가 빚어내는 풍경에 잠시 혼자임을 잊는다

③이리와서네
멀리서 보면 동네 수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외관이 카페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어엿한 카페다. 남자 주인장 ‘이리’와 여자 주인장 ‘서네’의 별명을 합쳐서 이름이 ‘이리와서네’다. 핸드드립 커피, 로열 밀크티 등을 판다. 주차 가능. 신용카드 받음. 전화번호는 없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951-1. 매주 화요일과 매년 12월~2월 쉰다.

④두모악 무인카페
제주의 속살을 찍고 또 찍다 떠나간 사진가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 이곳 카페엔 주인이 없다. 캡슐 커피 3000원, 초코파이 2개 1000원…. 가격이 붙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돈을 내는 것도 철저히 양심에 맡긴다. 무인계산대에 알아서 돈을 넣고 알아서 커피나 차를 즐기다 가면 그만. 컵을 씻고 뒷정리를 하는 것도 역시 각자에게 맡긴다. 주차 가능. 신용카드 이용 불가. 064-784-9907.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 매주 수요일 쉰다.

혼자라도 좋은 맛집

①명진전복
2명 이상 모여 시켜야만 제대로 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횟집, 여럿이 모여 지글지글 구워야 제맛이 나는 고깃집은 사실 싱글족에겐 맞지 않는다.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 단품 요리집. 명진전복 역시 밥 하나만 달랑 시켜도 민망하지 않은 가게다. 좌읍 토박이들은 하나같이 “이곳에서 전복돌솥밥을 먹고 가야 억울하지 않다”고 말한다. 먹어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전복 내장을 버무린 밥을 돌솥에 가득 얹어 은근하게 익혀서 낸다. 밥 위엔 얇게 저민 전복이 꽃잎처럼 올라가 있다. 여느 돌솥밥처럼 밥을 그릇에 퍼내고, 돌솥엔 물을 부어 나중에 누룽지로 즐긴다. 전복돌솥밥 1만3000원, 전복죽 1만원. 064-782-9944.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515-28.

1 혼자 먹어도 뿌듯한‘명진전복’의‘전복 돌솥밥’ 2 해맞이 쉼터’의‘해물라면’

②해맞이 쉼터
싱싱한 바닷가재와 홍합, 새우를 넣고 팔팔 끓여낸 해물라면(5000원), 여기에 전복을 퐁당 넣어준 전복라면(8000원), 두껍지만 속까지 바삭바삭한 해물파전(1만원) 모두 추천메뉴. 혼자 먹어도 민망하지 않은 창가 자리가 좋다. 아침 9시에 문을 연다. 064-782-7875.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2033-19.

홀로 걸어도 좋은 곳

세화민속5일장풍경.

①세화민속5일장
매달 5와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열리는 전통시장. 싱싱한 해산물부터 제주 토박이 사람들이 기다리는 각종 생필품을 파는 좌판이 주르륵 늘어선다. 딸기 화분, 시골 장화, 실내화.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세화바닷가 부근에서 열린다.

②세화 해수욕장
홀로 여행족들이 한때 사랑했던 월정리 바다는 어느덧 관광 명소가 됐다. ‘게으른 소나기’ 주인장은 “좀 더 한적한 바닷가를 원한다면 세화해수욕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게 낫다”고 했다. 눈이 시린 아쿠아마린 빛깔의 바닷물. 바라보기만 해도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느낌이다. 제주의 바람과 향기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주말매거진] 나 홀로 여행족의 은밀한 성지(聖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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