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11 23:17
- 이지훈 경제부장
그 첫 번째는 국가 재정의 딜레마이다.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구원투수로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대공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최후의 소비자'가 돼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장은 국가들에 빚을 줄이라고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 유럽의 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는 물론, 미국이나 일본도 재정 상황이 악화돼 씀씀이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결국 각국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세계 경제는 침체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지난 주말 EU(유럽연합) 26개국이 이른바 '신(新)안정성장 협약'에 합의해 재정통합으로 한발을 내디딘 데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적자 기준(GDP의 3%)을 어긴 국가에 자동적인 제재를 가하기로 하는 협약 내용은 결국 회원국들의 긴축을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럽·미국·일본이 일제히 긴축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개방경제인 한국에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 역시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엔 불편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내년엔 정부의 경기부양 여력이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재정이 선진국에 비해서는 형편이 나은 편이긴 하지만, 위기극복 과정에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지를 수혜가 아닌 권리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복지 수요가 봇물 터지듯 급증하고 있고, 저출산·고령화 문제까지 겹쳐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
돈을 풀어야 하는데 풀기 어려운 각국 정부가 기댈 선택지 중 하나는 증세(增稅)이다. 내년에도 버핏세를 비롯한 증세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다. 특히 한국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조세 수입 비중)이 19%로 미국(28%), 일본(36%), 프랑스(43%)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유층 증세 논의는 계속될 것이며, 부가가치세 인상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경제의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년은 사회갈등이 확대돼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으로 저성장과 청년취업난이 계속되면서 계층·세대·이념 간 갈등이 고조될 것이며, 한국의 양대 선거를 비롯한 각국의 선거는 이 같은 갈등을 완화시키기보다 증폭시킬 것이다. 벌써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내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높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면서 과천 경제부처들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불편한 진실들만 들여다보니 세상이 곧 망할 것도 같다. 하지만 세상엔 희망적인 진실도 있다. 무엇보다 2008년의 리먼 쇼크 같은 초대형 쇼크가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이다. 경제가 예상보다 악화될 경우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나 금리 인하 등 우리 정책 당국이 그동안 아껴 놓았던 카드가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위안은 세상엔 늘 불편한 진실들이 많았다는 것, 그럼에도 역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늘 진보해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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