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야기 - 1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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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믿음의 조상들 이야기
창세기는 성경의 첫 번째 권으로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알리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인생과 신앙으로
창세기 12장 1절부터 마지막 장 마지막 절(50장 26절)까지이다.
아브라함 이전까지는 설화이지만
아브라함부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이라는 말은
“온 나라의 아버지 the father of nations (the King James,
개역성경에는
뭇민족의 아버지 the father of a multitude로 되어 있다)”
라는 뜻인데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창세기의 주요 주제이다.
이 책의 구성은 아브라함의 가계를 따른 것이다.
제1편 아브라함의 일대기(12:1-25:1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25:12-28:9).
제2편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 이야기(28:10-36:43).
제3편 야곱과 열두 아들 이야기(28:10-36:43).
제4편 요셉과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주 이야기(37:1-49:33).
요셉의 최후 이야기(50:1-26).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하다.
단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위기 때마다 아내를 누이라 속였으며,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낳았으며,
야곱은 형을 배신하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고,
장인이자 외삼촌인 라반을 속여서 재산을 증식하는 등
파렴치한 일들을 일삼았다.
어찌 보면 그들은 우리와 다름없이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시인하고 회개했으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집요하게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이 분부하시면 순종하고 따랐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으며
그 믿음을 소중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유산으로 상속시키려 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후손에게 전함으로써 자신들이 범했던 과오를
후손들은 범하지 않도록 하는 교훈으로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선민으로서 손색이 없는 자세라 하겠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부끄러운 과거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서 후세를 교훈하려는 진실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믿음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출판사 知와 사랑에서 사랑의 총서를 기획하면서
구약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청탁해 왔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나아가 기독교의 본질을 찾아간다는 일에 동참하는 뜻으로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이 주제로
『창세기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창세기 이야기』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천지창조와 노아에 이르는 『하나님 이야기』는
따로 쓰기로 하고
우선 역사적인 인물들의 인생역정을 살펴보았다.
앞서 출간된 『성지 이야기』와 『욥 이야기』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나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대한 흠모의 마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독서해 왔다.
이제 인생의 황혼을 맞아
지금까지의 신앙과 학습을 정리하고자 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생애와 신학을 전하는
『선지자 이야기』도 집필 중이다.
이 책들을 통해 독자들이 성경의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고대문화 속에서 성경의 참된 의미를 이해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끝으로 본문에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인용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더러 괄호 안에
공동번역성서를 함께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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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이해
창세기는 누가, 언제, 왜 썼을까
성경(Bible)은 그리스어로 ta biblia라고 하는데
“책들 the Books”이라는 뜻이다.
66권의 작은 책들이 한 권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한 해 평균 3천만 권이 팔린다고 하는데
구텐베르그(Gutenberg)가 1453년 인쇄기를 발명한 이래
약 1천5백억 권을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성경을 책 중의 책 the Book of Books이라고 한다.
성경은 286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므로
전 세계 사람 누구에게나 친숙한 책이다.
일본은 인구의 1% 미만이 크리스천이지만
근래 일본에서 팔린 성경은 1억 5천만 권에 달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구할 수 없어 읽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지만
다만 우리가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경을 가진 사람 100명 가운데 15명이 읽는다고 하며
그나마 열심히 읽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창세기(Genesis)는 토라(Torah)의 첫 권이다.
토라란 구약성경 첫 다섯 권을 통칭하는 말로
그리스어로는 Pentateuch(5권)라고 하며
모세(Moses)가 썼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모세오경 Five Books of Moses이라고도 한다.
모세오경은 창세기를 포함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창세기는 50장에 1,500구절 이상으로 되어 있다.
원래부터 이렇게 분류된 것은 아니었고
중세의 인쇄업자가 책을 제작하면서 편의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썩 잘 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일 모세가 창세기의 저자라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후
광야에서(기원전 1446-1406년) 썼을 법하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순서적으로는 창세기가 토라의 첫 권이지만 쓰여진 시기로 보면
출애굽 이후의 일이다.
창세기를 읽는 사람은
이 책이 한 사람의 저술이라는 데 의심이 생길 것이다.
같은 이야기가 내용을 달리해서 병렬되어 있는 것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출처에서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란 점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창세기는
모세가 쓴 것이 아님이 분명해진다.
아마 주요 내용이 모세에 의해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그가 저자로 알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뛰어난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사도행전 7:22)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출애굽기 24: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애굽기 34:27-28)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이 여호수아(Joshua)에게 한 말씀 가운데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all the law my servant Moses gave you”
그리고 “율법책 Book of the Law”이란 말이 있어
(여호수아 1:7-8, 열왕기상 2:3, 고린도전서 9:9)
모세가 차세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를
문서로 전해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창세기의 저자로 모세를 지목했다.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마가복음 12:2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5:46)
네 가지 출처
창세기를 포함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토라는
기원전 450-400년경에 편집된 것이다.
문서로 또는 구전으로 전래된 이야기들이
편집자(Redactor)들에 의해서
이때서야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여기에 편집된 이야기들의 출처는 다양하지만
특히 다음의 네 가지 출처가 두드러진다.
J출처(J source)
J출처란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른 사람들
(Yahwist, 독일사람들에게는 Jahwist)을 통해서
알려진 이야기를 말하는데
창세기의 많은 부분이 이 출처에서 발췌되었다.
하나님을 주(the Lord) 야훼(YHWH)라고 불렀다고 해서
Jahwist의 약어로 J출처라고 한다.
J출처의 연대는 기원전 950-800년으로 어림되며
J를 유대 르호보암(Rehoboam) 왕 시대의 사람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기원전 922년 솔로몬 왕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되었는데
유대에 속한 J가 전래한 이야기를 J출처라고 한다.
2-4장(천지창조, 에덴 추방, 카인의 아벨 살해),
6장(거인 이야기), 6-9장(홍수 이야기),
10-11장(바벨탑 이야기),
12-50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야기)은
J가 전한 이야기들이다.
P출처(P source)
제사장들(Priestly Writers)이 전했다고 해서
P출처라 한다.
J가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른 데 비해
P는 그냥 하나님(Elohim)이라고 불렀다.
엘로힘이란 주(the Lord 또는 God)라는 뜻이다.
P출처의 연대를 기원전 700-500년으로 어림하지만
요셉 이야기는 기원전 1000-900년부터 전래된 것으로 본다.
P는 1장(천지창조), 5장(첫 번째 조상들의 명단),
6-9장(홍수 이야기), 11장(두 번째 조상들의 명단),
그리고 아브라함 이야기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E출처(E source)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엘로힘(Elohim)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이를 E출처라고 한다.
E출처의 연대를 기원전 850-750년으로 어림하며
눈먼 이삭의 이야기는 E를 통해 전래되었다.
J출처에는 야훼가 거닐기도 하고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E출처에서는 엘로힘이 꿈에서 말씀하신다.
R출처(R source)
J, E, P출처들이 초기에 전래된 이야기들이라면
R출처는 후기에 영향을 끼친 편집자(Redactor)의 것이다.
편집자 R이 J, E, P출처들을 종합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창세기를 완성했다.
R출처의 연대를 기원전 587년 이후로 보고
450-400년경으로 어림한다.
유대인 신학자 마틴 뷔버(Martin Buber, 1878-1965)는
R을 단지 편집자로 보지 않고
우리의 스승(Rabbenu)으로 간주하였다.
모세오경에 있어서 R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모세오경은 R에 의해서 아주 훌륭하게 편집된 것이다.
R은 하나님을 야훼로 부른 전통을 따랐다.
이처럼 네 출처는 각기 독특한 이야기들을 전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다르게 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와 홍수에 관한 이야기는
J와 P 모두가 전했지만 내용에서 조금 다르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이야기는
J, E, R이 전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야기는
J, E, P가 전했으며,
하갈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J와 E가 전했고,
브엘세바에 관한 이야기는 J, E, P가 전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라반에게 도망친 이야기는
J와 P가 전했고,
벧엘에서의 야곱에 관한 이야기는 J와 E가 전했으며,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이야기는 J와 P가 전했다.
홍수 이야기는 J와 P가 전했지만
R이 두 이야기를 묶어서 하나로 만들었다.
J에 의하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깨끗한 동물 각 일곱 쌍과
불결한 동물 각 한 쌍을 방주에 실으라고 하신 반면,
P는 각 한 쌍을 방주에 실으라고 했다.
J에 의하면 홍수가 난 것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고,
P는 하늘나라 수문이 열려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J에 의하면 홍수가 40일 동안 계속되었지만
P는 150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출처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으며
같은 내용이라도 부분적으로 생략되어 전해지기도 했다.
창세기의 목적
편집자가 창세기를 쓴 목적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그 내용으로 쓰여진 목적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창세기에는
인류의 시작과 이스라엘 국가의 시작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을 대적한 이야기와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원받는 대목이 창세기의 주요 내용이자
후세에 알리기 위해 쓰여진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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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내용
창세기의 내용을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천지창조와 하나님의 계획이 서사시로 기록되어 있다
(1:1-2:25).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This is the account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2:4)는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1:1)는
구절을 반복한 말이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튿날 하나님이 쉬셨다는
내용이 1:1-2:4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내용을 셋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천지창조에는 하나님의 성격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주의 유일한 창조주이며 단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2) 본래의 창조는 매우 아름답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이 만드신 것이
모두 아름답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같은 창조에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3) 천지창조에는 창조의 목적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우주가 계속해서 매우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인간의 역할은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인도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2장 4절 이하에는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데
전래된 이야기의 출처가 다르기 때문에 편집자가
두 가지 출처를 병렬했다.
2장 3절까지는 P출처이고 2장 4절 이하는 J출처이다.
J는 조금 다른 천지창조 설화와 인류의 조상 아담(Adam, 남자)과
이브(Eve, 여자)의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있다.
에덴(Eden)은 태초의 지구의 장소로 묘사되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는 인류의 역할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1:28)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과 능력이 이와 같다는 뜻이다.
인간은 가족의 일원이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일원이라는 말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다.
(2) 인류의 역할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1:26) 것이다.
(3) 바다와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다스릴 수는 없다.
2. 인류 조상의 범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
(3:1-7:24).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고
이는 이브로 하여금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을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제한이 있으나 제한을 받는 것은 좋지 않다고
사탄이 이브에게 말했으며 이를 이브가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사탄과 이브 모두를 저주하셨다.
사탄에게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고 하셨고,
이브에게는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3:16)고 하셨다.
하나님은 지구를 저주했으며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쫓아내셨다(3:23-24).
하나님은 홍수로 본래 창조한 것을 파괴하셨다(7:1-24).
3. 하나님은 다시 창조하시고 새 민족을 통해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노아(Noah)를 통해 새 인류를 일으키셨다(8:1-11:32).
여기에 유명한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있고
노아의 가족은 홍수라는 파괴로부터 구원을 받아
새 인류의 역사를 시작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Abraham)에게 자손의 번영을 약속하셨다
(12:1-21:34).
여기서부터 창세기 끝장 마지막 절까지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 관한 이야기로 일관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Isaac)에게 약속하셨으며(22:1-26:35),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Jacob)에게 약속하셨고(27:1-36:43),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Joseph)에게 약속하셨다(37:1-50:26).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거듭해서 번영을 약속하셨다.
유대인은 고대 히브리족(Hebrews 또는 Habiru)에서
비롯된 족속이다.
히브리족은 기원전 2.000년경 또는 이후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주해온 농경민과 유목민들로 구성되었다.
가나안으로 이동한 무리들 가운데 하나가 아브라함과 그 일행이다.
아브라함이 하란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이동한 것은
역사의 발자취가 되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최초의 선지자였다.
하나님은 여덟 차례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1.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분부하시며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하여금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겠지만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겠다고 말씀하셨다(12:1-3).
2.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와서 세겜에 이르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12:7).
3. 아브라함이 분쟁을 피하려고 조카 롯과 헤어졌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이는 땅을 그와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며
자손의 수가 땅의 티끌처럼 셀 수 없이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13:15-16).
4.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도록 하신 후
자손의 수가 그와 같이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15:5).
5. 자손 대대로 자기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표징으로 할례를 요구하고
할례 받지 않는 것은 약속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하셨다(17:9-14).
6.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해서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삭의 출생을 예고하셨다(17:15-21).
7.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를 대접했을 때 기한이 이를 때
정녕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시며 사라에게 아들이 잉태될 것을
거듭 약속하셨다(18:10).
8.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을 일으켜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2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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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이야기의 의미
37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창세기의 3분의 1이 요셉에 관한 이야기다.
창세기 편집자가 요셉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요셉을 통해 사랑과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며 또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인류 모두의 구원의 문제를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셉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으며
물주의 인간창조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고
사람이 죄악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구원하시며
재창조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요셉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으로 이해하고
그의 생애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요셉의 일대기는 하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요셉 이야기는 열일곱 살의 요셉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부터 시작된다(37장).
요셉의 증조부 아브라함, 조부 이삭, 아버지 야곱은
온전한 인간의 원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약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순전히 은혜로 그들을 선택하셨다.
이것이 선민사상의 근본이다.
요셉은 증조부의 신앙, 조부의 순종, 아버지의 노력과 인내 등
그들의 장점만을 물려받았다.
요셉은 꿈의 소년이었다.
꿈이란 자면서 꾸는 것만이 아니라 눈을 지긋이 감고
명상을 통해서 꾸기도 한다.
예언자의 꿈, 시인의 꿈, 영웅호걸들의 꿈은
모두 명상을 통해 이루어진 꿈들이다.
요셉 이야기는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형들에게 말했다가 시기를 받고
노예로 이집트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된다.
걸어서 몇 달이 걸리는 먼 길을 팔려가면서
형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요셉은
훗날 반드시 보복하리라 결심했을 것이다.
요셉은 이집트의 고관에게 팔리게 된다.
용모가 단정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성실한 요셉은
주인의 신임을 얻어 재산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는다.
그러나 그를 유혹하던 여주인에 의해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자 하나님이 꿈으로 구원의 손길을 펴셨고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
요셉은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곡물을 사러 왔다가
총리가 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형들에게
위로의 말을 한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셨나니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역사가 곧 하나님이 만든
드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총리가 된 요셉은 기근으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살렸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셨다”는 그의 말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상상된다.
요셉의 전기를 작은 예수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파스칼은 명상록에서 요셉을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자식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형제들을 만나러 갔다가
그를 질투한 형제들에 의해 은 20냥에 팔렸다.
가롯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를 판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요셉과 예수는 형제들의 구세주가 되고,
이방인의 구세주가 되며, 세계의 구세주가 되었다.
그들을 없애고, 팔아버리고, 배척하는 형제들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감옥에서 요셉은 두 사람의 죄수 틈에 끼어 있었다.
예수는 두 명의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요셉과 예수는 꿈에 의해 한 사람에게는 구원을,
다른 한 사람에게는 죽음을 예언했다.
그러나 요셉은 다만 예언했을 뿐이지만
예수는 실천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요셉은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 때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예수는 그와 반대로 자기로부터 구제받은 사람으로부터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자기를 생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팡세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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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신앙
제1편 : 아브라함 이야기
우르 사람 아브라함의 가계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11:26-29)
아브람(Abram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의 가계는 이러하다.
아브람은 힘 있고 번영하던 도시 우르(Ur) 사람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생활을 했다.
기원전 1800년경
아마 염소 털로 만들어진 훌륭한 천막에서에 태어나
지구라트(Ziggurat) 근처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에 시작된다. ]
우르는 수메르(Sumer)의 수도였다.
우르 말고도 메소포타미아에는 에리두(Eridu)와 우르크(Uruk),
닙푸르(Nippur)의 대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우르의 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갈대아(Chaldees)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수메르를 가리키는 말인데
“평원의 사람 people of the plain”이란 뜻이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란 말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을 뜻한다.
반달처럼 생긴 비옥한 평원에서 약 5천 년 전에 문명이 발흥했는데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 가운데서도 수메르의 문명은 빼어나다.
수메르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와서 정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청동기시대(기원전 3500년경)에 북쪽에서 내려와서
산간지대에 살던 이란 사람들로 짐작된다.
그들은 기원전 3200년경에 이미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수학이 발달하여 기본 숫자를 6까지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10까지 사용하는 것에 비해서).
그들은 물레를 사용하여 질그릇을 만들었고
격언이나 현자들의 말을 기록하여 법으로 사용했다.
또한 노예의 노동력을 사용했으며 전쟁포로들을 종으로 삼았다.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단과 쿠웨이트 일대로 페르시아 만 근처,
바스라(Basra)에서 북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기차역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를 말한다.
오늘날 역 주변은 광활한 사막으로 에워싸여 적막하다.
마치 거대한 사막의 접시 중앙에 역장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5천 년 전 이 곳에는 오아시스가 많았고
비옥한 땅이 즐비해 농경산업이 발달했다.
보리와 밀, 무화과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맥주문화도 발달했다.
근래 기원전 2700년 또는 2600년 것으로 보이는 우르 왕조의 유물과
바빌론 왕조의 유물들이 계속 출토되고 있는데
맥주잔에 탐스러운 보리이삭이 그려져 있다.
이들 유물들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상, 풍속도, 그리고 점토판에 기록을 새긴 비문들도 출토된다.
우르 사람들은 기원전 2100년경 벽돌을 사용해서
높이가 91.5m나 되는 계단식 8층탑을 건립했는데
맨 아래 정사각 기초구조물의 길이는 무려 91m에 달했다.
야곱이 꿈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다란 사다리를 보았다고 했는데(28:12)
이 탑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늘에 닿는 계단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수학과 공학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계단식으로 높아지는 구조물에는 나무를 심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탑 꼭대기는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소였다.
우르 사람들은 여러 신을 섬겼는데 달신 난나(Nanna) 외에도
태양신과 별신을 섬겼다.
그들이 건립한 지구라트는 오늘날 탑의 기초만 남아 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가
“지구라트는 아주 낡았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 이미 낡은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Terah)는 가족을 이끌고 우르를 떠나
하란(Haran)으로 가서 정착했다. (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하란은 오늘날 터키에 속하는데 시리아 국경에 인접해 있다.
하란은 미탄니(Mitanni) 왕국에 속한 도시였다.
미탄니를 후리(Huri)라고도 하는데 후리안족(Hurrians)
또는 호리족(Horites 또는 Khurites)이 살던 나라였다.
미탄니 사람들은 아시아로부터 온 인도-유럽인(Indo-European)으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위쪽에 정착했다.
하란은 대상들이 만나는 상업도시로 우르와 견줄 만한 대도시였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낙농산물, 고기, 우유, 버터, 치즈, 모피 등이 있다.
무화과가 많았고 포도주는 물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포도농사가 잘 되었다.
지금도 이곳 지하에서는 많은 왕궁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된다.
하란은 동남쪽 페르시아만을 통해 들어오는 인도의 상품,
동북쪽 서역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오는 중국의 상품,
서유럽으로 오가는 상품, 남부 이집트로 오가는 상품을 교역하는
대상들로 붐비는 화려한 도시였다.
아브람의 가족은 유목민이었고
하란은 유목민에게 적합한 곳이 못 되었다.
하지만 대상들을 상대로 특산물을 팔아 돈 벌기는 쉬운 곳이었으므로
아브람의 가족은 아마 그런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종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재산을 관리하고 양치는 일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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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으로 가다
데라가 죽은 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12:1-2)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12:5)
하란으로부터 남쪽 가나안까지는 960km도 더 된다.
발릭(Balikh)과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팔미라(Palmyra) 오아시스를 지나
다마스커스로 해서 갈릴리 호수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는 대상들의 행로로 대상들은 이 길을 따라서
이집트 나일 유역까지 갔다.
아브람도 이 길을 따라서 가나안으로 내려왔다.
가나안은 단(Dan)에서부터 브엘세바(Beersheba)까지로
전해졌다(사무엘상 3:20).
오늘날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 지역에 해당하는 이곳은
여기서 북쪽으로 240km, 폭은 40km로 불과 15,200km2이며
이는 미국 매릴랜드(Maryland)주 또는 시실리(Sicily) 섬
만한 크기이다.
가나안은 유목민들이 살기에 적당한 땅이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은 지금도 베두인족이
양떼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람은 일족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세겜(Shechem)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스인에게 페니키아(Phoenicia)로 알려진 가나안의 사람들은
그리스인에 앞서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민족을 이루고
지중해를 무대로 항해술을 발달시켰으며 해상무역과
동부 페르시아를 통해 무역업을 발달시켰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던 문자가 알파벳의 원조가 되었다.
75살의 아브람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람은 벧엘(Beth-El)과 아이(Ai) 마을 사이에 천막을 치고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았다(12:7).
그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당시 유목민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베두인족은 양떼를 몰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브엘세바 이남은
네겝 사막으로 비가 오지 않는 불모지인데도
양들은 바위 사이에 있는 난장이 풀들을 뜯어 먹는다.
양치는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며 물과 풀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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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누이라 속인 아브라함
가나안에는 농경지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사와 목축을 전적으로 비에 의존해야 했다.
이집트에는 나일강이 있어서 좀더 많은 물을 공급할 수 있으므로
가나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흉년이 들면 이집트로 피신했다.
아브람도 흉년이 되자 아내와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당시 사람들은 남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잔악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 사래더러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했다.
사실 사래는 아브람의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이복동생이기도 했다.
사래의 아름다움이 소문이 나서 이집트 왕 바로에게까지 알려지자
바로는 사래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바로는 사래에 대한 보상으로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낙타를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의 아내를 취한 바로에게 재앙을 내렸다.
겁이 난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왜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자기가 사래를 아내로 삼게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사래와 모든 소유물을 주고
이집트 땅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여러분은 아브람과 같은 인물을 파렴치한 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내를 팔아서 치부한 부끄러운 이야기가
어떻게 창세기에 기록될 수 있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생각컨데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할머니 사래의 미모를
뽐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브람이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감히 바로를 속이고
곤경을 무사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로를 골탕먹였다는 데서는 아마도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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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터전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은 이집트에서 기근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재물을 얻어 가나안의 벧엘로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유목생활에 익숙했으므로
그들의 재산은 나날이 불어만 갔다.
양, 소, 낙타의 수가 자꾸 불자 아브람과 롯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가축을 먹이기 위해서 좀더 넓은 땅이 필요하게 되자
자연히 땅을 놓고 아브람과 롯이 부리는 목자들 사이에
마찰이 잦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사랑하는 조카 롯과 이국에서
사소한 일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그를 불러 이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큰아버지인 아브람이 주로 양보하는 데서 해결점을 찾았다.
아브람은 롯에게 갖고 싶은 땅을 먼저 차지하라고
우선권을 주었다.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아브람이 선택권을 주자
롯은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요단 평야를 둘러보았다.
소알까지의 온 땅에는 물이 넉넉해 보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었으므로
요단 평야에는 이집트 땅처럼 비옥한 들판들이 널려 있었다.
요단 지역이 롯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날의 요단은 사해와 사해 동쪽 지역으로
당시는 사해가 생기기 전이었다.
롯은 요단 동쪽의 온 평야를 갖겠다고 말하고
소돔으로 떠났다.
아브람은 롯이 선택한 반대편 서쪽 가나안 땅을
영역으로 삼고 조카와의 분쟁의 원인을 없애 버렸다.
롯이 떠난 후
혈육에 대한 아브람의 올바른 행동을 보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13:14-17)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장막을 치고
새 터전을 마련하고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는 일을 잊지 않았다.
헤브론은 기원전 1,700년경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마을로서 아브람 생존 시에는
아직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전이었다.
아브라함과 헤어진 롯은 자신이 선택한 요단 계곡에
거주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곳은 불모지이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물이 넉넉한 훌륭한 경작지였다.
소돔과 고모라는 먹을 것이 풍요하고 재물이 많은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러나 왕족과 국민 모두가 방탕했기 때문에
이웃나라들의 시기를 받아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싯딤(Siddim) 골짜기에는 다섯 나라가 있었는데
소돔(Sodom), 고모라(Gomorrah), 아드마(Admah), 스보임(Zeboiim),
그리고 소알(Zoar)이었다.
각 나라의 왕들은 지난 12년 동안
메소포타미아의 엘람(Elam)의 왕 그돌라오멜(Chedorlaomer)에게
세금을 바쳐왔지만
13년째 되던 해 세금납부를 거부하며 반기든 것이다.
그돌라오멜은 이웃의 세 왕들과 연합군을 결성하고
싯딤 골짜기의 다섯 왕들과의 전쟁에 임했다(14:10-12).
그돌라오멜에 연합한 시날(Shinar) 왕 아므라벨(Amraphel)은
기원전 1,700년경 유명한 법전을 만든 바빌론의
함무라비(Hammurabi) 왕으로 알려져 있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메소포타미아 네 왕들의 연합군 반격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왕들은 재물과 양식을 약탈당하고 도망쳤다.
소돔에 살던 롯도 재산을 빼앗기고 그들에게 붙들렸다.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람은
평소 집에서 훈련시킨 장정 318명으로 특공대를 조직하고
몸소 지휘하여 전쟁터로 갔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북쪽 단(Dan)으로부터
다메섹(Damascus) 좌편 호박(Hobah)까지 쫓아가서
빼앗긴 모든 재산과 롯과 부녀자와 종들을 찾아 왔다.
혈육에 대한 아브람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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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과 소돔 왕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4:17-18)
아브람이 승전하고 돌아오자 도주했던 소돔의 왕이
사웨(Shaveh) 골짜기 왕곡(the Valley of the King)에 나와
환영을 표시했으며
살렘(Salem)의 왕 멜기세덱(Melchizedek)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영접했다.
살렘은 예루살렘(Jeru-Salem)의 고어이다.
멜기세덱은 예루살렘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the Most High)’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시편 110:4, 히브리서 5:5-10, 7:1-10).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맞아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축복했다.
아브람은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다.
예루살렘 왕이 친히 아브람을 축복한 것을 보면
당시 가나안에서의 아브람의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소돔의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돌려주고 물품은 당신이 취하라”고 말했다.
아브람은 “천지의 창조자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니니 당신의 소유물은
실 한오라기라도 가지고 가지 않겠다”고 대답하며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란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말을 사용했다.
아브람은 소돔 왕이 사악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단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창세기에는 멜기세덱이 메시아의 원형으로 부각된 데 반해
소돔 왕은 악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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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이런 일이 있고 얼마 후
하나님이 환상으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15:1-9)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한 큰 상급이니라”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라”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 지니라”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어둠이 깔릴 무렵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들에 나갔던 아브람은
그만 깊은 잠에 빠졌다.
이때 하나님이
다시 아브람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15:13-16)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심판)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니라
이튿날 해가 지고 어둠이 막 깔릴 무렵,
아브람은 멀리서 풀무가 나타나고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횃불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횃불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뜻한다.
하나님은 횃불 사이를 지나가며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다.
이날의 약속은
아브람의 자손에게 벌어질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15:18-21)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스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애굽 강이란 나일 강을 말한다.
하나님이 나일강 하류 델타 지역으로부터 유프라테스 강 하류까지
가장 살기 좋은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두 지역은
오천 년 전 상고시대부터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나일 강은 매해 6월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주기적으로 범람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불가사의한 신비에 쌓여 있었다.
오늘날 나일 강의 범람은 아프리카 동남부 산악지대에 쌓인 눈과
계절적으로 내리는 비가 합쳐 흘러내리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집트 면적의 95%가 사막으로 비가 오지 않지만
나일 강 하구의 델타 지역은 비옥한 옥토로
예로부터 곡창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나님이 이날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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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종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다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녀는 칠십 중반이었으므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자식이 없으면 모든 재산을 종에게 남겨 줄 수밖에 없으며
또한 아브람 가계의 대가 끊기고 만다.
이를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저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이를 통해서라도 자녀를 얻어야 하겠습니다”라고 권했다.
사래가 말한 여종은 이집트 태생의 하갈(Hagar)이었다.
사래는 첫눈에 하갈이 마음에 들었다.
손과 발이 유난히 크고 성격이 억척스러워서
힘든 일도 척척 해냈으며 검고 긴 머리에 거무스레한 피부와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려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걸을 때는 큰 엉덩이를 씰룩거렸는데
그 뒷모습을 보면 아이도 쉽게 쑥 낳을 것 같았다.
아브람도 자식이 없어 대가 끊길 것을 생각하니
늘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내를 사랑했으므로
다른 여인에게서 자식을 낳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 관습으로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소실을 들여서라도
자손을 보게 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였다.
이런 관습은 기원전 1500년경에 쓰여진 메소포타미아의
누지(Nuzi) 돌판에 새겨진 글에서도 발견된다.
하나님이 자손을 약속했지만
아브람은 그것을 완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람과 사래는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브람은 아내의 청원을 받아들여 하갈과 동침했다.
하갈에게 태기가 있자 아브람과 사래는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자 하갈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하갈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를 업신여기며
무슨 일을 시켜도 못 들은 척하기 예사였다.
이를 참지 못한 사래가 아브람에게 항의했다. (16:5-6)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아브람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동안 분을 품어온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사래의 학대가 심해지자
하갈은 자신의 몸이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도망쳤다.
광야에 있는 수르(Shur) 우물가에서
하갈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울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물었다. (16:7-12)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천사의 말을 들은 하갈은
“이런 데서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뵙다니!”하고 놀라면서
그 우물을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라고 명명했다.
이스마엘(Ishmael)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God Has Heard”라는 뜻이다.
하갈은 하나님을 엘로이(El-ro’i)라고 불렀는데
이는 “감찰하시는 하나님 God Who Can Be Seen”이란 뜻이다.
하갈은 천사가 시키는 대로
사래에게 돌아가서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아니었다.
아브람이 아내의 말을 따른 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3:17)라고 문책한 것에
해당하는데
남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신 말씀이다.
아브람은 어리석게도 아내의 말을 듣고
소실을 얻어 자식을 얻은 것이다.
아브람의 나이 86세 사래의 나이 76세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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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에 대하여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 되던 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17:1-16)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 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런즉 너는 네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의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 이니라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제부터는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하셨다.
아브람(Abram)은
“존귀한 아버지 exalted father”라는 뜻이고
아브라함(Abraham)은
“뭇민족의 아버지 the father of a multitude”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온 나라의 아버지 the father of nations”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약속이란 계약(covenant)을 뜻한다.
하나님은 계약의 징표로 물리적 표징인
할례(circumcision)를 요구하셨다.
모든 자손과 돈을 주고 산 종들도 8일 만에
할례(포경수술)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사래(Sarai)의 이름 또한 사라라 하라고 하셨는데
사라(Sarah)란 “왕비 Princess”라는 뜻이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 나라의 왕과 왕비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엎드린 채 웃으며
마음속으로 자기가 아흔아홉 살이고 사라가 여든아홉 살인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브라함은 이제 열세 살 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의 귀여움을 받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17:19-21)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번성케 할 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어 보니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그분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그날 아들 이스마엘을 비롯해서 집에서 난 종들과
돈을 주고 사들인 종들에 이르기까지 남자라면
모두 포경을 베어 할례를 베풀었다.
아브라함도 물론 할례를 받았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백 살 때 아흔 살의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삭(Isaac)도 축복하셨고 이스마엘도 축복하셨다.
하나님은 “네 자손으로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16:10) 하시며
이스마엘의 출생을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셨다.
그때의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누구라도 축복받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축복과 같이 이스마엘은 아랍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이슬람교도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히브리족과 아랍족의 조상은 같은 아브라함인 것이다.
이렇듯 창세기는
유대인이 왜 할례를 시행하게 되었는지를 전하고 있다.
즉 오늘날 할례는
성생활에 대한 위생적인 포경수술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 근본정신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생육하기 위한
신성한 종교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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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방문객의 약속
하루는 하나님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정오에 천막 앞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은 점잖게 생긴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다.
하나님이 두 천사를 대동하고 출현한 것을
고대 다신론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도 있고
이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그들을 반가이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 말했다. (18:3-5)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서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로 떡을 만들라 이르고
종에게 기름지고 연한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게 했다.
그는 버터와 우유를 가져다 식탁에 놓고
나무 아래에서 손님들을 접대하였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18:9-10)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장막에 있나이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천막 안에서 엿보고 있다가 이러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사라는 이미 월경이 끊긴지 오래였다.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자신도 늙고 남편 또한 늙었는데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냐고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사라가 웃으며 중얼거린 말을 지적하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18:13-14)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놀란 사라는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다. (18:15)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대접을 받은 후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소돔으로 향하셨다.
아브라함은 전송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갔다.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18:17-32)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50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50명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 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내가 만일 소돔 성 중에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50명 의인 중에 5명이 부족할 것이면
그 5명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내가 거기서 45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4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40명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3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거기서 30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2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20명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1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10명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의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류하려고 노력했지만
정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저지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택했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소돔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의와 공도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시려고 했으며 하나님의 약속은
의와 공도를 지킬 때만 유효하다는 사실도 알려 주시려 했다.
하나님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이 멸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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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하나님의 두 천사가 소돔에 당도한 것은
해가 이미 기울었을 때였다.
롯이 마침 성문에 앉아 있다가 천사들을 보고 일어나
땅에 엎드리며 영접했다.
롯은 그들을 길손으로 알았다.
그는 말했다. (19:2)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천사들은 사양했지만
롯이 간청하여 그들을 집에 들도록 했다.
당시 유대인은 길손을 천사처럼
정중하게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손님 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리라”는 격언이
아브라함과 롯으로부터 비롯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롯도 음식을 잘 차려서
그들을 대접하였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소돔의 불량배들이 몰려와서 롯의 집을 에워싸고
길손들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길손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추행하기 위해 몰려 온 것이다.
소돔은 남색의 악풍으로 유명했는데
그들은 남색 하는 불량배들이었다.
그들은 “오늘 저녁에 네게 온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과 재미를 좀 봐야겠다” 하고
문 밖에서 외쳐댔다.
롯은 밖으로 나가 문을 걸어 잠그고
불량배들에게 사정했다. (19:6-9)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너는 물러나라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네놈이 떠돌이 주제에)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롯이 손님들을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라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자기의 귀한 혼전의 딸들을
불량배들에게 내주겠다고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서 유대인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자기 몸까지도 바치는
제사 사상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으며
사사 입다는 하나님과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자기 외동딸을 제물로 바친 일이 그 예이다(사사기 11장).
불량배들은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했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천사들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당기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몰려 온 사람들에게 강한 빛을 비춰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눈이 부셔
문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불량배들이 돌아가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천사들이 롯에게 말했다. (19:12-13)
“이 외에 (네 식구 말고도)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실 테니
속히 떠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천사들이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구출하려고 노력했음은
다음의 구절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19:29).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12:3)
롯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나 후에 롯은 모압족과 암몬족의 조상이 되었고
이 두 족속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동이 트자 천사가 롯에게 말했다. (19:15)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은 롯, 아내, 딸들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인도하였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19:17-22)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이 성은 소알(Zoar)로 알려졌다.
롯이 그 성에 들어가자 하나님은 손수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고
성들과 들과 성에 거하는 백성들과 땅에서 난 것들을
모두 태워버리셨다.
롯의 아내는 자신의 집과 재물이 불타는 것이 아까워서
천사들의 경고를 어기고 뒤돌아보았다가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섰던
언덕에서 바라보니 소돔과 고모라와 그 분지 일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마치 아궁이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3,900년 전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살기 좋은 땅이었지만
실제로 화산과 지진으로 지각변동이 생겨서
일시에 도시가 전멸하고 땅이 푹 꺼져 내려앉아서
염해(사해)가 생겼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은 사해를 방문할 때
군데군데 목화송이 같은 소금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면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지중해 해면보다 450m나 얕다.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고,
요단강물이 흘러와서 고이더라도 평균 40도의 온도로 인해
곧 말라붙기 때문에 호수물이 너무 짜서
물고기가 살지 못할 정도이며 염분이 너무 많아
몸이 저절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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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족과 암몬족의 유래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아내를 두고
두 딸과 함께 소알로 피신한 롯은
그 고장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 무서워서
산으로 들어가 딸들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하루는 롯의 큰 딸이 동생에게 말했다. (19:31-34)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그날 밤 롯은 딸들이 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언니가 먼저 아버지와 동침했다.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 나갔는지도 몰랐다.
이튿날 언니가 동생에게 말했다.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씨를 받자)”
그날 밤에도 롯은 딸들이 준비한 술에 취했고
이번에는 동생이 아버지와 동침했다.
역시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 나갔는지 몰랐다.
이리하여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큰 딸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모압(Moab)이라 했는데
모압이란 “아버지로부터 얻은 From Father”이란 뜻이다.
모압의 후손이 오늘날 모압족(Moabites)이다.
둘째 딸도 아들을 낳고
이름을 벤암미(Ben-ammi)라고 했는데
“나의 혈족의 아들 Son of My Kinsman”이란 뜻이다.
벤암미의 후손이 오늘날 암몬족(Ammonites)이다.
여러분은 롯의 딸들의 부도덕한 행위에 당혹해 할 것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은
자기의 종족보존과 혼혈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이런 방법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일부 신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유대인들이 늘 미워하는 모압과 암몬족을
조롱하기 위해서 꾸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멋진 설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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