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1년11월19일 QT - 헌신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1. 11. 19. 10:46



헌신


헌신은 부르심에 응답하여 몸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몸을 바친다’는 것은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섬김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이다.


-양창삼 목사의 ‘하나님의 비전에 이끌리는 삶’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내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과 의지, 내 꿈과 계획에 맞추어
하나님께 반쪽 헌신을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 고백하지만
정작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진 않습니까?

지금 새로운 결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그 고백이 실로 진정한 나의 고백이 되길 기도합니다.



악인과 의인 - 전 8:11~17
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의외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악인의 형통함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회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명색이 목사임에도 남이 잘 되는 게 때로 시험이 될 때가 있습니다. 괜히 하나님에 대해 섭섭한 생각, 서운한 감이 들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 조차도 거기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과정보다도 최후의 승리를 믿기에 그런 것으로 상심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잘 단속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악한 자들에게도 <반짝 성공>을 베푸십니다.

담대한 악인 형통치 못한 의인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이 잘 될 것이요>(11-12절).
악인은 뻔뻔합니다. 그런 철면피한 모습이 때로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비치고 또 그런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기가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악인의 오만함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삶을 간섭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왜 하나님이 남의 자식을 붙잡고 배 놔라 감 놔라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잠시 잠깐 형통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은 하나님이 일일이 간섭하시고 징계하시기 때문에 그만큼 형통치 못해 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삶을 결코 그냥 방치하시지 않습니다. 강제하시고 때로 제재하십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축복이고 은혜인 것은 우리가 고아나 사생자가 아니라는 증거기 때문입니다.

벌 받는 의인 상 받는 악인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14절).
부조리한 이 세상의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고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자도 <헛되다>는 말을 앞뒤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허무한 노릇입니까? 상 받아야 할 의인이 도리어 벌을 받고, 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이 상을 받는 현실, 그래서 허무하지만 또 그래서 연단되고 더욱 주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 분노하지 마십시오.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그 배후에서 마귀가 조종하고 있는 한 이 세상은 앞으로도 그런 모순과 아픔이 계속될 것이며 악인의 득세는 여전할 것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악인이 흥해도 그 현실을 고통 없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승리, 종말론적인 이김은 내게 있다고 믿기에 그만큼 관대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행사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17절).
그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겠습니까? 그 누가 감히 하나님의 무궁한 세계를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겸손입니다. 나의 한계와 무지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현실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악인은 탐욕 때문에 절대 감사할 줄을 모르지만 의인은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앞당겨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인들에게 더욱 큰 축복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내일은 교회력에 의한 올 추수감사절입니다. 기쁨과 보람이 풍성한 감사의 축제가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