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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께서는 한번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편 기자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감정으로, 눈에 보이는 상황을 보면 내게 주신 구원이 흔들리는 것만 같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위에 굳게 서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어두운 마음이 변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의 교리묵상 ‘영적전투’ 중에서-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우신 듯 내게 더 이상 응답치 않는다고 여겨질 때,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 곁을 떠나 방황할 때,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을 외면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마십시오. 그 분의 십자가 사랑을 외면치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조차 나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의 끈에 매이는 삶, 그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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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처세 - 전 8:1~10 |
1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2 내가 권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3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거히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5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6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8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므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져낼 수도 없느니라 9 내가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마음을 다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으며 10 내가 본즉 악인은 장사지낸 바 되어 무덤에 들어갔고 선을 행한 자는 거룩한 곳에서 떠나 성읍 사람의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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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세상살이에서 부딪치는 온갖 유혹과 죄악을 막아주는 강력한 해독제로 지혜를 얻으라고 권합니다. 지혜가 바로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또 늘 밝은 표정으로 세상을 살게 한다며 현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와 처신을 가르칩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1절).
왕의 명령을 지키라 <내가 권하노라 왕의 멍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왕 앞에서 물러나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2-3절). 신약 로마서 13:1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게 반드시 선한 권세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역사적으로 말하면 선한 권세보다도 오히려 악한 권세가 더 많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명령을 지키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구약의 봉건시대나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하던 신약의 로마제국시대 하의 개인이란 그야말로 개만도, 파리목숨만도 못했습니다. 따라서 악한 권세라 하여 왕이나 황제를 성토하거나 대적하고서도 살아남을 목숨은 없었습니다. 주님이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며 끝까지 무저항 비폭력을 관철하신 것도 바로 그런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자나 바울이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친 것도 다 그런 맥락의 권면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비겁이나 타협 혹은 방조가 아니라 더 큰 사명과 더 복된 과제를 위해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주님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가 불의한 권세들과 실력으로 맞서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과연 복음의 세계화가 가능했겠으며 기독교가 오늘까지 살아남았을까요? 현자는 무력한 개인의 무모한 희생을 막고 또 이상주의나 영웅주의적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왕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때를 판단하라 <…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5-6절). 지혜로운 자는 무엇보다도 <시기와 때>에 예민한 예지자요 예견자입니다. 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를 두고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눅 10:42)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일하기보다 마리아처럼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이 아니라 마리아의 시기와 때에 대한 혜안을 평가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생애 최후로 예루살렘에 상경하시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다는 주님의 그 방문을 그저 일상적인 만남으로 알고 대접하는 일에만 골몰했던 것이고, 마리아는 이미 그 만남이 비상한 해후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주님 곁을 지키며 말씀 듣는 일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때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아처럼 그 영성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지 말라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9절). 남을 해코지하여 힘들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면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셔서 결국은 그 자신이 그 모든 해악을 다 당케 하십니다. 마치 자연을 학대하고 파괴한 결과 이제는 무서운 자연의 보복에 직면한 21C 인류의 운명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로 빚어지는 온갖 자연재해와 환경재앙 때문에 지금 인류는 유사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게 다 우연이 아니라 그동안 인류가 자연을 무자비하게 해친 값비싼 대가입니다. 이웃을 해치지 마십시오. 힘 없는 사람을 함부로 범하지 마십시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호리도 남김 없이 그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응분의 책임을 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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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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