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보다 놀라운 일본의 침착한 대응
강력한 대지진과 쓰나미(津波), 원전(原電) 방사능 누출사고까지 겹친
일본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비를 맞고 있다. 인적·물적 피해는
천문학적이어서 따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의 눈은 일본에 쏠려있다. 한국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일본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화끈한 이웃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일본은 대참사를 당한 혼란 속에서도 질서의식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주유소, 공중 화장실, 수퍼마켓
에서도 어김없이 줄을 선다. 라면이나 주먹밥도 먹을 만큼만 구입한다.
피해를 본 가족을 찾아 고향으로 가는 차량행렬에 과속과 끼어들기가
없다고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재앙을 맞고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에 전 세계가 오히려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FT)는 "인류정신의 진화를 보여줬다"고 했고, 뉴욕타임스(NYT)는 "극단적
일 정도로 침착하다"고 했다.
일본의 매스컴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보도할 뿐 전혀 흥분하지 않는다.
경보 발령이 늦었다느니 기상청이 예측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없다. 피해
실태와 구조활동을 상세하게 보도한다. 일본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시신(屍身)이나 유족들의 통곡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일본의 NHK보다 한국의 방송사가 오히려 더 흥분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는 사건이나 사고가 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우선
매스컴에서 흥분하고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울부짖는 모습을 비추며 국민을 흥분시킨다.
사태를 차분히 파악해서 풀어가려고 하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피해를 부풀리고 남의 탓하고 관계자 문책을 들고 나오고 정부를 질타한다.
한국사회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돼있다. 매스컴 탓이 크다. 흥분부터
하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가 없다. 결코 일본을 추켜세우자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배우고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고자 해서 하는 이야기다.
상처에 소금뿌리는 일은 삼가야한다. 얽히고설킨 감정을 접고 남이 아플
때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뻗는 게 사람의 도리다. MBC는 일본의 지진으로
일본에 불던 한류(韓流) 열풍에 타격이 우려된다는 한심한 보도를 했다.
어느 목사는 "일본지진은 하나님의 경고"라는 망발까지 했다.
지난 해 아이티의 지진사태에서 약탈과 폭력이 난무한 걸 우리는 목격했다.
후진국이어서 그랬을까. 선진국이라는 미국은 어땠는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무장 폭도로 돌변하고,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해서 무법상태가 지속됐다. 그래서 일본이 돋보이는 것이다.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겪고서도 스스로 일어섰다. 이번에도 대재앙
의 복구를 통해 일본경제는 성장 동력을 찾을 것이다. 일본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 엔화가 예상 밖으로 강세를 띠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엔화환율이 앞으로 어떤 곡선을 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재해 복구 등으로
일본은 해외에 투자한 돈을 거둬들일 것이고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경우 달러 등 외화를 팔아 엔화로 바꿔야 하므로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
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베지진 때에도 3개월 간 엔화가치는 20% 정도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
(WSJ)은 엔화 강세가 계속 이어지기 힘들다고 분석한다.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일본은 세계 2위의 석유 수입국이다. 정유시설 파괴 등으로
일본의 원유수요가 감소되면 국제 유가는 하락압력 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은 대단하다. 어느 나라든 진정한 선진국을 지향한다면
이런 점을 배워야한다.
<류동길/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코리아타운데일리.201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