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비슷한 시기 '48시간' 경고는 국제사회에서 또 있었다. 16일 범(汎)유럽 뉴스채널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아들 세이프 알-이슬람은 "군사작전이 끝나간다. 48시간 내에 모든 것이 끝난다"고 장담했다. 지난달 15일 시작해, 한때 수도 트리폴리를 포위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리비아의 민주화 항쟁이 이제 동부의 제2도시 벵가지만 남겨놓고 사실상 다 진압됐음을 자신하는 발언이었다.
두 사태는 내용이나 주변국에 미치는 파문 등에서 서로 비교될 성질은 아니다. 그러나 수만 명의 희생자가 예상되는 일본 대재난 못지않게, 리비아에선 반(反)카다피 진영과 카다피 친위부대의 한 달여 충돌 속에서 매일 수백~100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됐다. 둘 다 이제는 '재앙적 참사'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구조인력과 구호물자 투입 등 국제사회의 관심은 지난 한 주일 일본에 고정됐고, "정부군의 공습을 막게 비행금지 구역(no-fly zone)을 설정해 달라"는 리비아 반군 세력의 계속된 요청은 지난 한 달간 무시됐다. 이달 초 "카다피는 물러나야 한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초(超)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공허한 희망일 뿐이었다.
중동 사태에 미온적인 중국과 러시아는 그렇다 치고,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이 머뭇거린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으로선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 다른 이슬람 국가에 무력 개입하는 것은 악몽(惡夢)일 수 있다. 90%가 사막이라지만, 리비아의 영토는 한반도의 8배(175만 ㎢)로 세계 17위다. 주요 도시가 몰린 해안선 길이만 1770㎞나 된다. 과거 미·영, 나토군이 인종학살을 막으려고 이라크와 보스니아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해 집행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래서 아랍권인 걸프국가협의회(GCC) 6개국(7일)과 22개국 아랍연맹(12일)이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영국과 프랑스가 나서도 독일 등 EU의 다른 나라들과 미국은 꿈쩍도 안 했다. 지난주 초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전투 헬기를 막는 데는 별 효과도 없는 비행금지 설정보다는 구호활동이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 기조가 갑자기 바뀌어 결국 17일 저녁(뉴욕 시각) 유엔 안보리는 미·영·프랑스 주도로 리비아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국제사회가 민간인 보호를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공습 가능)를 취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주요국들이 애초 비행금지 구역 설정에 반대했던 근거들이 바뀐 것은 전혀 없다. 질질 끄는 동안 민간인 희생자만 더 늘어났고, 카다피 친위부대의 예견되는 대학살에 생각을 바꾼 것뿐이다.
"이미 늦었다"는 비판도 많지만, 뒤늦게라도 국제사회가 카다피의 만행 저지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세계는 G20이 아니라, 이제 G0(zero)의 시대"라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한 얘기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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