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학봉 도쿄 특파원
시민들은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하고 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3·11대지진 이후 규모 5 이상의 여진(餘震)만 400회가 넘게 발생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TV에서는 지진을 알리는 긴급방송이 나오고 몸이 흔들린다. '이러다 건물이 붕괴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날의 악몽(惡夢)도 되살아난다. 방사성 물질 오염 채소에다 물고기까지 등장하면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도 스멀거린다. 그래도 지진·쓰나미·원전사고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일본인들은 놀라울 정도의 질서로 극복하고 있다.
서구언론들이 '인류정신의 진화'라고까지 칭찬하는 일본 시민정신의 요체는 뭘까. 기자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빵점이다. 재해현장에 "배고프고 춥다"는 탄식이 쏟아져도 안전점검을 한다며 구호품 수송 차량조차 가로막는 꽉 막힌 행정, 대형유조선 하나를 준비하지 못해 방사선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무모함, 구호차량마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휘발유가 부족한데도 정부비축분을 풀지 않는 융통성 부족,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 장관들끼리 서로 항의하는 부처이기주의….
이런 한심한 행태에 일본인들도 물론 분노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정부 발표를 믿고 따른다. 정부가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하자 시민들이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의 채소와 물고기 먹기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운동으로 대정전의 위기도 극복했다. 인터넷에서는 무능의 상징이 될 정도로 난타를 당하고 있지만, 간 나오토 총리는 지진 발생 이후 지지율이 오히려 10% 올랐다. 외국인들은 일본 정부의 발표 자체를 불신한다. 사무실을 오사카로 임시이전하거나 아예 홍콩으로 옮긴 외국기업도 있다. 일본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워 수억원의 금전 손실을 감수해가며 귀국해버린 외국인 프로야구 선수가 있을 정도이다.
일본 국민들도 외국인만큼은 아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정부를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는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국민을 속이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