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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의 열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꽉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편안하게 풀어놓고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대로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고 나서 그분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것을 우리가 기꺼이 돌려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로렌 커닝햄. 제니스 로저스의 ‘네 신을 벗으라’ 중에서-
주의 일에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을 두고 때론 어리석은 행위라는 질타를 받거나 스스로 드리는 것이 아까워 슬그머니 발을 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축복의 통로를 막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헌신의 결과가 아닌 드리는 마음, 그 자체에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물질과 헌신을 백배의 풍성한 열매로 연약한 세상을 돌보는데 베푸시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도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다해 주께 헌신할 때 백배의 열매와 은혜로 돌려주시는 하나님. 주의 아름다운 계획 가운데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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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아침 - 시편 130:1-8 |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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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에게 아침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파수꾼의 아침에 대한 기다림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는 군대에서 경계근무를 서 본 사람이나 병실에 누워 밤새 고통하며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아마 조금은 이해를 하실 겁니다. 시인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6절)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지금 파수꾼보다 더 긴박하게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이유, 뭘까요?
깊은 곳에서 부르짖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절).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라고 한 3절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시인이 말한 <깊은 곳>이란 곧 <죄악>의 수렁을 뜻하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4절)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깊은 죄악 속에 빠졌으니 <사유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파수꾼보다 더 처절하게 주님을 기다리며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2절).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8절).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5절). 그 분의 <용서한다>는 말씀 한 마디면 나의 모든 죄악이 사해집니다. 왜냐하면 주님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7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를 기억하십니까? 그도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속 바다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욘2:3,5). 그러나 그는 그 깊은 심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혹 시인처럼, 요나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셨습니까? 주께 부르짖으십시오.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군의 심정으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풍성한 속량이 주께 있나이다 <속량>이란 값을 대신 지불하여 종을 자유인이 되게 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속량>의 명수십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되 무조건 사하시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르신 다음 자유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속량>이며,그 대속의 희생양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대신 벌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의 저주를 대신 하신 겁니다. 이렇듯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량>은 항상 주님의 대속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인자하심이 풍성한 속량>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속량>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주님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가 지불된 것입니다. 새해에도 깊은 곳에서 부르짖으며, 말씀을 바라십시오. 그래서 풍성한 <속량>의 은혜를 누리시되 주님의 십자가를 놓치지 마시고 늘 감사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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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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