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장 1, 2절)
다윗이 라마 나욧 공동체에 머물렀던 것은 사무엘이 죽을 때 까지였다. 다윗을 제거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하던 사울 왕이었지만 다윗이 사무엘의 공동체에 머무는 동안에는 해칠 수 없었다. 사무엘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워낙 두터웠던지라 사무엘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다윗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다만 군대를 파견하여 라마 나욧을 감시하며 다윗이 사무엘 휘하에서 벗어날 때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때에 사무엘이 숨을 거두었다. 다윗은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기 전에 틈을 타서 라마 나욧을 벗어나 피신하였다. 그 후 다윗은 아둘람 굴을 찾아들어 거기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윗이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윗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결의를 가진 동지들이 모인 것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반체제 인사들이 모여 들었다.
재능은 있고 뜻은 있으나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사람들, 한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사백 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적 결속을 하게 되었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훗날 다윗 왕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아둘람 굴에서 다윗이 사백 명의 무리를 공동체 정신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이 라마 나욧에서 체득한 공동체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