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1년02월19일 QT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1. 2. 19. 14:37



백배의 열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꽉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편안하게 풀어놓고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대로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고 나서
그분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것을
우리가 기꺼이 돌려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로렌 커닝햄. 제니스 로저스의
‘네 신을 벗으라’ 중에서-

주의 일에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을 두고
때론 어리석은 행위라는 질타를 받거나
스스로 드리는 것이 아까워 슬그머니 발을 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축복의 통로를 막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헌신의 결과가 아닌
드리는 마음, 그 자체에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물질과 헌신을 백배의 풍성한 열매로
연약한 세상을 돌보는데 베푸시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도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다해 주께 헌신할 때
백배의 열매와 은혜로 돌려주시는 하나님.
주의 아름다운 계획 가운데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파수꾼의 아침 - 시편 130:1-8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파수꾼에게 아침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파수꾼의 아침에 대한 기다림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는 군대에서 경계근무를 서 본 사람이나 병실에 누워 밤새 고통하며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아마 조금은 이해를 하실 겁니다. 시인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6절)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지금 파수꾼보다 더 긴박하게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이유, 뭘까요?

깊은 곳에서 부르짖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절).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라고 한 3절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시인이 말한 <깊은 곳>이란 곧 <죄악>의 수렁을 뜻하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4절)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깊은 죄악 속에 빠졌으니 <사유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파수꾼보다 더 처절하게 주님을 기다리며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2절).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8절).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5절).
그 분의 <용서한다>는 말씀 한 마디면 나의 모든 죄악이 사해집니다. 왜냐하면 주님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7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를 기억하십니까? 그도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속 바다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욘2:3,5).
그러나 그는 그 깊은 심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혹 시인처럼, 요나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셨습니까? 주께 부르짖으십시오.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군의 심정으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풍성한 속량이 주께 있나이다
<속량>이란 값을 대신 지불하여 종을 자유인이 되게 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속량>의 명수십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되 무조건 사하시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르신 다음 자유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속량>이며,그 대속의 희생양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대신 벌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의 저주를 대신 하신 겁니다. 이렇듯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량>은 항상 주님의 대속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인자하심이 풍성한 속량>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속량>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주님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가 지불된 것입니다.
새해에도 깊은 곳에서 부르짖으며, 말씀을 바라십시오.
그래서 풍성한 <속량>의 은혜를 누리시되 주님의 십자가를 놓치지 마시고 늘 감사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