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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빚더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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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 미국 의 흑선(黑船)에 의해 강제로 항구를 연 것은 1853년 7월이었다. 나가사키 에 있던 네덜란드 무역사무소를 통해 미 함대가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은 그보다 3년 전인 1850년. 페리 제독이 일본으로 출항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도 1년 전인 1852년이었다. 그러나 1853년 7월 8일 흑선이 도쿄 인근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 일본 정부가 갖고 있던 무기는 대포 6문, 포탄 15발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지만, 당시 일본인에겐 엄청난 좌절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저술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막부말사(원제 幕末史)'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일어나면 곤란한 일은 일어날 리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일본인의 악폐 아닌가."
태평양전쟁 개전 직전인 1939년 9월 일본군부는 '전쟁경제연구반'을 만들었다. 당시 일본 내 최고의 경제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됐다. 미국과 개전할 경우 얼마만큼 버틸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게 임무. 1년6개월에 걸친 연구의 결론은 '전쟁불가'였다. "일본의 경제력을 1로 할 때 미국의 경제력은 20, 2년간은 비축물자로 버틸 수 있지만 그 이후는 도저히…." 그러나 이 연구결과를 군부는 덮었고, 이 사실이 공개된 것은 50년 가까이 지난 1988년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연초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았다"고 통탄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아 그렇구나'가 아니었다. 어디 이런 사례가 일본뿐일까. 어쩌면 이런 사례로 가득 차 있는 게 한국의 근·현대사다. 오히려 일본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다고 지금이라도 보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 에선 요즘 '일본 낮춰 보기'가 한창이다. GDP의 200%에 다다른 국채(國債)에 장기 디플레, 한계에 다다른 복지재정,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정치리더십, 해외근무조차 기피하는 젊은이들…. 낮춰 봐도 될 만한 구석이 널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27일엔 미 신용평가회사 S&P가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뒷심이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일본의 정부·기업·개인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에서 반대의 경우를 뺀 순자산은 2009년 말 현재 266조엔이다. 19년째 1위이고, 2위인 독일 의 두 배를 넘는다. 여기서 일본에 유입되는 현금만 1년에 12조엔가량 된다. 1000조엔에 근접하고 있는 국채도 95%를 일본 금융기관과 일본인이 갖고 있어 다른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1조달러가 넘는 달러보유고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리먼 쇼크 직후인 2008년 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사정사정해서 130억달러 정도였던 통화 스와프(필요할 때 융통할 수 있는 돈) 규모를 300억달러로 확대했다. 불과 2년 전이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외면하거나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습일 수도 있다.
< 출처 : 조선일보 신정록 도쿄특파원 jrsh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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