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균 정치부장
대낮에 보란 듯이 연평도 포격 美 과학자 불러 核 위기 선포
北, 민얼굴로 거침없는 도발 南, 흉악범과 맞설 각오 섰나
북이 연평도에 해안포를 쏜 것은 전쟁 행위다. 연평도 중심가에 해당하는 면사무소 주변지역에 수십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민간인 살상(殺傷)을 노렸거나 민간인 살상도 무릅쓴 무력공세다. 6·25 전쟁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북은 한반도 시계를 6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일까. 1953년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한반도를 전시(戰時)로 몰아가려는 것일까.북은 이달 초 방북한 미국 과학자에게 우라늄 농축용 원심 분리기를 공개했다. "원심 분리기 2000개를 갖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우라늄탄을 만들 수 있는 원심 분리기 제조는 북이 그동안 국제사회와 맺어온 핵(核)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북은 이제 성가신 가면(假面)을 벗어버리기로 한 듯하다. 남(南)을 향해, 국제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도발행위를 하고 있다.
북은 지난 3월 26일 야음(夜陰)을 틈타 서해안 바다로 침투해 천안함에 어뢰를 쐈다. 북은 이번엔 백주(白晝)에 육상을 향해 대포를 쐈다. 천안함 때는 "남(南)의 자작극"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연평도 포격은 두 차례에 걸쳐 과시하듯 이뤄졌다.
1·2차 북핵 위기는 미국이 북이 숨겨둔 핵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불거졌다. 이번 3차 위기는 북이 스스로 자신의 핵시설을 공개함으로써 시동이 걸리고 있다. 북은 예전엔 자신들의 비핵화(非核化) 의지는 확고하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북은 이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비핵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좌파(左派)들의 주장처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이 포악해진 것일까. 햇볕 정권이 재창출됐다면 북은 한반도 평화의 궤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북한에서 군사과학분야 고위직을 지낸 탈북자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제작에 착수한 것은 2000년 초였다"고 증언한다. 북은 이 무렵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 제조 설계도를 입수해 원자력 총국의 지휘 아래 과학원 공학연구소 등 과학자들을 총동원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2000년 초는 남북 특사들이 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하던 시점이다.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과 북측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3월 17일 상하이, 22일 베이징, 4월 8일 베이징 등 세 차례 중국에서 접촉했다. 4월 10일 남북은 동시에 6월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북은 대화 일꾼을 앞세워 평화 공세를 펴면서, 뒤편에선 과학 일꾼들에게 새 흉기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북이 이후 우라늄 농축에 성공한 시기는 2007년 말 정도였을 것이라고 우리측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2007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 합의가 이뤄졌고, 북은 그 합의 정신에 따라 2008년 6월 전 세계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 쇼를 벌였다. "영변 원자로를 폐기처분키로 결정한 것은 그것을 대체할 우라늄탄 개발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갖게 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2007년 10월 3·4일 평양에선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노력한다'고 돼 있다. 이런 합의문을 쓰고 있을 때 북한 과학자들은 우라늄 농축 성공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북의 우라늄탄 개발은 김대중·김정일 1차 정상회담 무렵부터 시작됐으며, 노무현·김정일 2차 정상회담 무렵에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진보 좌파가 15년째 정권을 이어갔다면 북(北)은 은닉과 기동이 용이한 우라늄탄 개발 사실을 숨긴 채 남측으로부터 단물을 계속 빨아 먹고 있었을 것이다. 안주머니 속에 우라늄탄이라는 흉기를 감춘 채 미국 인공위성에 노출되는 플루토늄탄 제조시설은 동결해 놓고 거짓 평화공세를 계속해 나갔을 것이다. 이명박-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 정권의 진실을 앞당겨 드러내게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민얼굴의 북을 마주하고 있다. 평화의 가면을 벗어던진 북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 정체가 드러난 흉악범과 맞설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