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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사형수였던 장군 [ 10 ]

鶴山 徐 仁 2009. 8. 4. 09:31

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10 ]

 

 

 

강 앞에서 멈춘 진격

 

바그라티온 작전이 종료 된 1944년 8월 소련은 그들의 영토에서 독일군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드디어 해방을 이루었고 이제부터는 독일로 향한 진정한 반격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로코소프스키가 주장한 의견에 따라 이루어진 공격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자 소련에서 그의 명망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고 원수로 승진합니다.

 

[ 전공을 세운 로코소프스키는 원수로 승진합니다 ]

 

로코소프스키의 군대는 러시아는 물론 해방시킨 벨로루시에서도 강하고 용감하며 주민들에게 매우 친절한 군대로 인식되었을 만큼 군기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군대를 이끌고 그가 소련군 중 제일 먼저 폴란드와 소련국경인 비스툴라 ( Vistula ) 강에 도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부터 그의 경력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 그가 지휘한 부대는 군기가 확립된 소련 최고의 군대였습니다 ]

 

소련군이 폴란드 근처까지 밀려들어오자 폴란드에서 나찌를 몰아내고 해방정부를 수립하려는 민중봉기가 일어납니다.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 ( Warsaw Uprising ) 인데 문제는 이를 뒤에서 후원한 세력이 런던에 있던 폴란드자유망명정부였습니다.  이들이 폴란드 내의 비밀무장결사를 조종하여 봉기를 일으킨 이유는 소련군 진입 전에 스스로 독일군을 몰아내어 폴란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 용감한 폴란드 인민들은 탈취한 무기로 봉기를 벌였습니다 ]

 

폴란드 인민들의 용기 있는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 소련이 압력을 가하면 독일은 쉽게 폴란드에서 물러날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봉기의 속사정을 소련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폴란드를 공산화시켜 그들의 위성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굳이 감추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스탈린은 로코소프스키에게 봉기를 도와주지 말고 국경 밖에서 군대를 대기시켜 놓고 수수방관 할 것을 명령 하였습니다.

 

[ 스탈린은 폴란드인들을 도와주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

 

스탈린은 독일이 비록 많이 약해졌지만 소련이 도와주지 않으면 폴란드 혼자만의 힘으로 봉기가 성공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때문에 둘이 실컷 싸우도록 나둔 후 폴란드 봉기세력이 무력화되고 독일점령군도 약해졌을 때 공격하겠다는 구상을 하였고 따라서 천천히 바르샤바를 점령하여 공산화시키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 폴란드인들은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였습니다 ]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소련군 장성이자 폴란드인이었던 로코소프스키 개인에게는 엄청난 갈등이었습니다.  조국 폴란드를 독일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킨 영웅이 되고자하였던 로코소프스키는 그가 지휘하는 세계 최강의 무력을 움직이지 못한 체 바로 강 동쪽에 머물고만 있었고, 강 서쪽에서 용감하게 봉기한 조국의 인민들이 나찌 독일에게 하나하나 소탕되어 학살되고 있다는 소식만을 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나찌의 잔인한 반격으로 봉기는 실패하였습니다 ]

 

결국 1944년 8월 1일 용감하게 봉기하여 조국을 침략자로부터 되찾고자하였던 폴란드 인민들의 노력은 30만의 사망자와 도시의 완전한 파괴라는 결말만 내고 두 달 만에 눈물겨운 막을 내리고 말았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된 1945년 1월이 되어서야 폴란드는 애초에 독일과 함께 그들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던 소련이라는 또 다른 외세에 의해 해방을 당 (?) 하였습니다.

 

[ 소련은 폐허로 변한 도시에 진입하여 폴란드를 점령하였습니다 ]

 

그런데 폴란드 역사에서 너무나 아쉬웠던 이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로코소프스키가 명확히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 한 것은 없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스탈린과 언쟁을 벌일 정도로 로코소프스키의 입지가 높아졌음에도 정치적인 위상으로는 아직도 스탈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태도를 보였을 것입니다만,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전후 조국 폴란드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소련의 첩자로 매도되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 소련은 원수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

 

로코소프스키의 소련군은 1945년 1월 비스툴라강을 넘어 바르샤바를 점령함으로써 폴란드에서 독일의 세력을 몰아내었습니다.  내심으로는 조국 폴란드를 해방시킨 자라고 주장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막상 조국이 도움을 간절히 원하던 시점에서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였기 때문에 내놓고 생색을 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의 조국인 폴란드와 소련의 공적이었던 독일을 처단하는 마지막 임무가 남아있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