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9 ]
거침없는 복수전
벨로루시를 해방하고 폴란드를 거쳐서 독일로 진격할 임무를 부여받은 소련의 최정예군을 이끈 로코소프스키는 1944년이 되자 거침없는 진군을 개시하였습니다. 이때는 독일이 전황을 뒤집어 독소전의 주도권을 재반전 시킬 수 있는 시점은 아니었고 단지 그동안의 풍부한 전투경험을 밑천으로 사력을 다하여 간신히 소련의 진격속도를 조절하는 수준의 방어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 독일은 이제 전선을 근근이 방어하는 입장이었습니다 ]
이때 전쟁을 끝내기 위한 독일 본토로의 진격방법을 두고 소련의 최고지휘부내에서는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고갔습니다. 이미 독일군의 전력은 붕괴된 것과 같으니 소련군의 전력을 한곳으로 집중하여 최단 코스를 막고 있는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양단시킨 후 하루라도 빨리 독일로 진격을 하여야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스탈린이었습니다.
[ 스탈린은 전선 중앙을 돌파하여 조속히 독일로 진군하자고 주장합니다 ]
반면 현재 소련군이 아무리 우세하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의 결과를 볼 때 비록 많이 약화되었지만 독일군의 전투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므로 두 개 이상의 진격로를 통하여 독일의 주력을 외곽에서부터 대포위하여 섬멸함으로써 보다 신중하고 안전하게 진격하자는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바로 선봉장 로코소프스키가 이러한 의견의 대표적 주장자였습니다.
[ 반면 로코소프스키는 보다 안전한 진격을 주장합니다 ]
1944년 초가 되었을 때 자신을 무고하여 사형수로 만들어 강제수용소로 보낸 원한의 주인공이었던 스탈린에 대해서 피해자였던 로코소프스키는 군사전략을 놓고서는 격렬하게 논쟁 할 정도의 위치까지 어느덧 올라갔습니다. 그 만큼 소련군부내에서 로코소프스키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위치까지 오른 실력자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 이미 로코소프스키는 소련의 거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 左에서 右로 바실리에프스키, 로코소프스키, 스탈린) ]
비록 정치적으로는 절대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로코소프스키는 군사전략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스탈린이라 하더라도 양보 없는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이 인류사에 보기드믄 잔악한 악당이었지만 제2차 대전 직전 군부를 몰락시키고 전쟁 초기에 세세히 간섭하다가 엄청나게 고생하였던 경험을 잊지 않아 히틀러와는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장군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습니다.
[ 스탈린은 히틀러와 달리 장군들에게 재량권을 주었습니다
( 모스크바방어전 당시의 불가닌과 주코프 ) ]
결국 소련군은 로코소프스키의 의견을 채택하여 주요 공격 축선을 두 개로 설정하는 전략을 선택하였습니다. 첫째 축선은 벨로루시를 해방시키고 폴란드를 지나 東프로이센을 통하여 독일본토로 진격하는 노선이었는데 벨로루시전선군을 분리하여 창설한 제1, 2벨로루시전선군이 이를 담당하며 그 중에서도 주공은 로코소프스키가 이끄는 제1벨로루시전선군이었습니다.
[ 로코소프스키의 제1벨로루시전선군이 반격의 선봉에 섰습니다 ]
소련이 채택한 또 하나의 축선은 맹장 바투틴 ( Nikolai Vatutin 1901~1944 ) 이 이끌던 제1우크라이나전선군이 담당하였습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실레지엔을 통하여 베를린의 남측으로 파고드는 임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소련은 로코소프스키의 의견을 따라 순식간에 전 전선에서 독일군을 러시아 밖으로 몰아낼 작전을 구상하였고 이를 바그라티온 작전 ( Operation Bagration ) 으로 명명합니다.
[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은 전선 중앙을 붕괴시켰습니다 ]
준비를 마친 소련의 군대는 독소전이 일어난 지 정확히 3년이 되는 1944년 6월 22일 독일을 향한 진격을 개시하였고 로코소프스키는 벨로루시의 수도인 민스크 탈환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들을 맞이한 것이 독일 제9군이었습니다. 1941년 르체프와 1943년 쿠르스크에서 자웅을 겨루어 1승 1패를 주고받은 맞수였던 독일 제9군은 로코소프스키와 다시 혈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 독일군은 저항하였지만 차례 차례 붕괴되었습니다 ]
항상 그러하였듯이 히틀러는 민스크의 고수와 후퇴불가를 외쳤으나 결과는 대 포위된 제9군의 전멸이었습니다. 더불어 민스크에서 독일 제4군이 로코소프스키에게 포위되어 함께 그 생을 마감하였고 벨로루시를 독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진격을 개시한 바투틴은 독일 제1기갑군을 괴멸직전까지 몰아붙이며 우크라이나를 해방하고 폴란드로 진입할 준비를 합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軍事 資料 綜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형수였던 장군 [ 10 ] (0) | 2009.08.04 |
---|---|
[사설] 북핵 빌미 日 군사력 강화 우려한다(서울신문) (0) | 2009.08.01 |
[국방 블로그 쪽지 제13호] 국방부 장관이 말한다! (0) | 2009.07.25 |
아시아 최대 수송함~! 독도함을 움직이는 사람들 (0) | 2009.07.24 |
사형수였던 장군 [ 8 ] (0) | 2009.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