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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끝 ]

鶴山 徐 仁 2009. 7. 2. 18:21

august 의 軍史世界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끝 ]

 

 

 

위대했던 용사들의 전설

 

초전에 등장한 T-34가 국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놈에게 놀라 우리 선배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무조건 줄행랑 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적의 기습과 중무중한 전차의 등장으로 비록 초전에 당황하였지만 그렇다고 70년대 반공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달려드는 전차 앞에 대책 없이 뛰어 들어가 쓸데없이 총을 난사하는 무모한 방어도 물론 하지 않았습니다.

 

[ 70년대 반공영화인 ' 낙동강은 흐르는가 ' 광고 ( 출처-NHN옛날신문 ) ]

 

앞글에서도 누누이 설명 드렸습니다만 전쟁초기에 북한이 5 : 1 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였음에도 38선에서 서울까지 40Km를 오는데 3일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우리 선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였는지 알려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의 묘사와 달리 일부 방어선에서 국군은 나름대로 효과적인 대전차전술을 시도하여 많은 성과를 보았습니다.

 

 [ 국군은 방어에 T-34의 진격이 돈좌되고는 하였습니다 ]

 

청성부대가 방어한 춘천-홍천지구의 말고개전투에서 육탄 11용사는 T-34전차와 Su-76자주포 10대를 노획 및 파괴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는데 당시 작전을 지휘한 제19연대장 민병권 ( 閔丙權 1918~1992 ) 중령은 특공조를 작전 투입하기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철저히 교육 시켰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적 전차의 해치가 열려 있을 경우는 수류탄과 화염병을 그 속에 투입한다.  해치가 닫혀 있을 경우에는 81밀리 박격포탄을 궤도 밑에 밀어 넣어 기동력을 마비시킨다.  만일 박격포탄이 불발이 될 경우에는 연막으로 시계를 막아 해치의 개방을 강요하여 공격하고 그래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화염병을 엔진실 상판 덮개 위에 투척한다. "  절대로 임기응변적으로 나올 수 없는 명쾌한 대전차 공격법이었습니다.

 

[ 말고개전투에서 노획한 자주포 앞에 선 제19연대 육탄용사들 ]

 

또한 같은 사단 소속으로 춘천방어전에서 적전차를 쳐부수어 대한민국 최초의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던 대전차소대장 심일 ( 沈鎰 1923~1951 ) 소위 같은 경우는 해방전에 소련과 일본이 대치하던 만-몽국경지대에서 복무하였던 관계로 소련 전차를 상대로 특공작전을 수행하는 방법을 숙지하였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故 심일 소위 동상 ( 출처-NEWSIS ) ]

 

전진부대가 방어하던 문산지구전투에서 제1대대장 김진순 소령은 병력 18명을 선발하여 대전차 특공조 2개조를 급편한 후 81밀리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전선줄로 묶어 만든 급조폭탄을 안고 적 전차의 무한궤도 밑으로 뛰어 들어가 파괴시키는 전술을 구사하여 겁먹은 적 전차 5대의 진출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 최근 공개된 파괴된 T-34 의 인상적인 사진 ]

 

그 외 봉일천지구전투, 동두천지구전투, 포천축선 축석령전투, 의정부지구 백석천전투, 서울지구 수유리전투, 옹진지구전투 등에서 T-34를 공격하여 북괴의 진격을 저지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와 같이 비록 전군전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국군에게는  대전차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유능한 지휘관들이 있었습니다.

 

[ 국군이 북괴의 T-34에 무조건 당하기만 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 

 

전쟁 초기에 참전하였던 스미스전투단은 전사에 길이 남는 망신을 당하였고 ( 관련글 참조 ) 이후 투입된 미 24사단 본진이 북괴의 T-34와 교전하여 올렸던 전과와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이것은 결코 손색이 없는 기록들입니다.  이와 같은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우리선배들의 노력은 북한의 잘못된 전술과 맞물려 한반도의 적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 전쟁초기 대전지구에서 미 24사단에 의해 파괴된 T-34 ]

 

비록 초전에 등장한 T-34는 아군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지만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미 제1해병사단 장병들이 신형 3.5' RKT 로 T-34를 격파하는데 경쟁이 붙었을 정도로 그 전술적인 능력이 격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T-34에게 가장 크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압도적인 공군력이었습니다.  전사에는 약 7할 정도의 북괴군 전차가 공습으로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미 공군은 한마디로 지옥의 사신이었습니다.

 

[ 공습에 의해 피폭된 T-34 ]

 

전사에 북괴군 전차가 마지막으로 기록 된 것은 11월 4일 미 해병사단이 장진호로 진입하면서 진흥리일대에서 파괴하였다는 것인데 이로써 북괴의 T-34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북괴의 전차가 주역으로 언급된 것은 전쟁 개시 후 불과 한 달 정도의 기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달의 악몽으로 인하여 국군이 북괴의 기갑부대에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는 휴전 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었습니다.

 

[ 님들이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지만 지금까지 알아 본 것처럼 그리 자학 할 만큼의 문제는 아니었고 오히려 확대해석 된 감도 있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T-34에 밀려 후퇴는 하였지만 무서워서 도망만 다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처음 보는 T-34에 당황하지만 않고 적극 공략할 줄 알았던 우리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님들로 인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