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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4 ]

鶴山 徐 仁 2009. 7. 2. 18:16

august 의 軍史世界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4 ]

 

 

 

주역에서 사라진 T-34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사나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를 보면 발발 직후부터 서울 피탈까지의 긴박한 순간을 묘사할 때 북괴의 T-34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두꺼운 전사책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 T-34  관련한 내용을 찾아보기는 막상 힘듭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개전 초기에는 T-34가 전선의 주역으로 활약한 것은 맞지만 얼마가지 못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북괴의 T-34는 전쟁 한 달도 되지 않아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

 

제2차 대전 유럽전선에서 전쟁 내내 전차가 지상전의 왕자였던데 비한다면 한국전쟁에서 전차는 그렇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전차의 절대 수량이 급속히 소모되었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낙동강 공방전 당시 보유했던 전차가 모두 소진되어버리자 1950년 8월초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T-34를 긴급 원조 받아 제16, 제17땅크여단을 편성하여 전선에 투입하였고 UN군도 상당량의 전차를 전쟁기간 중 운용하였으며 이후 참전한 중공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중공군이 운용한 T-34 ]

 

그런데 이처럼 개전 초기의 모습과 달리 이후에 전차가 전선의 주인공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처음 설명하였던 바와 같이 미군고문단이나 소련군고문단의 의견처럼 한반도 지형이 전차가 전선의 주력으로 활약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반도가 종심이 짧기는 하지만 워낙 험준한 산악지형이 많고 도로가 거의 없어 전차가 기동하기에 극히 불리한 환경이라는 최초의 분석이 결국 옳다는 의미였습니다.

 

[ 이 정도 가도가 당시에 가장 큰 도로였을 만큼

한반도는 전차기동에 극히 불리하였습니다 ]

 

한국전쟁을 통틀어 최대의 전차전으로 기록 된 1950년 10월의 정주전투만 보더라도 동시에 포를 섞은 전차가 아군 10대, 북괴군 7대였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지형은 설령 많은 전차가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일거에 작전을 펼치기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도로망, 농경지정리 및 도심확장이 이루어진 최근보다 당시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였습니다.

 

당시 전차의 주 용도가 돌파 수단이 아닌 보병지원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운용한 M-26 전차 ) ]

 

그렇다면 바로 이전 글 [ 3 ] 에서 설명한 것처럼 애초부터 ' 한반도에서 집중화된 전차부대의 운영이 힘들다면 전차부대를 보병지원용으로 사용한 북한의 전술이 타당한 것은 아닌가 ? '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전쟁에서 속도전과 기동전은 기습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전쟁초기에나 발휘 할 수 있는 전술인데 북한은 이러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전선이 고착화 된 이후에는 아무리 집중화 된 기갑부대라도 전선을 돌파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다음의 진술을 살펴보겠습니다.

 

[ 공산군 역시 보병 근접지원 목적으로 전차를 운용하였습니다

( 전차의 도움을 받아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중공군 ) ]

 

" 적은 별로 큰 지장 없이 부산까지 진격을 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한강도하 후 수원까지 10일간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였고, 우방군은 이 기간 중 미 24사단을 증원할 수 있었다. 북괴군은 초전의 성공을 종심 깊은 돌파로 전과를 확대하지 못하여 결국 전략적 승리로 이끌어 가지 못하였다 " 더글라스 맥아더 ( Douglas MacArthur 1880~1964 )

 

 

" 북괴군이 8월 하순 급히 편성하여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였던 제16,17땅크여단을 사전에 편성하고,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시 독일군 기갑부대식으로 통합 편성하여 경부축선 등 어느 한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종심 깊은 돌파와 전과확대, 신속한 추격 등을 실시하였더라면, 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기 전에 부산까지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리델 하트 ( Basil Liddell Hart 1895~1970 )

 

 

북한은 결국 失期를 한 것입니다.  한반도가 전차운용에 극히 불리한 지형이지만 제한된 축선이라도 초전에 전차를 집중 운용하여 종심을 타격하는 송곳으로 이용하였다면 전쟁의 양상은 바뀌었을 것입니다.  낙동강에서 전선이 고착화된 이후에는 전차를 모아 한곳으로 집중시킨다 하더라도 이미 돌파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판단 착오는 대한민국이 살아 날 수 있게 된 결정적 실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