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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3 ]

鶴山 徐 仁 2009. 7. 2. 18:13

august 의 軍史世界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3 ]

 

 

 

북괴군의 실수

 

개전 초기 한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한 국군에 비해 242대의 T-34는 적은 양은 아니지만 오늘날 북괴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3,800여대의 전차에 비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따져 봐도 당시의 북괴군이 총 20여만으로 추산되므로 병력 대 전차 수로 900여대 정도가 있어야 오늘날과 비슷한 전력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막연히 많다고 생각하던 242대가 전쟁의 모든 것을 결정할 만큼의 양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 전쟁 초기 북괴의 전차보유량이 무조건 많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또한 북괴는 기갑부대를 운용하면서 몇 가지 실수를 하였는데 가장 큰 문제는 기갑부대를 전략적으로 운용치 못하고 전술적으로만 운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제2차 대전당시 집단화된 대규모의 전차부대를 선봉에 내세워 전선을 돌파하여 종심을 타격하였던 독일군과 달리 소련군은 기갑부대를 주로 보병의 지원수단으로 운용하였는데 북괴는 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였기 때문입니다. ( * 출처 - '육군 교육사령부' 발행 '한국전쟁사'의 '한국전시 북한군 기갑부대 운용 평가' )

 

[ 북괴는 소련의 교리에 의거 기갑부대를 운용하였습니다 ]

 

당시 북괴의 전차가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지만 한대도 없던 국군을 고려한다면 굳이 보병부대 지원용으로 전차를 분산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제105땅크여단도 독립부대로 편성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예하부대는 각각 사단별로 예배속 되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굳이 속전속결로 점령할 필요가 없었던 옹진반도 전투에도 북괴는 전차를 동원하였을 만큼 그 운용도 중구난방이었습니다.

 

[ 고립된 옹진반도 전투에서 3배의 병력을 동원하고도 북괴는 전차를 투입하였습니다 ]

 

제2차 대전 당시 對프랑스전도 그렇고 對소련전에서도 독일이 프랑스나 소련보다 많은 전차를 운용하지 않았고 다만 집중 운용하여 전격전의 신화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한국전쟁 초기 북괴가 소련이 아닌 독일의 교리를 따랐다면 오히려 독일을 능가하는 쾌속의 진격을 하였을지 모릅니다.  당시 국군이나 긴급 투입된 미군의 상황은 독소전 초기 소련군보다 열악한 상태여서 북괴군은 전격전의 신화를 창조한 독일군보다 오히려 여건이 좋았습니다.

 

[ 독일의 전격전 신화도 단지 전차가 많아서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

 

이렇게 분산 운용된 북괴의 기갑전력은 초기 진격에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켰습니다.  화력 및 장갑능력과 더불어 전차의 3대요소인 기동력이 보병의 진격속도와 보조를 맞추느라 많은 제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신 분들은 한번 정도 고개를 꺄우뚱 하실 것 입니다.  ' 전쟁 초기에 국군이 박살 나고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을 만큼 북한의 진격속도가 매서웠는데 무슨 소리냐 ' 하고 말입니다.

 

[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지만 쾌속진격의 증거로 보기는 힘듭니다 ]

 

이글 1편에서 설명 드렸다시피 전체전력 기준으로 북괴는 국군에 비해 개전 직전 5 : 1 정도의 전력우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38선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40Km에 불과한 서울까지 밀고 내려오는데 3일이나 걸렸다는 것이 쾌속의 진격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3일을 과연 짧은 시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  단순히 시간의 개념이 아닌 거리 대 시간 그리고 여기에 전투력을 대입하여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압도적 전력으로 40Km를 진격하는데 3일이 걸린 것이 과연 쾌속진격일까요 ? ]

 

지금 광화문에서 개성공단까지 가는데 차량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런 거리를 압도적인 전력으로 진격하여 오는데 3일이 걸렸다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국군이 무조건 참패만 당하며 일방적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북괴의 초기 전술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기갑부대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 북괴는 기갑부대 운용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

 

북괴는 전쟁초기에 아군을 붕괴시켰음에도 10일간 80Km만 돌파하였을 뿐이었고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가 최대 진격을 이루었던 8월 10일까지의 40일간 일일 평균 진격속도는 6Km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독일군이 독소전 초기에 보여준 1일 진격속도가 50Km 정도인 것과 중공군이 참전 초기에 하루에 20~30Km를 흔하게 진격하였던 예와 비교하더라도 얼마나 느린 속도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 북괴군은 속도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였습니다 ]

 

둔중한 전차가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뛰어다니는 보병보다는 당연히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차로 하여금 보병과 진격속도를 맞추도록 하였으니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북괴가 지리적으로 이동로가 극히 제한되었어도 제2차 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기갑부대를 한곳으로 집중운용 하여 종심 깊숙이 타격하여 휘 젖고 다니고 보병이 후속하여 진출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면 전쟁의 초기 모습은 엄청나게 달랐을 것입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