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장 특별대담 | |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늘로 59주년이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교훈이 점차 잊혀져 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마저 잊어 가고 있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다시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국방일보는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한 분석과 우리의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6·25전쟁의 영웅이자 산증인인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과 국내 최고의 국방·안보 싱크탱크인 한국국방연구원 김구섭 원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 김구섭 원장 = 올해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 발발 59주년을 맞았습니다.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미소 양 강대국의 이익이 충돌한 국제 대리전으로 냉전시대의 개막을 알린 첫 번째 전면전’이라고 합니다. 또 일부는 ‘민족 간 이념 갈등에 의한 내전’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그 객관성은 둘째치고라도 당사자가 아닌 그야말로 제3자의 입장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6·25를 당사자의 시각, 즉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전포고 없는 불법남침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인명피해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우리 역사에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렇듯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결심하고 지시한 자와 그 추종세력은 대한민국이 규정해야 할 일급전범인 것입니다. 59년이 흘렀지만 6·25의 교훈은 결코 빛바래지 않았으며, 오늘날 더 선명하게 와 닿습니다. ‘힘이 없는 나라가 부르짖는 평화가 얼마나 허망한지?’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말입니다. 여기서 힘이란 ‘포괄적인 안보 능력’을 말합니다. 튼튼한 국방력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외교능력과 국민들의 정신자세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6·25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기려야 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이 땅에서 피 흘려 싸운 유엔군의 희생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께서는 6·25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백선엽 장군 = 벌써 59주년이 됐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6·25전쟁은 우리나라가 겪은 국난으로서는 단군 이래 가장 큰 국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았습니다. 광복은 좋은데 두 갈래로 나뉘면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게 됐죠. 이때 북쪽은 소련의 원조로 20만 대군을 만들었고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 침공해 왔습니다. 당시 남쪽은 준비가 되지 못했죠. 미 군정하에서 국방경비대가 만들어졌지만 1948년 미 군정으로부터 독립한 지 2년도 못 돼 공격받았고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습니다. 다행히도 당시에 맥아더 장군을 위시해 미국 정부가 유엔에 호소했고 유엔의 깃발 아래 16개국이 참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낙동강에서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고 치열한 공방끝에 압록강·두만강까지 올라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금과 같은 군사분계선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약 40만 명이 참전해 4만 명이 전사하고 10만 명이 전상을 당했습니다. 이런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12번째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구섭 = 우리사회가 30여 년간 고도 압축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 풍요로운 가운데 살았고 6·25를 경험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 대치 상황이나 북한의 위협 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들이 소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선엽 = 우리는 54년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한미동맹을 지금껏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 한미동맹이 지난 60년 가까이 우리 안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맺은 지 2세대가 지나면서 젊은 세대들이 그 중요성에 대해 소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게 한 미국의 희생과 공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또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북한의 정책은 군사력을 확장하는 데 중심이 있습니다. 국민은 기아선상에 몰렸는데도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화생무기·특수전 부대 등을 계속해서 증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우리 국민들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북한 공산군이 우리의 주적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안보가 튼튼해야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안보를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김구섭 =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6·25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실리 추구를 위한 대미협상용이라고 분석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핵무기 보유를 강행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북한은 지난해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체제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체제안전을 위해 핵무기라는 안전보장수단을 확보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모두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등 대내외 정세가 공히 북한의 체제안전에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김정일은 후계자를 지명하고, 당·정·군에 대한 조직 개편, 대규모 권력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 옛 측근의 재기용, 주민 동원 및 내부통제 강화, 자극적인 대남선전활동 등을 통해 내부체제 결속과 충성심 고취를 위한 일련의 행동들을 연이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 등도 당장은 이러한 체제안전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공산화’라는 북한의 전략이 변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제고 자체 혁명기지 역량과 국제적 혁명지원 역량이 갖춰졌다고 판단하면 그 다음은 남한혁명역량강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 불 보듯 훤합니다. 핵과 미사일을 갖고 수시로 대한민국을 협박하는 것은 물론, 우리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백선엽 =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천만 유감입니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동북아 군비경쟁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핵무장도 우려됩니다. 김구섭 = 1950년대 미국의 핵무장에 대한 소련의 반응, 소련의 핵무장에 대한 영국·프랑스의 핵무장, 60년대 이래 미국을 두려워한 중국의 핵무장, 중국의 핵무장에 대한 인도의 핵무장, 그리고 인도의 핵무장에 대한 파키스탄의 핵무장 사례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학 이론인 ‘핵 억지력’에 의거해 핵으로부터 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이 핵무장이기 때문입니다. 핵은 핵으로만 억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동북아에서의 핵도미노에 의한 군비경쟁이 가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멸로 가는 길입니다. 백선엽 =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전법을 조금씩 바꾸는 것뿐입니다. 이제 북한은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김구섭 = 옳으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북한은 핵 보유전략으로 나갈 것입니다. 핵무기는 운반수단인 미사일에 탑재될 때 비로소 그 위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완성하고 또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를 소형화하고 그리고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야 북한의 핵 보유전략이 완성되는 것이죠. 따라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완성도를 높였고,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가까운 시일 내에 ICBM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나면 북한이 핵 보유전략에서 남은 것은 핵무기 소형화 문제뿐입니다. 이것을 위해 일부에서는 3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보는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핵실험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플루토늄을 제외한 핵무기, 즉 핵무기 기폭장치 폭발실험인 고폭실험을 계속하면서 핵무기 소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과거에도 그랬듯이 우리와의 긴장 조성이 대미 협상이나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대남 도발의 유혹도 클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우리 군이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한 북한이 쉽게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만 호전적인 성명 발표와 아울러 서해상에서 해안포 훈련을 한다든지 상륙작전 훈련을 하는 등 수사적인 위협과 무력시위를 통해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는 방법을 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선엽 = 사실 그동안 북한이 우리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수세적으로 대응했던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전면전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대응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 공세적·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도발이 일어났을 때에는 현장에서 확실하게 응징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구섭 = 맞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의 대외정책 결정에 있어 북한 핵실험이 우리 안보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며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이전보다 크게 위험해졌다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실제 위협받게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며, 북한이 보유한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은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안보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안보우선주의로 국정운영방향을 재정립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선 우리는 미국과 협력해 군사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확장된 억지력을 재확인한 점은 매우 중요한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르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 결국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토록 해야 합니다. 넷째,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특히 군사전략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즉,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우리의 질적 군사력 우세와 압도적인 경제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대북 군사전략도 정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가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백선엽 = 지금이 6·25전쟁 이후로 가장 위험한 시기이며, 향후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대고비라는 인식의 공감대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필요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보다 잘 수행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격언과 ‘역사는 준비된 강한자의 몫’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6·25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통일되고 번영된 조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된 강한 군대가 필요합니다. 김구섭 =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휴전선 155마일과 서해 북방한계선은 물론 지·해·공 곳곳에서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십시오. 백선엽 =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단 1인치도 피와 땀을 흘려서 얻은 것입니다. 이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68만 국군용사 여러분, 불철주야 고생하고 있는 데 대해 무한한 격려와 찬사를 보냅니다. 우리 주적은 영원히 북한 공산군입니다. 항상 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여러 가지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여러분들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복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건승과 무운장구를 빕니다.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1920년 11월 23일생 ▲평양사범학교 졸 ▲만주 봉천군관학교 졸 ▲국방경비대 입대 국군 중위 임관 (군번 54번) ▲1사단장 재직 시 6·25전쟁 발발 ▲1군단장 재직 시 휴전회담 한국대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한국군 최초 육군대장 진급 ▲1야전군 창설(초대 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재임명 ▲연합참모본부 의장 ▲성우회장 ▲대한민국 육군협회 회장 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장 ▲1947년 4월 20일생 ▲공사19기 ▲서울대 정치학과 졸 ▲서울대 정치학과 석·박사과정 졸 ▲공사 교수 ▲미 켄터키대 방문교수 ▲국가비상기획위원회 비상근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동국대·국가정보원정보대학원 강사 ▲한국국방연구원 정책기획연구부장·안보전략연구부장·부원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근자문위원 사진설명:6·25전쟁의 영웅이자 산증인인 백선엽(왼쪽) 예비역 육군대장과 한국국방연구원 김구섭 원장이 대담하고 있다. 정의훈 기자 2009.06.25 이석종기자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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