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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2 ]

鶴山 徐 仁 2009. 6. 20. 16:24

august 의 軍史世界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2 ]

 

 

 

美蘇 고문단이 생각한 한반도지형

 

앞글에서도 설명 드렸지만 한국전쟁 초기, 국군이 보유한 對전차 무기는 거의 전무하였다고 보아야 했습니다.  비록 2.75' RKT57 mm 포 등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 정도 화기로 북괴의 T-34를 잡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괴가 보유한 T-34/85형은 적어도 당대 최고의 전차로 분류하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 훌륭한 성능의 전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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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국군이 운용한 57mm 대전차포 ]

 

또한 국군장병 대부분은 태어나서 전차를 한 번도 구경하여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설령 적절한 대전차 무기가 있었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차의 전술 작전능력이나 구조적 약점도 모르는 상태에서 굉음을 내며 전진하는 적 전차와 마주쳤을 때의 느낌은 마치 제1차 대전 당시 솜전투에서 처음 등장한 탱크에 독일군이 당황하였던 것과 상당히 유사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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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전투에 처음 등장한 전차에 당황해하는 독일군 ]

 

그렇지만 북괴가 T-34를 아무도 모르게 꼼꼼 숨겨놓았다가 전쟁 때 갑자기 등장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군은 여러 차례의 38선 충돌사건과 비밀정보를 통해서 북괴군의 전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차가 T-34인 것도 인지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미 군사고문단 측에도 보고 하였는데 문제는 미군 측에서 이를 축소평가 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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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전 북괴가 T-34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미극동군사령부 정보처의 1949년 12월 27일 보고서에 의하면  ' 1949년 10월 14일 평양-원산간의 철도 상에 있는 한 역에서 미확인 인민군들의 이동이 목격되었고 이 열차에는 13대의 30톤급 T-34전차가 같이 실려 있었다 ' 라는 내용이 접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의 전쟁도발을 애써 부인하였기 때문인지 국군 정보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 내에서 수집한 정보를 믿으려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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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에서 북한으로 이동 중인 T-34 ]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1949년 10월, 북한의 T-34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3개 대대분의 M-26 전차 193대를 공급하여 줄 것을 미 군사고문단에게 요청하였으나 미군은 ' 한반도의 지형은 전차운용에 부적합하고 분석한 바에 따르면 소련이 북한군에게 공급 한 전차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며 대부분 구일본군이 사용했던 노획물자이니 그리 염려할 것이 없다 ' 고 답변하면서 지원을 거부하였습니다.  분명히 미국은 북괴의 전차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의의를 부여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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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34에 대항하기 위하여 공급을 요청하였던 M-26 ]

 

제2차 대전 당시 소련이 만들어낸 명품이었던 T-34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미국이 개전초기 오산, 천안, 대전 등지에서 부실한 대처로 북괴군의 전차에 엄청 혼난 것을 보면  북한의 T-34 보유에 대해서 한국 측이 제공한 정보를 묵살하였거나 아니면 의외로 T-34의 성능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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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선을 시찰하는 덜레스 미 국무성 고문 ]

 

그런데 북한에 T-34를 공급하여준 소련도 전차가 과연 북한에게 필요한 장비인지 한참 고민하였습니다.  소련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는 산악지대가 많아 평지는 총면적의 20% 수준인데 더구나 대부분의 평지도 하천, 계곡, 논 등이어서 전차의 기동에 극히 불리하다고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도 한반도 지형이 전차운용에 제한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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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소 모두 한반도의 지형이 전차운용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

 

최초 소련은 불가린계획에 의해 북한이 요구하였던 총 500대의 전차를 북한에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실사결과 이러한 부정적인 분석이 나오자 최종적으로 242대의 T-34를 지원하는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이를 집중하여 운용하기도 곤란하고 또한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라고 판단하여 공급한 전차를 각 전방 사단의 화력지원 수단으로 나뉘어 배치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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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를 돌파하는 북괴 전차부대 ]

 

때문에 독립 제대인 제105땅크여단이 편성되어있었지만 보병과의 협동작전을 주 임무로 하였고 훈련도 그렇게 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초기 북괴의 전차부대는 집중 되어 충격파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보병 화력지원부대로 분산되어 운용되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특별히 전차가 필요하지 않은 동부전선과 옹진반도까지 전차가 배치되었는데 이 점은 북괴의 치명적인 실수로 작용합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