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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1 ]

鶴山 徐 仁 2009. 6. 20. 16:20

august 의 軍史世界

 

북괴의 T-34 는 천하무적 이었나 ?  [ 1 ]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한 자료나 기록 혹은 하다못해 극영화를 볼 때 개전 초기의 장면을 묘사할 때 반드시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북괴의 전차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전차를 앞세운 북괴의 공격에 서울을 불과 3일 만에 속수무책으로 적에게 내주고 낙동강까지 일방적으로 패퇴하였다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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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을 주행하는 북괴군 전차 ]

 

그래서인지 전쟁 직전의 남북한 전력 비교 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부분도 전차입니다.  당시 한국에는 한 대도 없었고 대부분의 장병들은 전차를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대전차 수단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데 반하여 자료마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육군이 발행한 전쟁사교범에 따르면 북괴군은 소련제 최신형 T-34전차를 242대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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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란 중 북괴군이 사용했던 것과 동종의 T-34/85 전차 ]

 

알려진 바와 같이 전쟁초기 북괴군이 공격 선봉에 내세운 전차는 별다른 방어수단이 없었던 국군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앉겨주었고 반대로 북괴군에게는 초기진격을 주도하는 주력병기가 되었던 것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국군은 전쟁 초기뿐만 아니라 휴전 후 상당기간까지 북한의 기갑세력에 대해서 상당한 노이로제까지 겪어왔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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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후에도 오래 동안 북괴의 기갑전력은 우리에게 콤플렉스였습니다 ]

 

개전초 전차를 가지고 돌진하는 부대와 변변한 대전차 무기도 보유하지 못하고 방어하는 부대와의 대결은 너무나 뻔 한 스토리입니다.  이런 스토리대로 한국전 초기, 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렸고 노래가사처럼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두에 서서 국군의 진지를 유린하고 달려오는 북괴의 전차를 향해 수많은 선배들이 육탄으로 불나방같이 뛰어들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라고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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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탄으로 돌진하는 국군 ( 1949년 송악산 육탄10용사 기록화 ) ]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요 ?  북괴군이 운용하였던 전차부대는 과연 대나무를 한 번에 가르던 날카로운 보검이었을까요 ?  그리고 70년대 반공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선배들은 몸에다 다이너마이트를 치렁치렁 감고 "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 하면서 전차정면으로 용감하게 뛰어들기만 하였을까요 ?  이제부터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과연 그러하였는지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기갑전력만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 개전 초기 워낙 북괴 전차부대의 활약이 뛰어나 단지 전차 때문에 국군이 패퇴하였다고 생각하였지만 기갑전력 외에도 1950년 6월 기준으로 국군은 북괴군에 비해 모든 전력에서 열세였습니다.  우선병력만 해도 2 : 1 수준이었고 훈련량만 따져도 북괴군의 대부분은 사단 급 훈련까지 마쳤던 데 반하여 국군은 제대로 완편 된 부대도 많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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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괴군 기갑부대 ]

 

거기에다가 포병전력이나 항공전력 또한 북괴에 비해 사실 명함을 내밀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국군의 최대 중화기였던 M-3 견인곡사포만 해도 겨우 91문이었던데 반하여 북괴는 사단별로 포병연대를 완편하였을 만큼 질과 양에서 국군을 압도하였고 우리는 한기도 없는 전투기도 비록 훈련량이 부족하였지만 북괴는 사단 급으로 편제를 마쳐 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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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전쟁이전 남북간의 전력차는 차이가 컸습니다 ( 노획된 북괴군 중화기 ) ]

 

통상적으로 공자가 방자에 비해 3 : 1 정도 전력차가 있을 때 공격을 개시한다고 하는데 1950년 6월 이전 계량화한 전력격차로 볼 때 약 5 : 1 정도로 북괴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북괴군이 설령 전차부대가 없었어도 도발을 충분히 감행할 만큼 남북간의 전력차가 크게 벌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