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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AGAIN 살수대첩 [ 11 ]

鶴山 徐 仁 2009. 3. 1. 09:34

august 의 軍史世界

 

AGAIN 살수대첩 [ 11 ]

 

 

 

1,300 년만의 재현된 살수대첩 
 
용문산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퇴각하던 중공군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인 북배산 일대에 모여들어 허겁지겁 방어진지를 편성하려 하였지만 6사단의 추격속도는 이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적들이 미처 진지도 구축하지 못한 사이에 청성부대는 예하부대를 이미 산개시켜 2연대7연대로 하여금 정면을 공격하도록 하고 후속하던 19연대를 북배산 북쪽으로 우회 기동시켜 적의 퇴로를 차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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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이 도망간 북배산은 다시 한 번 사냥터가 되었습니다 (북배산 사진출처-Kr.yahoo.com) ]

 

대일항전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팔로군으로 구성된 중공군 최정예 63군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풍부한 참전 경험이 있었음에도 청성부대의 이러한 급속한 차단 작전에 당하여 속수무책으로 북배산에 다시 고립되었습니다.  6사단이 포위망을 압축하여 오자 중공군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무수한 포탄의 비를 뒤집어쓰면서 하염없이 쓰러져 갑니다. ( 북배산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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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은 또 다시 폭탄의 비에 녹아내렸습니다 ]

 

이제 중공군이 도망갈 곳은 일각이 뚫려있는 북쪽의 화천 ( ) 방향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포탄을 피해 중공군이 도망간 곳은 화천댐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화천호가 퇴로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5월 28일 북배산을 빠져나와 화천호 남단까지 패주하여 밀려간 63군 잔당들 전면에 용문산과 북배산의 승리가지고도 성이 차지 않는 청성부대가 뒤 쫓아 나타납니다.  그들은 아직도 배가 고팠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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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이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이번에는 화천호에 가로막혔습니다 ]

 

호수에 가로막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63군은 어쩔 수 없이 배수의 진을 친 형태로 청성부대와 맞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푸른 별에 이미 압도당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밀병기(?) 였던 꽹과리, 나팔, 피리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던 거추장스런 물건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사기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63군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가축 같은 신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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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은 청성부대의 자비심에 의지하여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

 

장도영 사단장은 계속된 승전에도 불구하고 결코 흥분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근접전투시 발생 할 수도 있는 아군의 불필요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적의 중심부에 집중포화를 가하면서 포위망을 서서히 압축하여 가는 침착한 전법을 구사합니다.  이제 적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일이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포탄에 맞아 죽거나 화천저수지로 뛰어 들어 죽거나 하는 것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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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호 위에도 포격이 날라 왔고 적들에게 도망갈 길은 없었습니다 ]

 

지금까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구멍이 없었던 중공군은 아군의 정확한 포격과 압박에 하염없이 쓰러져 갔고 포화를 피해 수천 명의 적들이 저수지에 뛰어들어 북쪽으로 도망쳤지만 하나하나 익사하여 최후를 맞았습니다. ( 화천호 전투 ) 을지문덕 장군의 지휘 하에 수나라 대군을 수장시켰던 살수대첩이 1,300여년 만에 화천호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5월 28일 전투가 종료 되었을 때 청성부대의 전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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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0여년 만에 화천호에서 살수대첩이 재현되었습니다 ]

 

사살된 적군이 17,177명에 생포된 포로가 2,183명에 이르렀고 살아서 도망간 병사는 겨우  천여 명에 불과한 압도적인 대승이었습니다.  8천에 불과했던 청성부대는 제187, 188, 189의 3개 사단 25,000명으로 구성된 중공군 63군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시켜 버렸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전과는 1.4후퇴 후 서부전선에서 중공군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물리쳐 온 미군도 이루지 못한 대승이었고 이후에 아군에게 양적으로 이를 능가하는 승리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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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산에서 화천호로 이어진 일련의 전투는 국군 역사상 최대의 승전이었습니다 ]

 

현리의 참담한 패배로 인하여 국군에 대한 불신감이 극도로 고조되었던 바로 그 시점에서, 그것도 불과 한 달 전에 사창리에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겁쟁이들이 이룬 결과였기 때문에 보고를 받은 UN군 최고 지휘부는 처음에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용문산에서 북배산을 거쳐 화천호로 이어진 놀라운 전과는 단일전투로 한국전쟁 최대의 승전이었고 그 주역이 바로 청성부대였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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