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AGAIN 살수대첩 [ 10 ]
복수의 날이 밝아오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의 5월 공세와 더불어 현리에서 아군이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때, 중공군 19병단 예하 63군의 제187, 188, 189사단이 북한강과 홍천강의 합류점의 용문산 인근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미 9군단이 방어하던 중부전선지역 중 가장 약점이라고 판단한 6사단 지역을 돌파하여 현리에서 한국군을 붕괴시키고 있는 중공군과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중공군 5월 공세 직전 전선도 ]
공산군의 공세 이전, 용문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선을 펼치고 있던 미 9군단은 서에서 동으로 주저항선에 미 24사단 - 국군 2사단 - 국군 6사단 - 미 7사단 순으로 예하부대를 배치하였고 미 3사단은 군단 예비로 곤지암지역에 집결하고 있었는데 ( 관련글 참조 ) 현리의 국군 3군단이 급속히 붕괴됨에 따라 미 3사단이 이동 전개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전선의 일각이 뚫린다면 뒤에서 받쳐줄 아군이 더 이상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 미 3사단이 현리의 위기를 막기 위해 이동 전개에 들어가자 군단 예비가 사라졌습니다 ]
6사단은 용문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 19연대, 동쪽에 7연대를 배치하여 강력한 주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나 적이 북한강을 도하하여 강안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면 방어에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사단 예비로 뒤에 빠져 있던 2연대를 사단의 주 저항선 앞으로 전개하는 역발상적인 초강수를 둡니다. 그 만큼 6사단은 결사의 의지로 항전을 하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 청성부대는 예비로 빠져있던 2연대를 가장 앞으로 내세웠습니다 ]
5월 18일 야간, 모든 준비를 완료한 중공군 63군이 드디어 공격을 개시하였는데 2연대는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대공세를 막아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2연대의 강력한 응전에 당황한 적들은 압도적 병력을 우회 침투시켜 아군을 포위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공군의 동태를 사전에 파악한 2연대는 예상 포위망 밖에 미리 구축하여 놓은 472고지의 진지로 일사분란하게 철수하여 다시 한 번 방어전을 펼칩니다.
[ 중공군이 유인되어 아군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
지금까지 국군과의 교전에서 경험하지 못하였던 2연대의 이러한 체계적이고 강력한 결사항전은 적들이 2연대를 아군의 주력 부대로 오판하도록 만들어 63군의 모든 전력이 이곳으로 집결되도록 유인하였습니다. 하지만 427고지에서 방어전을 펼친 2연대는 고슴도치처럼 격렬히 저항하며 10여 차례에 걸쳐 계속 된 압도적인 적의 공세를 몸으로 막아내었고 결국 때리다 지친 중공군은 기세가 현격히 약화되었습니다.
[ 2연대는 불굴의 투혼으로 적을 묶어 놓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진-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컷) ]
이러한 2연대의 선전을 목이 쉬도록 독려하던 장도영 청성부대장은 5월 20일 05:00시 용문산을 중심으로 2연대 좌우에 포진하고 있던 19연대, 7연대에게 병진하여 돌격하도록 명령합니다. 드디어 그동안 당해왔던 중공군에 대한 무섭고도 거대한 복수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지위의 2연대에만 매몰되어 있던 중공군은 배후에서 예상하지 못한 아군의 공격이 개시되자 상당히 당황하였고 순식간 분리되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 무시무시한 포격이 포위망안의 중공군 머리 위에 작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포병과 공군의 아낌없는 지원 하에 굳건히 진지를 고수하고 있던 2연대와 좌우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가르며 진격하여 들어 온 7, 19연대의 연결이 이루어지자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중공군은 순식간 역 포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포위된 적에게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었고 이틀간에 걸쳐 계속된 무시무시한 포격으로 숨을 곳을 잃어버린 중공군은 치명타를 입고 5월 21일 북한강 이북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하였습니다. ( 용문산 전투 )
[ 도망가는 적을 섬멸하기 위한 청성부대의 무서운 추격이 개시됩니다 ]
용문산 전투는 국군 사단 급부대로 중공군과 격전을 벌여 이룬 최초의 대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성부대는 여기에서 만족 할 수 없었습니다. 현리지역의 위기가 미 3사단의 선전으로 마무리되어 가면서 전선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6사단은 현 전선을 미 24사단에게 인계하고 5월 24일 도주하는 중공군 63군을 추격하기 위하여 전선을 박차고 나가기 시작합니다. 초산의 아픔과 사창리의 치욕을 복수하려는 청성부대의 추격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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