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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前서울대 총장
인터넷 논객인 미네르바의 구속과 관련하여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하였기 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찰측 주장의 논거가 희박하며, 이번 구속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미네르바의 말 한마디에, 그렇지 않았다면 꿈쩍도 하지 않았을 외환시장이 요동쳤다는 주장에는 선뜻 수긍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딜러들은 경제학 교과서가 전제로 하는 '합리성'을 구비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획재정부가 '환율 관리국가'라는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적으로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입증하기 어려운, 아니 입증할 수 없는 문제를 문제시하느라 더 이상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 논란은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미네르바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미네르바 현상은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먼저 국가의 품격, 즉 국격(國格)에 관한 부분이다. 오죽했으면 미네르바의 주장에 사회가 그토록 열광했을까. 그의 주장이 옳다면 그와 같은 주장을 펼쳤던 사람이 희소했다는 것이 문제고, 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런 잘못된 주장에 일희일비하는 사회가 문제다. 어떤 경우이건 미네르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수준이 아직도 얼마나 낮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인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 조금 더 훌륭한 경제학자가 많았다면 어쩌면 미네르바는 훨씬 많은 원군을 얻었거나, 또는 진작 그 주장의 터무니없음이 드러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본의 축적이 매우 중요하다. 유능하고 생산성이 높은 인적 자본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경제만이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기술혁신을 이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네르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인적 자본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인적 자본의 축적은 물론 교육기관이 일차적으로 담당한다. 그러나 교육기관만이 인적 자본의 형성에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모든 부문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인적 자본의 형성이 지체되거나 축적된 인적 자본이 소모되기 쉬운 불황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재촉하며 1만9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를 통해 공공기관은 단기적인 비용절감을 이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은 전체 인력수가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부문에 인력이 모자라고, 불필요한 부문에 인력이 많은 불균형이 문제다. 또한 섣부른 구조조정은 인적 자본의 축적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생각해 보라. 조만간 타의에 의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누가 그 회사에 유익한 인적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이들은 인적 자본의 축적을 아예 포기한 채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거나, 설사 인적 자본을 축적하더라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자격증의 획득에 열을 올리게 될 것이다. 또 그 가족의 인적 자본 투자도 어려워지고 이들의 구매력 약화로 또 다른 불경기 현상이 나타난다. 요즘과 같은 불황에는 공공부문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사기업의 대량해고 사태에 완충역할을 하도록 말이다.
우리 사회는 더 훌륭한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더 훌륭한 경제관료, 더 훌륭한 사법부, 더 훌륭한 시장참가자가 필요하다. 이들이 더 많이 출현하고 이들이 안정적인 여건에서 그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과 참을성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인재란 콩나물처럼 며칠 만에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현상의 참다운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입력 : 2009.01.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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