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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 발바닥 티눈도 뜸으로 제거
이 시대 최고의 침구(鍼灸) 명의로 소문이 자자한 구당(灸堂) 김남수(94)옹.‘현대판 허임’이라고 일컫는다.11세에 부친한테 침구술을 배워 28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65년째 특별한 ‘침과 뜸의 인생’을 걷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정·재계, 연예계 인사들이 여전히 그를 찾는다. 박태환 수영선수도 발바닥 티눈을 김옹한테 찾아가 뜸으로 제거했다.
#사례1 1975년 8월17일이었다. 침술원에서 조간신문을 보던 김씨는 깜짝 놀랐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왕진을 갔던 장준하 선생이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읽고 또 읽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디스크가 심해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데다 낮은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산엘 갔단 말인가. 김씨는 보름 전까지만 해도 장 선생의 집에 가서 여러차례 디스크치료를 해 몸상태를 훤히 알고 있었다. 일어나 앉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크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침뜸치료를 받으면서 빠르게 호전되기는 했지만 방과 마루를 천천히 왔다갔다 할 정도였다. 김씨는 의술자로 증언할 준비를 했는데도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장준하·김재규와 특별한 인연
#사례2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1979년 봄 어느날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불려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서울 장충동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사택이었다. 김 부장은 김씨를 보더니 “나 좀 자게 해주시오.”라고 했다. 몸상태를 살펴보니 김 부장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이 돼도 기(氣)가 여전히 들떠 있고 간(肝)이 심하게 탈이 나 있었다. 만성간염을 앓고 있었다. 간반(肝斑)도 몹시 심했다. 간유(肝兪)의 혈을 잡고 신(腎)의 기능을 북돋아주기 위해 다리 안쪽 복사뼈 위에 있는 축빈(築賓)혈 등을 골랐다.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사이 김 부장은 잠이 들었다. 이후 김씨는 한동안 김 부장의 사택으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씨는 법적으로 금지된 침구사 양성에 관한 말을 하게 됐고 이를 풀기 위해 그해 10월30일 박정희 대통령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10·26사건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전날인 10월25일 김 부장은 침뜸치료를 받으면서 5일 뒤의 약속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지난 추석연휴인 13일과 14일 김남수 옹은 KBS-1TV 특집 2부작 ‘구당 김남수의 침과 뜸이야기’에 등장, 높은 시청률과 함께 또 한번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상을 치료하는 침술도 신선했지만 94세의 현역으로,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나이보다 20∼30년은 더 젊어보이는 얼굴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매주 전국 돌며 무료 침뜸봉사
몇차례 연락 끝에 서울 홍릉 인근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수요일 저녁이어서 진료를 막 끝낸 상황이었다. 김옹은 화·목·토요일은 봉사활동을 나가고 월·수·금요일에는 진료를 본다. 과거에는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했으나 3일씩 장판 깔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에는 토요일 오전시간에만 예약을 받는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의 보좌관도 겨우 전화예약을 통해 진료를 받았다.
자리에 앉으며 김옹은 “방송에 나간 이후 여러 백을 동원해 진료해달라는 전화가 아주 많다.”고 했다. 하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순서에 의한 원칙을 지킨다. 아무리 복잡한 진료라도 비용은 무조건 5만원을 넘지 않는다. 봉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박노해 시인은 ‘나눔의 성자여’라는 축시를 보냈고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운동가’라고 표현했다. 김옹은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으며 방금 전 법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침뜸 봉사활동을 하는 광경을 보고 한의사들이 자주 고발한다는 것. 김옹은 1962년 법개정 이전에 침구사 자격을 땄지만 이후로는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김옹의 활동을 껄끄럽게 여긴다.
▶건강비결이 무엇입니까.
“특별한 거 없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평생동안 침 놓고 뜸뜨고, 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전국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할까요.‘배워서 남 주자.´가 제 인생철학입니다.”
욕심을 버려서 몸이 가볍고 남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니 마음 또한 아니 즐거운가라는 뜻이었다. 김옹에게 요즘 나도는 ‘구구팔팔이삼사’라는 유행어를 꺼냈다.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안에 죽는다는 내용. 김옹은 대뜸 “무슨 소리, 나는 120살까지 살아서 장가 한번 더 갈란다.”며 껄껄 웃는다. 나이로 봐서 보청기 하나쯤 끼고 있을 법도 한데 전화 목소리, 찾아온 환자들의 상담내용까지 세세하게 듣고 메모를 한다.
김옹은 1984년 처음 농촌지역 침뜸봉사활동에 나선 이래 매주 전국을 돌아다니며 65세 이상 노인들을 상대로 무료로 침과 뜸을 놓아준다. 지난 주에는 여수지역을 찾았는데 2만여명이 몰리는 바람에 경찰관 입회하에 200명을 추첨, 침뜸시술을 했다. 그가 운영하는 ‘뜸사랑’ 봉사단체는 현재 전국 30여 지역에 지소를 두고 있으며 4000여명의 회원이 동참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였다.1980년 어느날, 그는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가족들에게 침뜸을 놓도록 해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6개월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정상을 되찾았다.
●병이란 결국 몸의 균형이 무너져 생기는 것
▶찾아온 환자들을 보면 병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파악합니까?
“사람들이 내가 무슨 비법 같은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의서에 나와 있는 병증을 판단하는 방법을 완전히 익히고 또 임상경험을 쌓으면서 남보다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지요. 환자를 보는 망진(望診), 듣고 냄새 맡는 문진(聞診), 만져보는 절진(切診) 등 사진(四診)이라는 게 있습니다. 병이란 결국 균형이 무너져 생기기 때문에 무너진 흔적이 몸 어디인가에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침과 뜸은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나요.
“침은 기운을 움직이고 뜸은 피를 움직이지요. 우리 몸 안에는 흐르는 전기가 있습니다. 침은 꺼진 전기를 켜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에 있는 음양이라는 게 바로 전기이지요. 전기가 시원치 않아 피가 제대로 못가면 시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이때 침이나 뜸으로 놓아 잘 가게 하면 병이 없어집니다.”
▶화상침은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요.
“여드름이 많은 환자가 찾아왔는데 침을 놓아보니 잘 낫더군요. 나중에는 화상을 입은 지 한 달이 되는 환자가 찾아왔어요. 역시 침치료를 했더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흰쥐를 통해 임상실험도 했지요.”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노벨상감이 아니냐고 했더니 김옹은 “침뜸은 ‘과학의학’이 아닌 ‘균형의학’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평생동안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진료와 봉사활동을 하는 균형과 습관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방송인 송해씨와 친하다면서 “오늘도 전화 통화로 ‘우리는 최고령 현역을 끝까지 지키자.’고 했다.”며 웃는다. 슬하에 1남3녀를 두었으며 모두 아버지한테서 침뜸을 전수받았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남수 옹은 누구
1915년 전남 광산에서 출생했다.11세 때부터 의원인 부친에게서 한학과 침구학을 전수받았다.1943년 서울에서 남수침술원을 개원, 본격적인 진료에 나선다.1975년 장준하 선생을 만나 허리치료를 해주는 각별한 인연을 맺는다.1979년 10·26 직전까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사택에서 수십차례 불면증과 간을 치료해주었다. 이후 베이징침구골상학원 객좌교수(93년), 경희대체육대학원 강사(96년), 대한침구사협회 입법추진위원장(96년), 정통침뜸연구소원장(98년), 녹색대학원 석좌교수(2000년) 등을 거쳤다. 현재는 남수침술원 원장·뜸사랑회장·뜸사랑봉사단 단장·정통침뜸교육원장·정통침뜸연구소 이사장·효행봉사단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주요 저서 뜸의 이론과 실제, 침뜸이야기, 생활침뜸의학, 침구사의 맥이 끊어지면 안 된다,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침구사를 키워 인류를 구해야, 침사랑 내사랑 아∼내사랑 등을 비롯,10여권의 침뜸교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