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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2006 '한국과학을 빛낸 사람들' /한국을 빛낸 해외동포들

鶴山 徐 仁 2008. 8. 15. 22:31
2006 '한국과학을 빛낸 사람들'
올해 과학계는 우울한 소식으로 시작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가짜라는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서 한국 과학계의 신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러나 재미동포로 미국 과학계에 우뚝 선 서남표 MIT대 교수가 7월 KAIST 총장으로 돌아와 한국 대학가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미 스탠퍼드대 김상배(박사 과정)씨 같은 새 희망의 싹도 확인됐다. 그가 개발한 로봇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발명'에 뽑혔다.


'소리 없는 개혁'으로 KAIST 제2 도약
서남표 총장


서남표 KAIST 총장의 7월 취임은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세계적 학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로플린 총장이 교수들의 끈질긴 연임 반대 운동으로 물러나면서 누가 그 자리를 맡게 될지 하마평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서 총장은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한 것은 물론이고 수조원의 연구비를 다루는 미 과학재단의 부총재를 역임하는 등 업적과 사회적 지위 양면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교수들을 효과적으로 응집하지 못한 로플린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KAIST를 발전시킬 최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학으로 미 MIT대를 졸업한 험난한 이력도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KAIST 비전을 세우고 거기에 걸맞은 체제로 조직개편을 했다. 그가 제시한 개혁안과 실천 계획은 한국 대학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연구 성과의 품질을 더욱 따지는 평가 방식 ▶영어 수업 ▶외국 대학과 제휴한 복수 학위제 ▶교수 연봉 조정 ▶학교 발전 기금 1조원 모금 목표 ▶교수 연구실의 개인 명패 없애기 등 국내 대학에서 과감히 추진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서 총장의 이런 개혁 드라이브 속에서 로플린 총장 때 시끄럽던 교수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숨을 죽였다. 워낙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개혁 성향이 강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친근감을 주는 인상이다.

그의 국적은 미국이다. 연봉은 36만 달러(약 3억3000만원)에 달하지만 미국에서 있을 때 수입의 3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서울사대부고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한 그가 5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어떤 업적을 남기고 돌아갈지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다.

유리벽에 달라붙는 도마뱀 로봇
타임 '올해의 발명'에
김상배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흔히 한국 사람은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다 보니 타고난 개성이 달아난 때문일까. 그러나 지난달 미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발명'에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Stickybot)'이 44개 발명품의 하나를 차지해 이런 통념을 무색하게 했다.

스티키봇은 도마뱀처럼 생긴 로봇이 유리벽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착안해 '달라붙는 로봇'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를 발명한 김상배(31.사진)씨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청년 공학도다. 그의 로봇이 유리벽을 타고 올라가는 동영상이 미국의 세계 최대 UCC(사용자 제작 콘텐트) 사이트인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고 결국 타임지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스티키봇 아이디어는 도마뱀 발바닥의 미세한 조직 연구에서 나왔다. 이 로봇 발바닥에 있는 섬모를 도마뱀처럼 한 방향만 보게끔 경사지게 잘라냈더니, 특정 방향으로는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커진 마찰력 때문에 유리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었다. 대신 반대편으로 잡아당기면 손쉽게 떼어낼 수 있어 로봇의 발바닥은 계속 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방향성 접착성'으로 불렀다. 그의 연구에 돈을 댄 미 국방부는 스티키봇의 크기를 대폭 줄여 스파이 로봇으로 개발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뭔가 만드는 데 재미를 붙였다. 무선조종 자동차와 고무동력기 등을 만들어 여러 발명대회를 휩쓸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인
암 억제.당뇨병 예방단백질 규명 1인자
김성훈 서울대 교수


서울대 약대 김성훈(48.사진) 교수에게 올해는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해외 저명한 학술저널에 논문이 쏙쏙 들어가고, 게다가 상금 3억원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암 억제 단백질과 혈관 생성 상처 치료 신물질을 개발한 공로가 그를 이런 영예로 인도했다.

신기능 암 억제 단백질(P18rhk P38), 혈관 생성 상처 치료 신물질(P43), 새로운 염증 유발 물질(KRS) 등을 발견하고, 새로운 혈관 억제 물질(WRS)의 구조를 규명하는 등 국제학술지에 84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올 들어서는 대표적인 암 억제 유전자 P53의 작동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존재를 처음 밝혀내 7월 미 암학회가 발행하는 '캔서 리서치'에 관련 논문을 실었다. 9월에는 혈당을 조절하는 당뇨병 예방 단백질까지 발견해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이 사실을 실었다.

'라자스펠트 예상' 푼 수학계 '국가 석학'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황준묵(43.사진) 고등과학원 교수는 올해 상복을 타고났다. 4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데 이어 12일에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선정하는 '국가 석학'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그의 명성은 해외에서 더 자자하다. 세계 수학계가 1997년까지 10년 넘게 풀지 못한 '라자스펠트 예상'을 명쾌하게 풀어낸 것이다.

이는 미 미시간대 라자스펠트 교수가 84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예상한 이후 그 어떤 수학자도 증명하지 못했던 난제였다. 그가 자신의 문제를 황 교수가 풀었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96년 서울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이 문제를 푸는데 몰두하려고 자리를 3년 만에 내놓고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직하면서 "잡무가 너무 많다"는 말을 남겼다. 부친은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 전 이화여대 교수다.

'바이오 신약'으로 벤처기업 창업
김선영 서울대 교수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지만 김선영(51.사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에게는 남 얘기다.

그는 올해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한편으론 벤처 기업가로 남다른 성취욕을 맛봤다.

그가 설립해 대표를 맡은 바이오벤처기업 바이로메드를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시킨 데 이어 자체 개발한 바이오 신약 다섯 가지가 미국과 중국.한국 등지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따낸 것이다. 그는 "국내 어느 업체에서도 해보지 않은 바이오 신약 임상허가를 미국에서 받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하나의 바이오벤처 기업을 야심차게 키우고 있다. 야생식물이나 약초 등 천연물을 재료로 신약을 개발하는 '헬릭서'라는 회사다.

연초 일본의 투자전문 회사 소프트뱅크인베스트먼트(SBI)는 500만 달러를 이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반도의 눈' 아리랑 2호 개발 주도
항공우주연 이주진 박사


7월 28일 오후 4시5분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발사 기지에서 우리나라 아리랑 위성 2호가 발사됐다.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솟구치는 로켓 위에 있는 위성을 바라보며 가슴을 가장 졸였던 사람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주진(54.위성기술사업단장.사진)박사다.

아리랑 2호 개발의 총책으로 이날 그 누구보다 성공적인 발사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와 연구팀의 노력으로 지금 '한반도의 눈'은 날마다 지구를 돌며 우리나라 주변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의 지표면을 촬영하고 있다.

위성 개발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 기관들의 공동 연구는 물론이고 외국과의 제휴 없이는 어렵다. 국내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성공적인 위성 발사라는 목표를 위해 수많은 연구팀의 힘을 모았다. 그의 다음 표적은 2008년 발사할 아리랑 위성 5호 개발이다.

손으로 깎는 반사거울 '무결점' 장인
표준과학연 이재협씨


위성이나 천체 망원경 중 단일 부품으로 가장 큰 게 반사거울이다. 7월 발사한 아리랑 위성 2호에 탑재한 반사거울은 지름 60㎝다. 그 구경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재협(42.사진)씨는 반사거울 제작의 장인이다. 한국에서 이런 큰 구경의 반사거울을 만드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이씨가 유일하다. 거울 표면을 일일이 손으로 갈아 거울처럼 빛이 잘 반사되게 만든다. 핵심 기술은 초정밀도 유지. 지름 90㎝ 반사거울이라면 곡면 중 가장 많이 튀어나온 부분과 가장 많이 파인 부분의 높이 차이가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4000분의 1 정도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정밀도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씨가 지금까지 제작한 대구경 반사거울은 20개 가까이 된다. 앞으로 아리랑 위성에 들어갈 반사거울을 제작할 계획이다.
----------------한국을 빛낸 해외동포들 2
백남준

 

백남준

 

백남준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비디오 예술의 아버지, 작곡가, 행위 예술가, 테크놀로지 사상가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세계성과 한국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세계 속에 우뚝 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치열하게 실천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백남준은 데뷔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의 대중 지배에 대한 역기능을 놓고 예술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비디오 예술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예술은 이 때문에 늘 공격적이고 반미학적이며 매체 저항 의지를 담고 있다. 또 관객이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관계하고 작품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되었는데 관객 참여 방식에 의한 예술적 실천은 백남준 미학의 중요한 하이라이트이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 또는 독백 예술로 간주하였다.

 

백남준 예술의 재미는 역시 예술과 대중의 만남이며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이다. 예술 대중주의를 위한 백남준의 시도는 바로 인간화된 예술을 향한 도전이었으며 그의 시각은 그래서 위력적이다.

 

백남준은 단순히 비디오 예술의 첫 개척자나 시행자가 아니라 새로운 비디오 예술 도구나 방법론을 개발해 선구자가 된 것이다. 그가 개발한 비디오 기술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특히 자석을 이용하여 텔레비전의 이미지를 뒤틀리 하면서 예술적으로 바꾸었던 시도는 후배 비디오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여 비디오카메라가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속성을 다양한 컬러와 이미지효과를 곁들여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다른 비디오 예술을 창조한 것은 백남준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2.이철호

 

이철호

 

노르웨이 사람에게는 미스터 리로 통하는 한국인이 있다. 노르웨이에 라면을 처음으로 알린 미스터 리. 머나먼 북극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을 바꾼 라면 왕 미스터리. 그는 노르웨이 최초의 한국인 이철호이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의 노르웨이 왕국. 산과 호수의 나라요, 해운왕국이기도 한 노르웨이는 산유국으로 일인당 국민 소득 이만 칠천 달러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진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이다. 그러나 인구 400만. 단촐하기만 한 이 바이킹 후예들의 삶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 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2000년 11월 초, 노르웨이의 북부, 인구 1만 8천명의 작은 도시 나르빅의 지방 신문에는 그 전날 있었던 학생들의 무단 결석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사연인 즉, 그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여는 백화점의 개업 기념 라면 시식 행사에 참석한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일단의 학생들이 결석했다는 것이다. 이때 그 백화점의 라면 시식 행사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바비 인형 같은 북구의 금발 미녀들이 코믹한 외모의 이철호 씨를 둘러싸고 '미스터 리'를 연호하며 미스터 리가 직접 끓인 '미스터 리' 라면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사인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미스터 리'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의 상표이자, '라면'이라는 식품을 최초로 노르웨이에 퍼뜨린 이철호를 가리킨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말한다. 노르웨이에는 왕이 두 사람이라고. 국왕과, 라면 왕 미스터 리. 'king of noodle'로 불리우며 노르웨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철호, 팬클럽까지 있는 그의 목소리와 모습은 영화, tv, 라디오 광고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벽안의 젊은이들. 미스터리 덕분에 이들은 벌써 라면 맛에 길들어져 있다. 이철호가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여 한국의 한 라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스터 리 라면은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3.박만복

 

아메라카 대륙의 서쪽에 태평양과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나라, 페루가 있다. 지나간 천년의 초기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신비한 잉카의 문명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페루이다. 광대한 나스까 사막에는 지금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그림이 남아있는, 신비의 나라인 페루에 가면 우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어버린 한국인 배구 감독 '맘보 박'을 만날 수 있다. 페루에서 '맘보 박'이라고 불리는 그가 바로 한국인 박만복이다.

 

박만복 감독이 페루에서 영웅이 되기까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규율을 강조한 박만복 감독의 엄격한 훈련 방법에 처음엔 페루 대표팀 선수들이 강한 불만을 토로했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오해로 생긴 갈등으로 인하여 사표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적인 차이에 대한 오해가 풀리며 사표는 며칠 후 반려되었다. 하지만 박만복은 한 번 페루를 떠난다. 1993년에 일본 실업팀의 적극적인 스카웃으로 박만복은 페루를 떠난 것이다. 그후 페루 배구는 곤두박질하여 남미 최하위로 내려앉고 팀 해체 위기까지 갔다. 그러자 페루는 맘보 박이 돌아와 다시 한 번 페루 배구를 정상에 올려 주기를 소원했다.

 

1998년 박만복은 제2의 조국 페루로 다시 돌아와 배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또다시 페루에서는 돌아온 맘보 박이 화려했던 과거의 신화를 재현해 주길 고대하며 페루 국민들은 박만복이 배구감독이 되어 배구팀을 이끌게 했다. 그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미 지역 예선에서 아르헨티나에 연거푸 2세트를 내주며 패색이 짙던 게임을 극적으로 역전시켜 페루 국민을 열광시키고 5년간의 공백을 만회했다.

 

한국의 정반대 편에 있는 잉카의 나라 페루에는 현재 1000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다 주로 봉재 공장과 옷가게를 하며 살고 있다. 1993년 박 감독이 잠시 페루를 떠나 있는 동안 한인회는 구심점을 잃고 흐지부지 됐으나 그가 돌아와 다시 한인회 회장을 맡으면서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페루에 사는 한인들은 살아가는데 맘보 박과 같은 한국 사람이고, 그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얻는 혜택이 너무 크다고 한다. 박만복은 페루를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교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달랜다. 그래서 박만복은 한인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한인회 일이라면 발벗고 뛰고 있다. 맘보 박은 페루 사람들에게나 한인 교포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유명해졌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른다. 지켜야 할 원칙을 지켰고,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믿어주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마음을 열고 부응했을 뿐이라고. 그런 그는 페루에 희망을 심는 한국인이다. 페루 한인회 회장을 하며 집안의 어른처럼 한인들의 대소사를 돕고 아직도 청진동 해장국집을 잊지 못하며 가보고 싶어하는 한국인 박만복. 수도 리마 시민은 물론 안데스 산맥 너머 지방 소도시 우완까이오 시민은 홍보 차량을 앞세워 맘보 박을 외치며 그의 방문을 환영했다.

 

페루인들은 페루로 다시 돌아와 아르헨티나에 극적인 역전승을 하며 시드니 올림픽 본선진출 티켓을 안겨준 것에 대해 한없이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의 반평생을 맡겼던 나라,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잉카의 후예들 속에 이들과 함께 서있는 자랑스런 한국인 박만복은 이들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에 오늘이 힘들지 않다. 변함없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제 2의 조국 페루 국민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사회 봉사 차원에서 현재 그는 대표팀을 맡아 무료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환갑을 훨씬 지난 노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는 건제하고 전성기 때의 페루 배구를 재현해 보려고 열심이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한다. 딸 같은 여자 선수들을 훈련시켜 세계 최강팀과 승부를 겨루어야 하는 과정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그러한 작업을 묵묵히 그러나 꿋꿋하게 걸어온 박만복은 페루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인이요, 우리가 사랑하고 믿어주어야 할 한국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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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영우

-  시각 장애인이라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국 이민 100년 역사상 한인 가운데 최고위 공직에 오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강영우(姜永佑.58) 박사. 지금도 활동 중.


2.전신애 - 美노동부 여성차관보급 한국계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에 의해  차관보급인 노동부 여성실장에 지명되었다. 전씨가 상원 인준을 받게 되면 부시 행정부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최고위 행정부 관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씨는 90년대 후반 ‘뚝심 좋은 마산 색시 미국 장관 10년 해보니’ ‘마산에서 링컨의 나라로’라는 책을 한국에서 펴내 유명해진 인물. 동성동본 금혼 장벽을 피하기 위해 36년 전 남편 전경철씨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이후, 성공한 이민자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96년에는 개교 110주년을 맞은 모교 이화여대에서 ‘자랑스런 이화인’으로 선정되기도.

 

3.이종수

독일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유럽의 자존심을 그대로 지키온 나라, 세계대전을 일으킨 야심, 패전국이 되고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저력, 베를린 장벽을 풀고 통일을 일구어낸 단결력, 순수 게르만 민족의 자부심 가득한 그곳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동양인이 있다. 세계 최고의 간박사 이종수이다.

이종수는 독일 의과 대학 최초의 동양인 종신 교수이다. 또한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노벨 의학상 후보로 추천된, 지금까지 단 하나인 동양인 종신 교수이다. 이처럼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4.김석주
 

지체 장애자 청년 김석주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가진 전부가 전자기술 2급 자격증과 여비 6백 달러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연매출 1천5백만 달러 규모의 통신기기 판매 회사 경영자로 우뚝 섰다. 이 회사의 비퍼(호출기)를 사용하는 고객은 12만 명이고. 뉴욕의 퀸스·브롱스·맨해튼과 뉴저지 주 등의 직영 점포만 7곳이다. 언어 장벽·인종 차별보다 고통스러운 지체 장애를 딛고 미국 주류 사회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5.백남준
 백남준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비디오 예술의 아버지, 작곡가, 행위 예술가, 테크놀로지 사상가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세계성과 한국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세계 속에 우뚝 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치열하게 실천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6.손우영

최고의 경제 잡지 포춘지가 2000년도에 선정한 12개 기업 가운데 하나인 벤처 기업 네오포인트사. 그 네오포인트를 설립한 손우영, 그는 인종과 장애인의 절벽을 허물며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 이동 통신 업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7.민경호

민경호는 태권도를 통하여 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고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힘쓴 사람이다. 그는 미국 버클리 대학(berkeley)에 태권도학과를 정식학과로 만들고 올림픽에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인 한국인 석좌 교수이다. 1969년부터 버클리 대학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주로 무도를 가르쳐 왔고, 무도 연구소를 만들어 미국에서 제일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기원에서 준 태권도 9단 자격과 유도 8단 합기도 7단의 명예를 향유하고 있다.

8.윤여태

재미 실업가 윤여태는 미국 뉴저지 주에서 이민 생활 20년에 남다른 성실성과 장사 수완, 독학으로 쌓은 재테크 실력과 단단한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지역 사회를 장악해 가는 그의 삶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9.지용우

1940년 5월 24일 생으로 1986년 마샬공화국에 진출한 지용유는 1987년에 마샬 공화국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현재는 대통령 경제 고문과 마샬 공화국 한인회 회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10.문대원

한국의 태권도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멕시코인들에게 절제와 한국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멕시코 인들에게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전한 한국인은 문대원이다. 그는 멕시코 국회로부터 모범적인 멕시코 인을 배출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을 만큼 멕시코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11. 미쉘 위(위성미)

- USGA 아마추어챔피언십 최연소 예선통과, 최연소 커티스컵 미국 국가대표 선발, 제니K 윌슨 인비테이셔널 우승, 하와이 여자스트로크 플레이챔피언십 우승, US 여자 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 최연소 우승 등.

 경력에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자주 붙이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교포.  세계속에 그녀의 입지는 점점 굳어지고, 높아가고 있다. 앞으로 골프 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을 그녀가 어떻게 극복해 낼 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함으로 지켜보고 있는 세계 여자골프  유망주.

 

12.  대니 서(Danny Seq) 

 - 환경운동으로 우뚝 선 재미 한국인,  지구를 지켜낸 아름다운 실천가 이다.

 대니 서는 10대 때부터 미국에서 가장 큰 청소년 환경보호 단체를 이끌며 명성을 떨쳤다.  환경운동가 대니 서는 지난 10년간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 잡지 등에 500여 회나 소개되었으며, 지난 1995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 인간 존엄성'과 `올해의 젊은 이상'을 수상했다. 또 1998년에는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3.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

 - 태극마크를 달았던 재일교포. 일본 긴키대 시절 일본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간사이팀 소속 선수로 활약, 일본 내 랭킹 5위에 오르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끊임없이 귀화 유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74년 전국체적에서 재일동포 대표로 줄전해 우승했던 아버지 추계이씨의 뜻에 따라 모국행을 선택. 아시안께임에 나가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활약을 거듭했으나 국내 유도계의 보수성으로 인해 몇번의 좌절을 경험,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 귀화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한국사람임을 일본에서 자랑스럽게 밝히며 한국인의 긍지를 높여주었다. 현재는 k-1에서 선수로 활동중이다.

 

14. 조수진 - 13억 중국 축구 응원단‘치우미’이끄는 한국인 단장.

조수진씨는 중국 CCTV 에어로빅 프로그램 진행자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 중국판나이키 CF 전속모델로도 널리 알려진 한류 스타이며, 현재 베이징TV(BTV)의 에어로빅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15. 허병렬 - 뉴욕한국학교장.
한인 학교를 세우는 등 38년 동안 한인 2세 교육에 헌신해 왔다.

16.신호범  -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선정.
  아시아계 최초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1935년생). 전미(全 美) 입양협회 이사. 6.25때 입양. 전쟁고아.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1955년 19세에 미국이주.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으나 말일성도인 양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여 9개월만에 검정고시인 GED에 합격. 브리감 영 대학 졸업, 피치버 그 대학 석사. 워싱턴 주립대학 동양학 박사. 시애틀 소재 쇼어라인 커뮤니 티 대학에서 22년간 역사학과 교수.
1956년-58년까지 3년간 일본에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 선교사업. 1988년부터 3년간 한국 대전에서 선교부장 역임. 년두차례 워싱톤 한인회장.
1991년 미국 민주당 지명을 받아 시애틀시 21지역구에서 주하원으로 출마하여 주민의 99%까지가 백인인 이 지역에서 3선의 현역 공화당 백인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 당선후 주하원에서 8개법안을 제출하여 6개 법안이 통과되는 등 눈부신 활동. 특히 백인과 동양인을 둘다 이롭게 하는 성공적인 의정활동. 신호법의원이 제안하여 통과된 법안 중에는 1996년부터 워싱턴주에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과과정에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주요 아시아 국가의 언어 및 문화관련 과목을 정식과목으로 채택케한 '국제교육법'등이 있다.
2001년 8월 22일 건국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
저서(한국어): 기적의 역사(공저, 도서출판 삶과 꿈),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거리소년에서 상원의원까지(신호범 자선 에세이,웅진출판)

 

17.박용향
 박용향은 1948년생으로 현재 프랑스 국적의 해양 물리학자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해양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브레스트 대학원에서는 해양 물리학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kaist 해양 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제주대 교수, 서울대 교환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는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해양 물리실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자연사 박물관은 파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세느강 남안에 위치하고 있는 식물 공원 안에 있다.

18. 이철호
 노르웨이 사람에게는 미스터 리로 통하는 한국인이 있다. 노르웨이에 라면을 처음으로 알린 미스터 리. 머나먼 북극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을 바꾼 라면 왕 미스터리. 그는 노르웨이 최초의 한국인 이철호이다.

19. 김순남

- 한국의 작곡가. 서울 출생. 일본 도쿄[東京]제국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스승 하라 다로[原太郎]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국민주의음악의 기법을 수용,  당시 일본의 중진작곡가들과 견줄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한국음악사에서 현대기법을 쓴 본격적인 현대작곡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