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한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 인터뷰 최보식 사회부장=인터뷰 / 정혜진 기자=정리
울리히 벡(Ulrich Beck·64) 교수는 '위험'의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분석해왔다.
―대낮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아이가 두들겨 맞으며 납치될 뻔했다. 그 현장이 마침 CCTV에 찍혀 매스컴에 공개됐다. 이 사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도 한마디 했고, 지금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안전을 불안해하고 있다. 이것이 당신이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바로 그 '위험' 개념인가?
"일반적으로 '위험'은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내가 말하는 위험은 끔찍한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 범죄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반복성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위험'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어느 사회에나 나타나는 보편적 '위험'인가, 혹은 예외적인가?
"이는 예외적인 사건이지만, 보편적 '위험'에 속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사람들의 일반적인 위험, 불안감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이런 사건을 통해 사회가 그런 위험에 대처하고 맞서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위험'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북한의 핵(核)을 예로 들었다.
"지금 북한 핵으로 인한 대재앙이 닥치지는 않았지만, 그에 예상되는 위험이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그 위험을 극대화하고 드라마틱하게 하면 정치적으로 홍보 효과가 있다. 북한으로서는 큰 유혹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위험에 너무 익숙해져, 위험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서운 결과다. 사람들이 위험에 너무 오래 노출돼 있으면 위험의 정도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위험을 어느 날 극대화시켜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본다."
―당신은 "요즘 사회에서 '위험'은 계급을 떠나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인간과 집단은 위험에 다양하게 반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위험도 '수출'이 된다. 통상 문맹률이 높거나 가난한 나라들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그런 위험국가일수록 위험이 더 발생하기 쉽다. 이런 경우 위험은 '계급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위험을 '민주적'이라고 한 것은, 기후재앙 같은 위험이 극대화된 때를 말한다. 그때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위험이 적용된다. 그런 위험에서는 부자들조차 돈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당신은 대량 실업도 '위험사회'의 한 모습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실직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높은 실업률을 잡기 위해 정부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안정이 아니다. 그래서 실업이 '위험사회'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제 '노동을 새로운 개념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좀더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 CEO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실직 문제 해결에 강한 의욕과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정치지도자가 내세우는 '완전고용사회'란 실현될 수 없는 속임수"라고 말한 적 있다.
"한국에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한국대통령의 말씀을 엮는 게…(웃음). 하지만 오랜 연구와 경험, 사례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은 노동시장 규모는 줄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더욱 더 적은 숫자로 더욱 더 많은 생산물을 얻고 있다. 과거 모델로 실업률을 잡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노동을 통해 생존의 안정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났다. 노동이 아닌, '또 다른 것'으로 생존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가령 지자체나 시민단체 등에서 몸소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구체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노동'에도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제도화된 노동' 형태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아님을 알아달라. 다만 노동의 개념이 급격하게 달라졌는데, 대안 없이 실업률을 낮추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당신은 현대사회의 '위험'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국가가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 적 있지 않는가?
"국가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다. 하지만 국가의 이런 역할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사회가 점점 좋아지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순된 얘기다. 산업화, 과학 발달, 세계화로 인해 과거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던 위험들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는 국가가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곧 국민의 불신이 생겨나기 때문에 위험한 전략이다. 둘째는 국가가 국민과 조심스럽게 대화하는 것이다. 즉 당신들이 어떤 위험을 참아낼 수 있는가, 어떤 위험을 우선 관리할 것인가, 이런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런 '위험사회' 속에서 우리 개인들은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나? 우리의 행동 요령은 뭔가?
"사회학자는 '의사'가 아니다. 약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진단을 할 뿐이다. 사람들은 위험 앞에서 눈감거나 스스로에게 보호막을 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상황 판단 능력을 상실한다.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몇몇 사건의 끔찍한 위험에 대처하는 한국의 반응을 보면, 이는 폭발적인 급격한 근대화의 단면이 아닐까 한다. 그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더 크게 더 빨리 더 좋게, 발전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도 함께 성찰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위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대답하기 어려운 개인적 질문인데, 나는 위험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취한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소시지는 사실 건강에 몹시 좋지 않다. 그러나 나는 즐긴다. 사람들이 '그걸 왜 먹냐'고 하지만, 나는 그 위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웃음). 위험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학자 관점에서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위험들은 주로 부정부패, 정부의 실패 등 '조직적 무책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재앙이 일어나면, 책임질 주체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불안한 법이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왜 이리 늦었나?
"근대화가 극단적으로 실험된 나라들, 예를 들면 한국 같은 나라가 바로 내가 여행하고 싶은 나라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위험 사회다. 내가 지금까지 말해온 위험 사회보다 더 심화된 위험 사회다. 전통과 제1차 근대화 결과들, 최첨단 정보사회의 영향들, 제2차 근대화가 중첩된 사회이기 때문에, 특별한 위험사회인 것이다. 아주 호기심 많은 사회학자로서 한국에 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내 책이 35개국에 번역됐고, 그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에 늦게 왔다."
울리히 벡(Ulrich Beck·64) 교수는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다. 현재 독일 뮌헨대학 사회학연구소장. 그는 '위험사회'(1986)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 사회 이론에 '위험' 개념을 추가했다. 근대화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동반하는 대형 사건사고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제2의 근대'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세계화 시대에서의 권력과 반권력'(2002)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1996) '위험사회의 정치'(1991)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1990: 부인 공저) 등이 있다. 서울대와 경희대의 초청으로 지난 29일 처음 방한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1/2008040100139.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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