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듯 용력이 뛰어나고 기력이 왕성하던 임금이었지만 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터에 여러 차례에 걸친 왕규 등의 흉계로 심신이 극히 쇠약해졌다. 말하자면 심한 신병에다 노이로제를 겸한 셈이었다.
한밤중에 사람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여봐라! 누구 없느냐? 자객이 짐을 해치려 어른거리고 있도다!"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때는 가을이라고 하지만 노염(老炎)이 아직 심하였다. 그러나 왕은 대낮에도 문을 꽉꽉 닫아걸고 무사들로 하여금 침전을 겹겹이 호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부쩍 의심이 늘은 왕은 호위하는 무사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거동이 약간 이상한 자만 보아도 "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고 했지?"하고는 목을 베거나 귀양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되자 왕을 호위하던 무사들은 전전긍긍 그저 제 목숨 보존하기에만 바빴고 지난날 왕규를 세 번이나 용서하던 왕의 도량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형편을 보자 누구보다도 나라와 임금의 앞날을 염려한 것은 대광 박술희(朴述希)였다.
박술희는 일찍이 왕이 태자가 될 때, 오씨부인의 청을 받고 진력한 공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조가 세상을 떠날 때에 친히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주며 "경은 태자를 보필하여 사직을 보존토록 하라."는 유명(遺命)을 받은 처지였다.
그러니 왕의 신변이 위태로운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 무사 백여명을 거느리고 왕의 침전을 호위하도록 하였다. 왕규의 장난이 있은 후로는 왕족들과 조신들 사이에 의혹과 질시와 암투는 한층 더 심해졌다.
누가 조금만 색다른 거동을 해도 이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나 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따라서 박술희가 백여 명이나 무사를 거느리고 왕의 침전을 에워싸고 있으니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다음 왕위를 이를 왕자로 지목되는 요와 소의 생모 유씨부인이 가장 불안을 느꼈다.
유시부인은 요를 불러 말했다.
"너는 박술희의 거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글쎄요… 그 사람이 원래 청렴강직하긴 하지만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람의 마음도 변하기 쉬우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해야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소광주부인이 찾아왔다.
왕규는 그 후 재차 거사를 하고 싶었으나 강력한 박술희의 군사가 왕의 침전을 호위하고 있으므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박술희를 쫓아내려고 궁리한 끝에 곰곰 생각하다 요를 충동해서 박술희를 쫓아낼 계교를 꾸민 다음 딸을 보낸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니까 별것들이 다 날뛰는 모양이지요?"
소광주부인은 슬며시 이렇게 던져 보았다.
"글쎄 말예요. 궐내가 너무 시끄러운 것 같군요."
"박술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무사를 거느리고 궐내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가요?" "우리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어요." "뭐니뭐니해도 왕족들은 핏줄이나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왕규 부녀의 소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유씨부인 모자도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당장 강력한 경쟁자는 박술희로 여겨진 때문에 그 말조차도 솔깃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 이튿날로 요는 중광전을 찾아갔다.
"대왕께 긴히 사뢸 말씀이 있으니 들어가야겠소."
침전을 지키고 있는 박술희에게 말했으나 누구부다도 왕족들을 경계하고 있던 박술희는 딱 잘라 거절했다.
"폐하의 환후가 위중하시므로 아무도 들어갈수 없소이다."
박술희로서는 딴 뜻이 있어서 취한 조처는 아니었지만 요로서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어디 두고보자.’
요는 단단히 벼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해 구월, 만산이 붉게 단풍질 무렵, 왕의 병은 한층 위독하더니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임금으로 있은지 겨우 二년, 나이도 삼십사세란 한창 좋은 시절이었다. 왕이 돌아가자 시호를 의공(義恭), 묘호를 혜종(惠宗)이라 하고 송악 동쪽 기슭에 장사를 지냈다. 혜종이 세상을 떠나자 유씨부인 소생의 맏아들 요(堯)가 왕위를 이었으니 곧 제 三대 정종(定宗)이다. 혜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규는 물론 자기 외손자인 광주원군으로 왕위를 계승케 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으나 여러 왕족과 중신들은 왕규의 음모를 분쇄하고 요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래 이럴 수가 있나? 내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단물은 딴 사람이 빨아먹다니!"
왕규는 딸과 함께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어떤 화를 입을는지 알 수 없음을 생각했다.
"아버님, 우리는 괜찮을까요? 새 임금은 전왕과 달라서 도량이 좁고 사람을 잘 미워한다지 않아요?"
"그러니 말야. 어떻게 수를 써야 할 텐데."
"그리고 박술희 같은 벽창호가 궐내에서 행세를 하여 언제 어떻게 우리를 모함할는지 알 수 없단 말이야요." "그러니 독으로 독을 제거해야지! 흐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박술희란 놈을 없애버리고 그 일로 새 임금의 신임을 받는 거지."
"아~항… 역시 아버님의 꾀는… 호호"
소광주부인도 좋아라고 그 계교에 찬동했다.
왕규는 곧 입궐하여 새 임금께 상주하였다.
"대왕폐하! 일개 무장이 궐내에서 행패를 하오니 장차 어떤 변이 일어날는지 심히 염려되옵나이다."
"일개 무장이라니, 그건 누굴 말하는 거요?"
의심많은 왕은 이내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박술희의 거동이 심히 수상하단 풍문이 있사옵니다."
"어떠한 풍문이길래?"
"박술희로 말할 것 같으면 전왕께서 등극하실 때 공을 세웠으므로 전왕의 총애는 한몸에 받았으나 폐하께서는 처지가 다르시니 자기의 앞날이 어찌 될는지 근심스럽다 하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선수를 써서 거사하겠다고 무리들을 한층 강화하고 때를 노리고 있다 하옵니다."
"그으래? 고이한 놈이로다! 그놈을 당장 멀리 쫓아버려야 하겠다." 왕은 벌써 핏대를 올리며 야단이었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불러 박술희를 멀리 귀향 보내라고 명하였다.
왕규의 계교는 이렇게 해서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그는 곧 소광주부인의 처소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렸다.
"어떠한가? 내 계교가 과연 기가 막히지 않느뇨? 핫핫핫…"
왕규는 딸 앞에서 자랑을 한참 했다. 그러나 딸은 새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별로 신통히 여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겨우 귀양을 보내요?"
"암, 그만하면 됐지. 궐내에서 날뛰던 눈의 가시를 멀리 뽑아버린 셈인데 더 바랄 게 있을라구?"
"그렇지만 그자의 죄가 풀려서 돌아오는 날이면 우리는 어떻게 되죠? 그 사나운 자가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 염려도 없지 않지만 좀처럼 죄가 풀릴라구."
"모르는 것은 사람의 일이어요. 아주 죽여 버리면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단 말예요."
그 말에 왕균의 눈이 번득했다.
"죽여버리면 몰라도? 옳지, 죽기 전엔 마음이 안 놓이지."
왕규는 한참 궁리에 잠기더니 심복 하나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시오니까? 대광 어른."
심복은 잘 길들인 개처럼 왕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명령만 기다렸다. "너, 박술희가 귀양 가는 뒤를 밟았다가 으슥한 곳을 지날 때 해치우도록 하라."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심복은 곧 물러갔다.
"자, 이만하면 안심이지? 눈에 가시는 없앴겠다. 왕의 신임은 받게 되었겠다. 또 박술희란 놈이 궐내에 없게 되었으니 왕의 좌우가 허술해졌겠다. 이제 내 앞에 거슬릴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핫핫핫.."
그러나 왕규는 큰 오산을 하고 있었다.
새 임금이 박술희를 귀양보낸 것은 왕규의 참언뿐만 아니라 지난날 앙심을 품은바가 있었기 때문에 취한 처사였다.
그리고 왕규의 사람됨은 전부터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박술희에 관한 일 이외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왕이 은근히 신뢰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서경에 주둔하고 있는 왕식렴(王式廉)이었던 것이다.
왕식렴은 태조의 종제(從弟)이니 왕족 중의 어른일 뿐 아니라 인품이 충직하여 오직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흔히 왕족들이 그 신분을 빙자해서 높은 관직을 바라는 것과는 딴판으로 어떠한 직책이건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자진해서 감당하였다.
처음에는 군부서사(軍部書史)로 있다가 남들이 마다하는 여러 직책을 전전한 끝에 서경(西京)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는 터였다. 그것은 서경의 방위야말로 사직을 보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박술희를 몰아내고 궁궐의 호위가 허술해지자 왕은 가장 신임하는 왕식렴에게 사람을 보내어 궁성을 호위하도록 하였고 왕식렴은 즉시 정기(精騎)를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폐하, 왕성의 호위가 어찌 이렇듯 허술하옵니까? 전에는 박술희가 호위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사온데 그는 어찌 되었사옵니까?"
식렴은 입궐하는 즉시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글쎄, 그놈이 역모를 한다기에 멀리 귀양을 보냈소."
"박공이 역모를 했다고요?"
식렴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 누가 그런 말을?"
"왕대공이 그렇게 말하더구먼."
"왕규가요?"
식렴은 다시 상을 찡그렸다.
"간신 밑보지 같이 간사한 놈."
식렴은 내뱉듯 중얼거리다가 정색을 하고 임금을 똑바로 건너다보며 말했다.
"박공은 청렴결백한 충의지사 입니다. 그러한 박공이 역모를 하다니, 왕규란 놈의 간악한 모략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원래 줏대가 없는 임금은 왕규의 말을 들은 것을 뉘우치기 시작했다. 실상은 왕규의 참언만으로 박술희를 유배시킨 것이 아니라 지난날에 품은 앙심이 더 큰 작용을 했던 것이었지만, 자기 책임에 속하는 부분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임금의 성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왕규라는 놈이 바로 죽일 놈이 아니요?"
"이를 말씀이오니까? 그놈이 다 뜻한바가 있어서 박공 같은 충의지사를 몰아낸 것입니다."
"뜻한바가 있다니?" "박공이 정병을 거느리고 대궐을 호위하면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뜻을 이루기 어렵지 않습니까?"
"불측한 마음을 품는다?"
"대왕마마, 왕규란 놈의 지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왕 때 몇 차례나 역모를 하던 사실을 잊으셨사옵니까?"
"오호, 참 그렇지. 그놈이 몇 번이나 역모를 했었지." 임금은 새삼스러운 듯이 무릎을 쳤다.
"대왕마마, 하루 속히 충의지사의 죄를 사하시고 그 대신 간신을 물리치시어 나라의 화근을 끊어 버리도록 하십시오."
"그렇다면 박술희를 불러 올리고 왕규를 대신 귀양 보내야 하겠군."
임금은 곧 갑곶(甲串=江華 동쪽십리쯤 되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박술희를 불러 올리는 한편, 그 대신 그곳으로 왕규를 귀양 보내도록 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갑곶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박술희는 유배 가는 도중에 살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느 놈이 죽였단 말이냐?"
"왕규가 보낸 자객의 소행으로 아뢰오." "왕규의 수하라? 에이, 어디까지나 고얀 놈! 그렇다면 왕규도 즉시 죽이도록 하라! 아니, 왕규 한 놈 뿐만 아니라, 그 무리들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라."
이리하여 유배 간 왕규의 목을 베는 한편 그 무리들을 색출하니 삼백여명이나 달했는데 그들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이리하여 가지가지로 음모와 술책을 농하여 정권을 노리던 왕규 일당은 마침내 멸하고 만 것이다. 임금 요는, 원래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데다가 왕규 등의 농간으로 등극하기 전부터 신경이 몹시 시달렸으므로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대경실색하는 수가 많았다.
왕이 등극한지 삼년 째 되는 해 구월, 동여진(東女眞)의 대광 소무개(蘇無蓋)등이 와서 말 칠백필과 방물(方物)을 바친 일이 있었다.
"동여진에서 말을 보내왔다? 그 곳의 말은 특히 준마가 많다 하니 짐이 친히 보고 가리어 내리라."
경망한 왕은 천덕전(天德殿)에 친히 나가 칠백필 말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가려내기 시작하였다.
"자,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누어서 값을 정하면 가장 공평하지 않느냐 말야."
신하들은 왕의 처사가 너무 쪼잔한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도 없고 해서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왕은 어디까지나 의기양양해서 세 등급으로 나눈 말의 값을 정해 준다.
"일등 가는 말은 은주자(銀注子) 일사(一事)와 비단 한필로 값을 치를 것이며, 이등 가는 말은 은발(銀鉢) 일사와 비단 한필로 하고 삼등 가는 말은 비단 한필로 하리라. 어떻소? 불만이 있소?"
동여진의 소무개는 그저 고개만 깊이 숙이며 "지당하신 처사로 아뢰오."할 뿐이었다.
그러니 왕은 더 신이 났다. 그래서 일등 가는 말 값을 손수 지불하려고 일어섰을 때였다. 그때까지 맑게 개였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들은 소리치며 이리저리 날뛰고, 사람들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남달리 겁이 많은 왕이었다. 우왕좌왕하며 몸 둘 곳을 모르는데 이번에는 천덕전 서쪽 한 모퉁이에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어이구, 천지개벽이다. 나 좀 살려라."
엉덩방아를 찧은 왕은 왕의 체통도 잊어버리고 소리소리 지른다. 이에 근신들이 부축하여 중광전(重光殿)으로 모셔 들였으나 그 후부터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바람이 불고 천둥만 울려도 벌벌 떨며 야단이었다.
"이것 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바로 내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을까?"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기가 일쑤였다.
이 무렵, 개경은 도읍할 곳이 못되니 마땅히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천덕전에 벼락이 떨어진 이후 불안에 떨고 있던 왕에게는 무엇보다도 솔깃한 말이었다.
"오냐, 서경으로 천도를 하자, 그렇게 하면 짐의 병도 나을 것이고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 천둥벽력의 화를 입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는 시중 권직(權直)으로 하여금 서경에 가서 궁궐 짓는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원래 경망하고 성미 급한 왕이었다.
일단 새 궁궐을 짓게 되자 재촉이 성화같았다. 그러므로 자연히 백성들에게 무리한 노역을 강요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니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갔다.
"아니 개경에 도읍한지 삼십년도 못됐는데 또 옮긴단 말야?"
"그리고 개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조대왕께서 일어나신 뜻깊은 곳인데 함부로 옮기다니 그야말로 불효막심한 소행이란 말야."
"글쎄, 천도하는 것도 좋고 궁궐을 짓는 것도 좋지만 백성들이 견딜 수 있어야 말이지."
"백성이 잘 살아야 나라도 태평하고 임금 자리도 튼튼하지, 백성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며 무슨 임금이냐 말야." 백성들의 원성은 구구 했다. 그리고 그 중에 입빠른 자는 "이렇게 백성을 괴롭히는 임금이라면 오래 가지 못하지. 두고 보게. 예로부터 다 그랬으니까…"하며 저주하는 말까지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차츰 사실로 나타났다. 서경에 궁궐을 짓기 시작했어도 왕의 병세에는 차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위중해 가기만 했던 것이다.
정종 사년 삼월, 왕의 병세는 거의 절망상태에 이르렀다. 이 점을 왕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내 아우 소(昭)를 부르도록 하라."
왕은 시신에게 분부했다.
소가 황급히 들어오자, 왕은 아우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목숨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가 나를 대신해서 대통을 계승하도록 하라."
이리하여 왕은 아우에게 선위(禪位)하고 제석원(帝釋院)으로 옮겼으나 얼마 아니하여 숨을 거두었으니 등극한지 사년, 나이 겨우 이십칠세란 젊은 몸이었다.
그 후 소가 등극하여 이십육년을 다스렸으니 곧 제사대 광종(光宗)어며, 그 장자가 계승하여 육년을 다스렸으니 이가 곧 제五대 경종(景宗)이다. 그리고 제六대 성종(成宗)이 계승하여 십육년을 다스린 후, 제七대 목종(穆宗)이 등극하였는데 목종은 곧 제五대 경종의 장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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