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선덕여왕의 특허로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결혼한 후 유신과 함께 삼국통일(三國統一)의 큰 포부를 품고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춘추는 큰 왕기(王器)요, 유신은 화랑 출신의 명신이다. 이 두 인물이 장차 삼국을 통일하여 대신라를 이룩할 것이다.”
신라의 국민은 모두 그들 두 젊은 영웅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진덕여왕이 선덕의 뒤를 이었다가 병약한 몸으로 승하하자 김춘추가 제二十九대의 무열왕(武烈王)으로 등극했다. 이로서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는 언니 보희에게 산 꿈의 해몽처럼 왕비의 몸이 되어서 문명황후(文明皇后)가 되었던 것이다.
무열왕이 된 김춘추는 처남 김유신과 더욱 군신(君臣)의 의(義)를 굳게 하고 청년시대에 품었던 삼국통일의 위대한 사업을 착착 준비해 갔다.
김유신은 처음부터 신라 귀족은 아니었다.
그의 신분은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십이대 후손이었다. 가락국이 신라에 합병된 때의 가락국 구행왕(仇幸王)이 김유신의 증조부였다. 신라와 합병한 뒤에 가락국의 왕족은 신라 귀족으로 귀화(歸化)해서 벼슬을 했다.
김유신의 조부 무력은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어서 백제와의 국경지대의 방어군 대장으로 통수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는데 백제의 침략군 삼만명을 전멸시키고 백제의 임금 성왕(聖王)을 잡아서 죽인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부친인 서현(舒玄)도 그 뒤 백제와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운 명장이었다.
유신은 이런 귀족 명장의 피를 타고 났을 뿐아니라 소년 때는 신라의 화랑(花郞)으로서 스스로 무술을 연마하는 동시에 많은 낭도(郎徒)를 거느렸기 때문에 용병 지휘(用兵指揮) 체험을 소년 때부터 지니고 있었다. 모친은 신라의 공주 만명부인(萬明夫人)으로 부친 서현이 만노군(萬弩郡-지금의 鎭川地方)의 태수(太守) 시절 즉 진평왕(眞平王) 건복(建福) 십이년에 출생했다.
모친 만명부인은 아들 유신을 통일신라의 제일공로자의 명장으로 기르는데 현모(賢母)의 정성을 다했다. 유신이 기생 천관(天官)에게 반해서 공부를 소홀히 할 당시에 준엄한 훈계로서 책하여 유신이 습관대로 천관의 집으로 가려는 말을 그 마상(馬上)에서 칼로 목을 잘라 죽인 유명한 일화까지 낳게 한 모친이었다. 유신은 모친이 북두칠성에 치성을 드려서 낳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몸에 칠요성(七曜星)의 별무늬가 문신(文身)처럼 박혀 있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기상과 총명한 두뇌를 발휘했으므로 소년 영웅으로 추대 받아 화랑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그를 사모하고 모여든 소년용사들은 용화향도(龍華香徒)라 일컬었다.
유신은 십칠세의 화랑시절에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하고 신라의 이름으로 한반도(韓半島) 전역을 통일하려는 큰 뜻을 품고 중악산(中岳山) 암굴 속에 들어가서 홀로 삼국통일의 기원을 하면서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불면불휴(不眠不休)로 단식기도를 올리자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백발노옹으로 화한 신령이 홀연히 나타났다.
“너는 신라 화랑 중의 화랑이다. 아직 어린 나이로 조국에 대한 충성이 갸륵하고 삼국통일의 뜻이 장하다. 너의 그 장한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이 보검(寶劍)을 준다. 앞으로도 더욱 정신과 무술을 수련함에 있어서 이번 기도와 같은 심정으로 자중해서 처음 뜻대로 성공하라.”
이에 감격한 유신은 신령이 주는 보검을 받아 가지고 삼국통일의 자신을 굳게 하고 수도하던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고구려의 첩자(諜者)가 유신이 명장(名將)이 되기 전에 없애버리려는 흉계를 꾸몄다. 첩자 백석(白石)은 가면을 쓰고 낭도(郎徒)로 변해서 부하가 되어 남다른 신임을 받고 있었다. 유신의 비밀을 염탐하고 암살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가면 쓴 충성을 다해 왔으므로 유신도 그를 심복 부하로 사랑해 왔던 것이다.
“도련님이 이번 산중 기도에서 보검을 얻으셔서 축하합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 있어서는 신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적국의 정확한 정보입니다. 적국의 군사력과 민심동향의 실제를 잘 알아야 백전백승하는 법입니다. 적의 강한 점과 약한 점을 알고 우리의 약한 점이 적에 비해서 무엇인가를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도련님은 지금 마침 수업도중의 화랑이시니 나무꾼 총각으로 변장하고 고구려에 잠입해서 적정(敵情)을 염탐해 두시면 장차 전쟁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길도 안내하고 신변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절대 비밀을 요하는 이번 고구려 잠행은 친구 김춘추공에도 알리지 마시고 오늘 밤에 몰래 떠나갑시다.”
김유신은 백석이 흉계를 꾸미는 줄도 모르고 흥미를 느끼기까지 했다.
“그래, 너 참 좋은 생각을 했다. 전략상 필요한 지식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러한 모험은 하나의 좋은 연마가 될 듯하다.”
유신은 그날밤으로 고구려 잠입의 길을 떠났다.
고구려의 첩자 백석은‘인제 내 목적을 이룰 기회가 왔다. 신라에서 제일 가는 화랑 김유신만 고구려로 유인해서 죽이면 나는 큰 상을 타고 출세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백석은 속으로 만세를 부르면서 김유신을 국경으로 끌고 갔다. 며칠 후에 그들은 국경선인 골화천(骨火川)이라는 강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날 밤은 저녁때부터 부슬비가 내려 고향을 떠난 유신은 서글픈 향수를 느끼었다. 하루라도 더 고국 땅에서 자고 가고 싶었으나 백석은 일시가 바쁘게 골화천을 건너서 고구려 땅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도련님, 인제 이 강만 건너면 고구려 땅입니다. 궁금하던 적국의 땅이 빨리 구경하고 싶으니 오늘밤으로 넘어갑시다.”
“비도 오고 피곤도 하니 오늘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로 하자.”
“마침 비가 와서 국경을 넘는데는 더 좋습니다.”
백석은 유신을 졸랐다. 그러나 유신은 어쩐지 하룻밤을 더 고국 땅에서 자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강가에서 자던 김유신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세 명의 선녀같이 고운 여자가 나타나서 유신에게 놀라운 말을 들려주었다.
“화랑 김유신 도련님, 지금 당신이 충복으로 믿고 따라가는 백석이란 자는 흉악한 고구려 첩자입니다. 당신의 용맹과 충성을 시기하여 고구려 땅으로 꼬여다가 암살하려고 합니다. 어서 백석을 잡아서 처단하고 서라벌로 돌아가십시오.”
“위급한 때에 이런 중대한 비밀을 알려 줘서 고맙습니다. 아가씨들은 누구신데 어리석은 나의 생명을 구해 주십니까?”
“우리는 신하 수호신(守護神)의 삼형제 딸들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유신은 깜짝 놀라서 꿈을 깨었다. 몸에 땀이 쭉 흘렀지만 벌벌 떨리는 오한을 느꼈다.
날이 샌 뒤에 백석은 국경 넘을 준비로 혼자 흥분해 있었다. 강만 건너면 자기의 공이 고구려왕에게까지 알려져서 큰 상을 받을 생각을 하면 자기의 계획에 속아서 사지(死地)로 넘어가는 김유신이 가엾게 까지 보였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속고만 있는 바보 같던 김유신이 돌연 태도를 변하고 “백석아!” 하고 날카롭게 불러 세웠다.
“이 간악한 놈. 너는 고구려의 첩자로서 나를 속여 끌고 가서 암살하려고 했지?”
“도련님,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지금까지 바쳐온 충성을 그렇게 모르십니까? 왜 그런 끔찍한 오해를 하시는지요. 저는 도련님을 모시고 고구려 땅으로 모험하려고 가는 그야말로 신라의 첩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고구려 첩자라고 의심하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이놈, 내가 속을 줄 알고 또 그런 변명을 하느냐?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너 같은 놈에게 속아서 생명을 잃을 위인이 아니다. 네가 자백을 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속인 죄까지 합해서 처단하겠다.” “도련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백석은 유신의 확고한 태도에 더 변명할 수 없었다. 자백하고 빌면 혹시 용서라도 받을까하여 범행을 자백했다.
“음, 나는 내 개인의 부하로서는 네 죄를 용서하겠다.”
“도련님, 이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하겠습니다.”
백석은 용서 받은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적국의 첩자는 국법이 용서하지 않는다. 이 칼은 네 주인의 칼이 아니고 국법의 칼이다.”
유신은 단호히 선언을 하고 신령에게 받은 보검으로 백석의 목을 베어서 골화천에 던졌다. 그리고 발을 돌려서 서라벌로 돌아갔다. 소년시절에 이미 이런 신비한 신령의 보호를 받은 유신은 자기의 생명이 결코 자기 개인의 소유가 아니고 나라를 위해서 하늘이 아껴주는 것이라고 자각하고 자중하는 동시에 그 사명감(使命感)을 느꼈다. 더욱 처남 김춘추가 왕이 되어서 자기를 중신으로 등용하자 그를 도와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려고 모든 정력과 충성을 기울였다.
무열왕은 그 몸부터가 구척 장신의 거인(巨人)으로서 힘이 세고 도량이 컸다. 그의 대식(大食)은 유명해서 하루에 서말 밥을 먹었으며 밥반찬과 술안주로는 꿩고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한끼에 꿩 세 마리씩 먹었으므로 하루에 아홉 마리의 꿩을 먹었다.
“신라의 꿩이 씨가 없어지기 전에 빨리 삼국통일을 해서 고구려 꿩과 백제의 꿩을 잡아 먹어야겠다.”
신하들에게 농을 했다. 그런 농 끝에도 그는“고구려 꿩과 백제의 꿩을 마음대로 사냥할 수 있게 할 포수는 누구겠느냐?”하여 삼국통일의 뜻을 암시 하였다. 그러면 모든 신하들은 “그 포수의 대장은 김유신공입니다.”라고 말하며 정당한 여론으로 김유신을 추천했던 것이다.
한편 언니 보희의 용꿈을 사서 왕후가 된 문희는 부왕(夫王)을 잘 섬겼고 금실이 좋았는데 자복도 커서 유능한 인물을 많이 낳아서 왕실을 번영케 했다. 태자 법민(法敏)을 비롯해서 인문(仁問), 문왕(文王), 노단(老旦), 지경(智鏡), 개원(愷元) 등 훌륭한 아들들을 두었다.
김춘추가 아직 태자로 있을 때 그는 김유신과 통일 방안을 세우고 고구려와 백제와의 빈번한 싸움을 군사훈련으로 삼아서 신라의 화랑들의 활약 무대로 활용했다. “신라에 김춘추와 김유신이 있는 이상 신라를 넘보기 어려울뿐더러 우리나라가 먹힐지도 모른다.”
고구려와 백제 장수들은 자신을 잃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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